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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쑥뽕삼 Oct 14. 2015

소규모 에세이 ; 나를 울린 영화 by 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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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번째 소재


나를 울린 영화 


글, 사진 / 



나는 영화를 보며 슬픈 감정을 느껴도 잘 울지 못한다. 

슬픈 장면이 나오면 

코끝이 빨개지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엄마의 유전자를 이어받지 못한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감정이 무딘 편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인데, 

어쩐지 눈물은 아끼게 된다. 

이런 나에게도 눈물을 참을 수 없게 만든 영화들이 있었다. 

몇 가지가 떠올랐는데, 그 중 하나가 

"NEVER 영화 포토"

집으로... The way home, 2002


이다. 


2002년도면 벌써 13년 전이고, 내 나이 꽃다운 열일곱이었다.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백숙을 먹을 때 마다 먹먹해 질 것 같다는 

일기를 적은 적이 있는데, 

도대체 어떤 부분이 내 눈물샘을 자극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보았다. 

여전히 이 영화가 나를 울게 할지 

13년이 지난 뒤에 다시 본 영화가 내게 어떻게 다가올지 궁금했다. 



상우는 엄마의 손에 이끌려 

두메산골에 사시는 외할머니에게 맡겨진다. 


할머니는 나이가 많으셔서 잘 듣지 못하시고, 말을 못 하시는데 

상대의 표정을 보고 원하는 것을 읽어 내신다. 


외할머니를 한번도 본 적 없던 상우는 

서슴없이 '병신'이라는 표현을 쓰고, 벽에 낙서까지 할 정도로 

예의 없고 철없는 어린아이다. 


시골에 와서 몇날 며칠을 게임만 하며 보내다가 

배터리가 다 되자 배터리를 사러 길을 나선다. 

할머니가 낮잠을 주무시는 틈을 타서 

(할머니 머리에 있는)은비녀를 훔쳐

동네 슈퍼로 간다. 

하지만 어디에도 상우가 찾는 '빳데리'는 없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어 울고 있는 상우를 발견한 동네할아버지는 

자신의 자전거에 태워 상우를 집으로 데려다 준다. 

결국 배터리를 사지 못한 상우는 잔뜩 심통이 나 있다. 

할머니가 깨끗이 씻어온 요강을 발로 차 깨뜨리는가 하면 

할머니의 낡은 고무신을 숨기기도 한다. 


은비녀 대신 숟가락으로 머리를 쪽지고 

맨발로 물을 길어 오시는 할머니를 보고 있노라면 

상우의 엉덩이를 세게 차주고 싶은 충동이 인다. 


반찬 투정을 하는 상우에게 

먹고 싶은 것이 있냐고 묻는 할머니. 

상우는 '캔터키 후라이드 치킨'을 이야기 하며, 

치킨이 그려져 있는 책받침을 할머니에게 보여준다. 

할머니가 닭의 벼슬을 손으로 만들어 보이면서 

이것이 먹고 싶냐고 묻자,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상우. 


이윽고 할머니는 비를 맞으며 

살아 있는 닭을 한 마리 가지고 집으로 오신다.


(닭의 비명 소리가 들리고)

할머니는 가마솥에 닭을 삶아 

큰 대접에 내오신다. 

후라이드 치킨을 기대했던 상우는 

밥그릇을 날려 버리며 짜증을 내다가 

늦은 밤 허기를 참지 못하고,  닭을 먹는다. 

닭이 아주 맛있다는 것을 것을 상우의 그림자가 말해준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훌륭한 점 중 하나가 바로 이런 감독의 시선이다. 

상우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그림자로 보여주고, 

숟가락으로 쪽진 할머니 머리를 클로즈업 하여 보여주는 기법. 


시종일관 할머니를 무시하던 상우는 점차 할머니의 사랑을 깨닫는다. 

나물을 팔아 닭을 사 주고 

나물을 팔아 신발을 사 주고 

나물을 팔아 짜장면을 사 주는 할머니. 

손자가 짜장면을 먹는 모습을 바라보시기만 하는 모습에 

마음이 찡하다. 


할머니는 그렇게 주고 주어도 

더 주고 싶으신가 보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뭐 먹고 싶은 게 없냐고 묻는다. 


마침 초코파이를 맛있게 먹고 있던 아이가 

상우의 눈에 띄고, 

상우가 그 아이를 가리키자 

할머니는 초코파이 껍질을 주워 동네 작은 슈퍼로 가신다. 


상우는 할머니가 사준 초코파이를 들고 

철이와 혜연이가 타고 있는 버스에 오른다. 

할머니가 상우에게 짐보따리를 맡기려고 하자 

짜증을 내며 밀어내던 철부지 손자. 


먼저 도착해 버스 정류장에서 할머니를 기다리는 상우. 

아무리 기다려도 할머니는 오지 않는다. 

기다리다 지쳐 집에서 혼자 놀다가 

다시 버스 정류장으로 나간다. 

버스가 한 대 도착하고, 

할아버지가 내리고, 

버스에 가려져 있던 할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할머니는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 오신다. 


왜 이제 와?


이때부터였을까? 

상우가 할머니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 것이. 

상우는 할머니의 짐보따리를 받아 들고 앞서가며, 

그 안에 아껴둔 초코파이를 넣는다. 


"NEVER 영화 포토"


영락없는 어린아이 상우를 한 뼘 성장 시킨 사람이 있는데, 

그녀는 노래를 잘 부르는 혜인이. 

상우는 자신이 아끼는 장난감과 책을  모아서 

혜인이의 토끼 인형과 바꿔온다.


장난감 꾸러미 안에는 

상우의 게임기도 있는데, 

할머니가 포장을 해서 챙겨주셨다. 

상우는 작동하지 않는 게임기를 주는 것이 창피해

바지 뒷주머니에 넣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손수레에 몸을 싣고 가다가 고꾸라져

무릎이 까지고 만신창이가 된 상우. 


일명 '미친소'가 따라오는 통에 

절뚝거리며 걷다가 

안 되겠다 싶어 납작 엎드린다. 

라이벌 철이 형 덕에 겨우 위기를 모면하고 도망친 상우. 


전번엔... 미안했어.


혜인이가 철이와 있을 때 마다 질투심에 사로잡혔던 상우는 

철이를 골탕먹이기 위해 

"미친소"가 쫓아오지 않는데도 


미친소다. 빨리 뛰어,  빨리, 더 빨리! 더, 더. 바로 뒤에 있어.


라고 거짓말을 했었다. 


카메라 앵글은 계속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보여준다. 

상우는 할머니가 챙겨주신 게임기의 포장지를 뜯다가 

천 원짜리 지폐 두 장을 발견한다. 

눈물을 흘리는 상우. 

할머니가 돈이 없다는 걸 잘 알기에 

그 돈의 의미를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마중 나온 할머니를 보자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마는 상우. 

까진 무릎과 얼굴을 쓰다듬어 주시는 할머니.



자, 잘 봐 다시. 이건 아프다 , 요건 보고싶다. 써 봐 다시.
에이, 참 그것도  하나 못해?
할머니, 말 못하니까 전화도 못 하는데, 편지도 못 쓰면 어떡해. 
할머니 많이 아프면 그냥 아무것도 쓰지 말고 보내. 
그럼 상우가 할머니가 부르는줄 알고 금방 달려 올게. 응? 알았지?


집으로 돌아갈 날을 얼마 남겨 놓지 않고,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써서 

할머니에게 '아프다'와 '보고싶다'를 가르쳐 주는 상우. 

악동 상우가 운다

 악동 상우가 할머니를 위해 바늘에 실을 꿰어 놓는다. 


이 장면에서 나는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한 대 쥐어 박아 주고 싶을 정도로 

버릇없던 아이가 할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이 예뻐서 

손자가 떠난 뒤 덩그러니 혼자 남겨질 할머니가 안쓰러워서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엄마가 와서 정말 집으로 돌아가는 날. 

상우는 할머니에게 아무 말도 않다가 

버스에서 잠깐 내려 아끼던 엽서를 건넨다. 

거기엔 할머니 얼굴과 

'아프다'와 '보고싶다'가 쓰여 있다. 

할머니에게 배운 몸짓(가슴에 원을 그리는 동작)을 하며 

멀어지는 상우. 




이 영화를 보면서 

마음은 장황한 말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시골에 계신 할머니를 생각했고, 

사랑이 무엇인지 가슴 찡하게 느꼈고 

나이듦과 성장에 대해 생각했다. 


일상에 지쳐 있는 

당신이라면 

쉼표와 여백

뭉클한 감동이 있는 

<집으로  가는 길>을 추천한다.




쑥뽕삼의 <같은 시선, 다른 생각>은

서른을 맞이한 동갑내기 친구 3인의

같은 소재, 다르게 보기 활동을 사진, 그림, 글로 표현한 공동작품모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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