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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번째 소재
글, 그림 쑥
아메리카노는 쓰디 쓴 맛
처음 시작은 아메리카노였다.
나는 PD를 따라서, 남자는 촬영팀과 함께 자주 방송국 1층 로비에 있는 M카페에 내려 가곤 했다.
"뭐 마실래?"라고 묻는 PD의 말에 나는 "뭐, 아무거 나요."라고 대답했던 것 같다.
내 시선이 머무는 곳은 무리에 섞여 한참을 웃고 있는 남자.
수첩을 펴서 다음 아이템을 고르던 중에도 신경이 쓰여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써?" 오만상 인상을 쓰고 커피를 마시던 내게 선배 작가가 묻곤 했다.
"네. 오늘따라 더 쓰네요." 남자가 돌아가고 난 뒤 남은 자리를 보며 내가 말했다.
그때의 내 마음은 아메리카노, 쓰디 쓴 맛이었다.
그다음은, 카페모카
"무슨 커피 좋아해요?"라고 물으니 "어, 시원한 코코아 맛 나는 커피요."라고 대답했다.
남자는 아이스 카페모카가 좋다고 했다.
그래서 따라 마셨다. "저도 좋아해요."라는 뻔한 거짓말을 섞어.
카페모카는 달았고, 좀 거칠었다.
코코아 파우더 때문에 한 모금 마시고 나면 혀 끝에 까끌한 느낌이 남아 신경이 쓰였다.
그리고 보드랍고 포근한 파우더 향이 입안에 오래 남아 더 신경이 쓰였다.
남자는 그렇게 신경 쓰이는 카페모카처럼 달고, 포근하고, 거칠고, 오래도 남았다.
굉장히 쓴 맛 + 굉장히 단 맛 + 굉장히 신경 쓰이는 맛 =?
아포가토를 먹게 된 건, 그다음해 여름쯤이었다.
에스프레소를 투명한 유리잔에 내려 담고, 그 위에 반지르르한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올려줬다.
그리고 톡톡 코코아 파우더를 뿌리더니 "주문하신 아포가토 나왔습니다." 하고 점원이 우릴 불렀다.
쓰고 단것 위에 신경 쓰이는 그 가루가 뿌려져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한 숟갈 크게 떠서 아포가토를 입어 넣었다.
"이게 이름이 뭐라고?" 남자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포가토래." 나 역시 그랬다.
그리고 우리는 여름이 오면 자주 사 먹거나, 자주 해먹었다.
싫어하는 것, 좋아하는 것, 신경 쓰이는 것이 스푼 위로 동그랗게 올라왔다.
그 맛은 행복이었고, 우리는 그보다 더 행복했다.
그리고 지금은, 카페라떼
스물셋 남자는 스물여덟이 되고,
스물다섯 여자는 이제 서른이 되었다.
어느 날 남자가 "아이스 카페라떼 먹을 건데."라고 말했다.
카페모카가 어느 날부터 달게 느껴진다고, 시럽 넣지 않은 라테가 입에 맞는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라테를 곧잘 시켜 먹게 되었다.
달지 않고, 쓰지도 않고, 먹고 나면 포만감이 드는 포근한 맛.
남자는 내게 지금 그런 맛이다.
더 이상 뺄 것도 넣을 것도 멋 부리지 않아도 되는.
나는 지금이 좋다. 딱 좋다.
쑥뽕삼의 <같은 시선, 다른 생각>은
서른을 맞이한 동갑내기 친구 3인의
같은 소재, 다르게 보기 활동을 사진, 그림, 글로 표현한 공동작품 모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