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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쑥뽕삼 Oct 21. 2015

소규모 에세이 ; 가을, 그리고 노래  by뽕

3인 3색, 같은 소재 달리 보기 

열두 번째 소재


가을, 그리고 노래


글, 음악 / 




# 사랑 따윈 필요 없어 


울었다.

2006년 가을, 어느 대학교 야외 공연장에서 노래를 듣다가

나는 그만 울고 말았다. 

친구가 속해 있는 음악동아리 공연에 갔다가 들었던 그 노래              

응원해주러 가서 환호를 보내는 대신 눈물을 흘렸다. 


나 그대 불행 하길 바랬죠
그럼 혹시나 돌아올까
그런 못된 생각으로 지냈죠
나를 용서해요
모든 게 끝났단 걸 아는데,
잊어야 한단 걸 아는데,
가슴은 늘 머리보다 더디죠
이젠 누구도 사랑 할 수가 없을 것만 같아요


이때의 나는 '철벽녀'에 가까워서

누군가 한 걸음 다가 와 거리를 좁히면 

선을 딱 긋고 


"이 선 보이지?
여기까지야, 여기 넘어 오면 안 돼.


라고 엄포를 놓거나 

뒷걸음치기 일쑤였다. 


그런 나를 지켜보던 

쑥뽕삼의 '쑥'이 안타까워 한마디 했다.


"미리 넌 네가 상처 받지 않으려고 가시를 세우고 있는 것 같아. 

그냥 좋아하면 안 돼?"


이성을 사랑하는 일에 있어서는 

목석 같은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던 그 시절의 나를 

울게 했던 그 노래. 

박정현의 Ann. 


당시 그 노래를 불렀던 아마추어 가수도 대단하고

내 마음을 무장해제 시킨 이 노래도 대단하다. 

노래를 듣고 운 건 

이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 박정현 _Ann 

* 노래 듣기 : https://youtu.be/kLB-iOXTrOs



# 그 노래를 듣는 게 아니었어


가끔 회상한다. 

그리고 나에게 묻는다.

그를 사랑한 게 언제부터였는지. 

'눈이 맑고 선한 사람을 알게 되었다' 고 기록하던 때부터였는지, 

노래 부르는 그의 옆모습을 보았을 때부터였는지,

정확히 기억해 낼 수가 없다. 

기억은 언제나 불분명하고, 

변형 되기까지 하니까. 


어느 동네 오락실, 동전 노래방에서

번갈아 가며 노래를 불렀던 우리. 

내가 불렀던 노래는 기억이 나지 않고 

그가 불렀던 노래만 선명하다. 


아마도 그건 사랑이었을 거야
희미하게 떠오르는 기억이
이제야 그 마음을 알아 버렸네
그대 눈에 비친 나의 모습을

아마도 그건 사랑이었을 거야
돌아보면 아쉬운 그날들이
자꾸만 아픔으로 내게 찾아 와
떨리는 가슴 나를 슬프게 하네


그날은 가을 비가 구슬피 내렸고, 

그의 노래를 듣는데, 마음이 아릿했다. 

그가 펼쳐서 든 우산 아래서 

그가 부른 노래의 여운에 취해 있었다. 

그에게 살짝 기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른 채 

비 오는 거리를 함께 걸었다. 


아마도 그건...

사랑이었을까?



* 최용준_아마도 그건 

* 노래 듣기 : https://youtu.be/MyiomMNtkQ0




# 그 가을, 내리는 빗속에서 


특별하다고 믿었던 사랑이 끝나고 

갈 곳을 잃은 듯한 

기분에 휩싸여 지내던 

가을이었다. 


혹독한 가을, 

내 소설에 혹독한 평을 했던 

선생님이 새 책을 내셔서 

인터뷰 글을 쓰기 위해 북 콘서트에 갔다. 


그날도 비가 내렸고


이 곳에 그와 함께 왔다면 어땠을까?


바보처럼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모든 흔적 지웠다고 믿었지 
그건 어리석은 착각이었어 
이맘 때쯤 네가 좋아한 쏟아지는 비까진 
나의 힘으로도 어쩔 수 없는 걸 

너를 보고 싶어서 
내가 울 준 몰랐어 
그토록 오랜 시간들이 지나도 
나에게 마르지 않는 눈물을 남겼네 


선생님은 그날 피아노를 치며 

이적의 Rain 을 부르셨다. 


노래를 듣는데 

어떤 문학잡지 여름호에 실렸던

선생님의 글이 떠올랐다. 

사랑했지만 잡지 못한 여인에 대한 에세이였는데 

그 글을 읽으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선생님의 (냉정한)이미지가 

전부가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우매한 제자들을 깨우쳐 주려고 

독설을 해야 하는 

선생님의 마음도 편치 않았을 거라고 

짐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바보처럼 또 생각했다. 


그가 옆에 있었다면

이 노래가 이토록 슬프게 들리진 않았겠지. 



* 이적_Rain

* 노래 듣기 : https://youtu.be/akwFfy6QEJE



# 여전히 난, 가끔


언젠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 노래를 듣고

한참을  멍하게 서 있었던 기억이 있다. 


나의 가장 무른 마음에 명중한 노래 가사. 

내 마음을 들여다 보고 쓴 것 같은 가사와 

가을 하늘빛을 닮은 보컬의 목소리에 

마음을 뺏겨

몇 번이고 이 노래를 되풀이 해 들었다. 


넌 날 아프게 하는 사람이 아냐
수없이 많은 나날들 속을
반짝이고 있어 항상 고마웠어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얘기겠지만
그렇지만 가끔 미치도록 네가 안고 싶어질 때가 있어
너 같은 사람은 너 밖에 없었어
마음 둘 곳이라곤 없는 이 세상 속에


어느덧 나는 이 노래를 부르며 

자연스럽게 그 사람을 떠올렸다. 

내가 그에게 해주지 못했던 말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 

마치 내 마음인 양 

열창을 하다가 

그 사람에게 닿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좀 쓸쓸해졌더랬다. 


올 가을에도 난 몇 번인가 

아니 꽤 자주 그를 생각했고 

하늘이 높고, 맑은 날 

이 노래를 들으면 

어쩐지 더 마음이 아팠다. 



* 가을방학_가끔 미치도록 네가 안고 싶어질 때가 있어

* 노래 듣기 : https://youtu.be/3cS964_AlMY






가을은 

쪼그라들어 있던 귀가 

활짝 펴지는 계절임에 틀림없다. 


들리지 않던 노래가 

비로소 들리기 시작하면 

정신이 혼미해져서 

주저앉고 만다. 


나를 울리고 

찌르르 

마음을 저리게 하며

오로지

노래를 듣는 것 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었던  

노래들.


나도 어느 누군가에게는 

이런 노래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남몰래 품어 보는 

가을이다.



쑥뽕삼의 <같은 시선, 다른 생각>은

서른을 맞이한 동갑내기 친구 3인의

같은 소재, 다르게 보기 활동을 사진, 그림, 글로 표현한 공동작품모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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