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쑥뽕삼 Oct 29. 2015

소규모 에세이 ; 커피 by 뽕

3인 3색. 같은 소재 달리 보기 

열세 번째 소재 


커피 


글, 사진 / 뽕 





매일 아침, 11시. 

어느 동네의 작은 카페엔 커피 향이 가득합니다. 

그녀의 손길이 닿았기 때문이지요. 

그녀는 커피 머신을 반짝반짝 윤이 나도록 닦은 후에야 손님을 맞이합니다. 


손님이 없을 때는 아메리카노를 한 잔 만들어서 조금씩 음미하며,

소설책이나 시집을 읽습니다. 

그녀는 다독가입니다. 

내가 읽으려고 욕심껏 사놓았던 책들을 먼저 읽고 짧은 감상을  이야기 해줍니다.


때로 나에게 도움이 될만한 책을 기억해 두었다가  이야기 해주기도 하고

가끔 카페에서 일어난 사건이나 손님들에 대해서 말해주기도 합니다.


들어 봐, 글 쓰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떤 삶'을 상상해 봅니다. 

젊은 시절, 국가대표 축구선수로 활동했던 할아버지 이야기와 

맛있는 게 있으면 사 가지고 와서 나누어주는 미술 선생님 부부 이야기와 

한 손으로는 아이를 안고, 한 손으로는 김치를 들고 눈길을 걸어가던 미국인 친구 Billy 이야기를 들으며 

삶은 종합 선물 세트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나를 가끔  '김 작가' 라고 부릅니다. 

그 별명엔 '무엇이라도 좋으니 계속해서 쓰라'는 그녀의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만약 내가 매일 무언가 쓰는 사람이 된다면 그녀를 감동시키고 싶습니다. 

내 글이 보고 싶어서 SNS에 가입하고, 늘 관심을 가지고 읽으며 종종 냉철한 비평을 해줍니다. 

나의 지지자이자 고급 독자인 그녀를 만족시키는 일은 여간해서 쉽지 않지요. 


나는 고민이 있을 때 그녀가 있는 카페에 가서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곤 합니다. 

그녀가 내려준 신선한 커피를 마시면서 그녀와 눈 맞추며 대화를 하면 어쩐지 안심이 됩니다. 

그녀의 커다란 눈을 들여다 보고 있으면 기억에 없는 까마득한 시절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내가 우는 것으로밖에 의사 표현을 하지 못할 때에도 눈을 맞추며 이렇게 말해주었겠지요. 


아가야, 나는 너를 많이 사랑한단다. 


나는 알 수 있습니다. 

그녀가 나를 얼마나 깊이 사랑하는지.

아침으로는 응원 메시지를 보내고 

저녁으로는 밥을 꼭 챙겨 먹으라는 문자를 보내줍니다. 

가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해놓고, 사진을 보낼 때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마음이 뭉클합니다. 


예쁜 꽃을 보거나 맛있는 커피를 마실 때면 그녀가 유독 생각납니다. 

지금 이 순간, 그녀와 함께 있으면 좋겠다고 소망합니다. 


가끔 헤아려봅니다. 

한 지붕 아래서 그녀와 함께 살 수 있는 날들이 얼마나 남았는지. 

그녀와 함께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며  즐거워 할 날들이 얼마나 남았는지. 

그녀와 마주 앉아서 밥을 먹을 수 있는 날들이 얼마나 남았는지. 


커피를 생각하다가 그녀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내일도 모레도 그녀는 커피를 내리고 책을 읽겠지요. 

가족들을 생각하며 음식을 만들고, 햇살 좋은 날엔 빨래를 해서 널겠지요. 

늦은 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겠지요. 

그녀가 오래오래 내 곁에서 편안하고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그런 것처럼요. 

이 글을 읽을 그녀에게 이 자리를 빌려서 고백합니다. 


사랑해요, 엄마.



쑥뽕삼의 <같은 시선, 다른 생각>은

서른을 맞이한 동갑내기 친구 3인의

같은 소재, 다르게 보기 활동을 사진, 그림, 글로 표현한 공동작품모음 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규모 에세이 ; 가을, 그리고 노래  by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