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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쑥뽕삼 Oct 23. 2015

소규모 에세이 ; 가을, 그리고 노래 by 쑥

3인 3색, 같은 소재 달리 보기

열두 번째 소재                                                                                                                                   

글, 그림




가을이 오면 누구나 생각나는 노래가 한  곡쯤 있지 않을까.

내게도 그런 노래가 있다. 가사 전부를 외우고 있진 못해도 어느 순간 따라 부르게 되는 그런 노래.


하늘은 자꾸 높아져만 가고, 쿡 찌르면 파란색 물감이 주르르 흘러내릴 것 같은 이런 날에.

가만히 길을 걷다가 문득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에 볼이 시려 손바닥으로 감싸 쥐게 되는 이런 날에.


나는  윤도현의 1집에 수록되어 있는

<가을 우체국 앞에서>가 생각이 난다.


ⓒ 2015. 쑥* all rights reserved.


지금으로부터 5년 전, 그러니까 2010년의 가을에 나는 열병을 앓고 있었다.

한 사람의 마음을 얻고 싶어서 늘 출퇴근길마다 마음속으로 몇 장의 편지를 써 내려가곤 했다.

정말 그 사람 손에 쥐어지는 편지도 아닌데, 난 쓰다가 고치고 지우고를 반복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답답한 마음에 버스 창 밖을 바라보면, 노래 가사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노오란 은행잎들이 바람에 날려가고
지나는 사람들 같이 저 멀리 가는 걸 보네


ⓒ 2015. 쑥* all rights reserved.


하루 5시간도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내가 해야 할 일이 많던 때였다.

잠이 모자라 정신도, 체력도 엉망일 때면 수면실에서 잠깐 쪽잠을 청하는 것 대신 회사 앞 강을 따라 걸었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꾸중에 주눅 들어있었고, 내 마음은 정말 정처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한 여름 지겹게 쏟아지는 굵은 빗방울처럼 아픈 말들이 내 위로 쏟아졌었다.

그리고 그 길의 끄트머리에서 여름을 이겨내고 활짝 핀 코스모스를 발견했다.

그 사람은 내게 그런 꽃 같은 사람이었다.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
한여름 소나기 쏟아져도 굳세게 버틴 꽃들과
지난 겨울 눈보라에도 우뚝 서있는 나무들 같이
하늘 아래 모든 것이 저 홀로 설 수 있을까
ⓒ 2015. 쑥* all rights reserved.


내  마음속 우체통에는 부치지 못한 편지가 날로 쌓여만 갔다.

어떤 편지는 몇 번이고 열었다 닫았다 해서 봉투가 너덜너덜 해 질 지경이었다.

몇 달 내내 고민하면서 해가 뜨고 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다시 내게 반송되어 올지라도 그 사람에게 부치겠노라고.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우연한 생각에 빠져 날 저물도록 몰랐네
날 저물도록 몰랐네
ⓒ 2015. 쑥* all rights reserved.

기다리는 동안 가을이 깊어져 겨울을 기다리는 때가 되었다.

단풍이 짙어져 하나 둘 바닥으로 툭 툭 떨어졌고, 나는 몇 번이고 텅 빈 내 우체통을 열었다 닫았다 했다.

그리고 단풍잎이 모두 바닥으로 떨어져버린  그때 한 통의 편지가 내게 도착했다.


하늘 아래 모든 것이 저 홀로 설 수 있을까



홀로 설 수 없는 이 세상에, 그 사람은 지금 나와 함께 서 있다.

가을이 오면 나는 이 노래와 함께 그 날의 우리를 다시 떠올린다.

세상에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내 곁에는 당신이 있고, 나는 언제까지고 당신 곁에 남아 있고 싶다.



쑥뽕삼<같은 시선, 다른 생각>

서른을 맞이한 동갑내기 친구 3인의

같은 소재, 다르게 보기 활동을 사진, 그림, 글로 표현한 공동작품 모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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