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한 Apr 04. 2016

나는 다만 재미있는 일을 했을 뿐이다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에게서 연락이 왔다. 책을 한 권 사서 보냈다는 메시지였다. 갑자기 무슨 일이실까. 뭐 책은 좋은거니까. 근데 무슨 책을 사셨을까. 이상한 책을 사서 보내신 건 아닐까.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같은.


아니나다를까, 도착한 책의 제목이 이랬다. ‘나는 다만 재미있는 일을 했을 뿐이다.’  아무래도 영 불안한 제목이다. 저자가 무언가 대단한 성공이라도 한 사람이면, 인류에 큰 공헌을 한 사람이면 또 모르겠다. 하지만 저자는 단지 구글에 취직했다가 나와서 스타트업을 시작했고, 그리고는 인수합병을 통해 회사를 매각해본 경험이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나는 다만 재미있는 일을 했을 뿐이다'라니, 어쩌라는걸까.


한동안 다른 일로 바빠 책을 읽을 시간이 없었다. 내용을 읽지는 못하고 가끔 옆에 올려둔 책의 제목만 눈에 들어오면서, 이 책에 대한 불만은 점점 증폭되어 갔다. 자기는 다만 재미있는 일을 했을 뿐인데 그렇게 성공한 거라면, 다른 사람들은 재미있는 일을 안해서 실패하는거라는 말인가, 혹은 나는 재밌어서 열심히 한거 뿐인데 내 능력이 너무 뛰어나서 하는 족족 다 성공해버렸다는 말인가. 게다가, 구글에 입사한게, 그리고 그 구글을 때려치고 나온게 자신의 경험을 책으로 쓸만큼 위대한 일인가. 인류에 무슨 공헌을 했다고, 일개 회사에 취직했다가 그 회사 때려치고 나와서 새로운 회사 하나 차려서 다른 회사에 팔아먹은게, 그게 무슨 훌륭한 일이라고 이렇게 책까지 낸건가. 그것도 저런 부끄러움을 모르는 제목까지 달아서는. 스티븐 호킹도 저런 제목으로 자서전을 적지는 않았다. 저런 제목으로 책을 쓴 저자에 대한 분노부터 그런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들어버린 우리 사회의 현실에 대한 회의까지, 그야 말로 모든 부정적인 이미지가 계속 쌓여갔다.


이런 불만이 극에 달했을 때 쯤, 그제서야 나는 책을 조금씩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책의 제목은 저자의 의지 외에도 출판사의 입김이 강력하게 작용할 수도 있는 영역이라지만, 그래도 이런 제목을 달고 책을 쓴 어처구니 없는 저자라는 생각이 이미 첫인상으로 박혀버린 상태였다. 그래, 얼마나 잘났나 보자.


처음 한동안은 역시나, 라는 이미지를 지울 수 없었다. 저자는 뉴질랜드에서 고등학교를 나왔었다. 어릴 때 유학을 갔는지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뭐야, 저 작은 나라에서 공부 좀 잘했다고 그렇게 잘난척 한거야? 난 MIT에서 수석 졸업이라도 한 줄 알았네, 그리고 또 뭘 했다는지 한 번 볼까?


그런데, 저자의 언어가 생각보다 차분하고 담담했다. 그는 잘난 척을 하고있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어떻게 실패했는지를 담담하게 고백하고 있었다. 이렇게 하면 잘 될거라고 생각했는데 지나고보니 그렇지 않더라, 나는 좋은 의도로 한 것이었는데 팀원들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더라, 나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가장 중요한 것이었더라...


회사명을 ‘라빔’으로 바꾸고 푸드게놈프로젝트를 기반으로 시작한 스위터스푼과 임프레시피를 접고 난 뒤 우리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아무도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했지만 이제는 패배를 인정할 때가 됐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또다시 아이디어를 쥐어짜내 제품을 만드는 일은 바보 같은 짓이었다. 지금까지 아무 말씀 안 하던 부모님도 이제 미래를 생각해야 하지 않겠냐며 조심스레 걱정을 했다. 흔들리는 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때마침 구글을 포함해 여러 회사에서 입사 제안 러브콜을 보내왔다. 당시 나는 너무 지쳐 있었기에 그 러브콜들이 달콤한 유혹처럼 느껴졌다

나도 이제는 그만 회사를 접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이 있었고 도전을 했으며 최선을 다했기에 실패가 부끄럽지 않았다. 많은 것을 배우고 개인적으로 큰 성장을 할 수 있었던 지난 1년 6개월이 진심으로 감사했다. 시간을 낭비했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그 시간 동안 내 길을 개척하면서 달리고 넘어지고 또 달렸던 경험은 그 어디서도 깨닫지 못했던 지혜들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 사업을 접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스타트업이라는 제약 안에서 많은 짐을 지고 걸어왔던 힘든 여정이었지만 정작 그 짐을 내려놓자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정말 여기서 끝내야 하는가?

p.246


굉장히 솔직하고 자전적인 책이었다. 중학교 때, 국어 선생님이 백일장에 적어 냈던 나의 글을 두고 이렇게 평가를 한 적이 있다. "솔직함이 들어있는 것 만으로도 글은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다." 이 책의 글도 그랬다. 그는 스스로 그리 대단한 성공을 한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고, 오히려 자신의 실수와 실패의 경험들을 털어놓고 있었다.


성공의 경험 만큼이나 값진 것이 실패의 경험이다. 어떻게 실패를 하게 되었는지, 왜 그런 시행착오들을 거치게 되었는지는 비슷한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런 실패의 경험들은 성공의 경험에 비해 공유가 잘 안되는데, 그건 실패의 경험이라는게 성공의 경험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람들에게 그다지 매력적으로 보이지도 않을 뿐더러 그런 실패의 경험을 겪은 사람 스스로도 어딘가에 자랑하고 다닐 만한 경험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 책에서 저자도 밝히고 있듯이 그게 최선을 다해 달려가는 과정이었다면 부끄러울 이유는 전혀 없다. 하지만 스스로 그렇게 생각한다고 하더라도 남들에게 쉽게 밝히기는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이런 책은 사실 굉장히 고마운 책이다. 실패의 경험을 공유한다는 건, 자신이 경험을 통해 얻은 값진 자산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과도 같기 때문이다.


마지막, ‘끝없는 변화’ 파트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카나리라는 앱을 만들어서 엑시트까지의 내용, 즉 저자의 성공담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이 아주 짧게 축약되어 있었다. 어찌보면 거의 유일하게 저자가 자랑할만, 자랑해도 되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그의 문체는 너무나도 담담했다. 화려하게 포장하려 하지도 않았고, 과장하지도, 떠벌리지도 않았다. 책의 제목만 보았을 때 저자에 대한 나의 이미지는 책의 마지막 장을 읽을 때 즈음에는 정반대로 바뀌어 있었다. 


고마웠다. 이런 책을 써준 저자가 나는 정말 고맙기까지 했다. 이 책을 통해 저자 역시 나와 비슷한 것들로 고민하고, 실수하고, 힘들어 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걸까, 내가 걷고있는 이 길이 바른 길이 맞을까, 고민 끝에 결정한 나의 선택이 혹시 완전히 잘못된 선택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들로 힘들 때, 나와 비슷하게 고민하고, 실수하고, 힘들어하면서도 꿋꿋이 그 길을 걸어갔던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 길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정말이지 큰 위로와 용기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한 친구와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눴다.

"요즘 아이디어 구상하느라 힘들어."
"좋은 아이디어 많이 생각해냈어?"
"괜찮은 아이디어들이 있기는 한데 계속 고민하다 보면 또 아닌 것 같기도 해."
"가장 최근에 생각해낸 아이디어 있어? 있으면 말해줘."
"백만 불짜리 아이디어를 그렇게 쉽게 말해줄 수는 없지. 말해줄테니 백만 불 줄래?"
"너 드디어 정신 나갔구나."
"그럼 천 달러는 어때?"
"그냥 안 들을래."
"이 아이디어가 정말 일생일대의 아이디어이고 무조건 돈을 내야 들을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너는 얼마까지 지불할 수 있어?"
"아무리 많이 줘도 10달러 이상은 절대로 안 준다."
"그럼 결국 백만 불짜리 내 아이디어의 실제 가치는 10달러인거네."
"그렇다고 볼 수 있지. 똑똑하네."

농담에서 시작된 대화였지만 나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백만 불짜리 아이디어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백만 불짜리 아이디어는 실제 가치도 백만 불이어야 한다. 하지만  친구와의 흥정에서 내가 백만 불로 매긴 아이디어 가격은 10달러로 떨어졌다. 물론 누구의 아이디어인가에 따라 이 가격은 변동될 수 있다. 워런 버핏의 다음 투자 상품 아이디어를 들으려면 훨씬 큰돈을 지불해야 할 것이고, 레리 페이지가 생각하는 구글의 다음 비밀 프로젝트에 관한 아이디어라면 그 가치가 더 높을 수 있다. 하지만 버핏과 페이지가 제아무리 유명인사라 해도 이들의 아이디어를 듣는 데 백만 불을 기꺼이 낼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결국 아이디어 자체만으로 가치가 쉽게 형성되지 않는다. 아이디어가 누구의 손에 들려 있고 그 사람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그 아이디어를 실행하느냐에 따라 아이디어의 잠재적 가치가 백만 불짜리가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 해도 제대로 실행되지 않는다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의미다.

다소 우스꽝스럽고도 극단적인 가정을 해보자. 빌 게이츠가 갑자기 한국에 와서 치킨 사업을 한다고 상상해보자. 그리고 당신의 백수 친구인 철수는 신재생에너지 기술개발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해보자. 투자자인 당신은 두 가지 사업 아이템 중 하나를 선택해 투자할 수 있다. 자, 당신은 누구에게 투자할 것인가? 당신은 게이츠가 한국 요식업과 치킨 사업에 대해 알 리 없다고 생각한다. 치킨 사업 아이디어는 특별하지도 않다. 게다가 소프트웨어를 다루던 사람이 치킨 사업이 웬 말인가.

하지만 그는 뛰어난 사업가이고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개인 브랜드를 구축하고 있으며, 거의 무한하다고 할 수 있는 자본 또한 있다. 시장이 아무리 작다고 해도 한국에서 성공하면 게이츠의 명성으로 외국 진출은 쉽게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즉 아이디어 자체는 특별하지 않지만 그것을 누가 실행하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지는 것이다.

이제 철수의 아이디어인 신재생에너지 기술개발 사업을 생각해보자. 이 아이디어는 실현되기만 한다면 인류의 운명을 바꿀 만큼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하지만 철수는 신재생에너지 기술개발에 대한 사업 경험이 부족한 데다 에너지 업계에 대해 문외한이다. 이런 철수에게 과연 누가 투자를 할가? 철수의 사업 아이디어가 게이츠의 치킨 사업보다 훨씬 훌륭하고 잠재력이 뛰어나지만 그에게 투자할 사람은 그의 부모님밖에 없을 것이다.

사업을 시작할 때 가장 중요한 게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던 우리는 다행히 빠른 시간 안에 그것이 큰 오산임을 깨달았다. 사업에서 아이디어는 상대적으로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페이스북은 이미 소셜네트워크가 여럿 존재하는 가운데 출시됐고, 구글은 선두를 달리던 검색엔진들이 포털사이트로 탈바꿈하던 시기에 홀로 검색의 중요성을 외치던 박사 논문 프로젝트에 지나지 않았다.

미국에서 성공한 사업 모델을 그대로 유럽으로 가져가 큰 성공을 거둔 알렉산더, 마크, 올리버 샘워 삼형제의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들은 미국에서 성공 사업 모델로 증명된 이베이, 그루폰, 우버, 자포스와 같은 회사를 그대로 모방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한국의 소셜커머스 사이트들도 그루폰의 사업 모델을 그대로 도입해 공전의 히트를 쳤다. 이들 사업 모델은 그리 특별하지 않은 아이디어를 뛰어난 감각과 실력을 발휘해 실행한 결과 큰 성공을 거둔 사례들이다.

이처럼 평범한 아이디어라 해도 창업자가 체계적으로 실행하면 성공을 거둘 수 있다. 반대로 제아무리 새롭고 가능성 있는 아이디어라 해도 창업자의 능력이 부족하면 실패하고 만다. 우리는 이후 대박 아이디어 하나만 있으면 성공할 거라고 믿었던 어리석은 생각을 버렸고 당연히 아이디어에만 초점을 맞췄던 토론도 중단했다. 백만 불짜리 아이디어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pp.57-61


물론 이 책의 조언들 모두가 나에게 주옥같고, 혹은 큰 도움이 된 것은 아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내용들은 저자가 실제로 실리콘밸리에서 스타트업을 하던 그 당시에는 새로운 것이었을지 몰라도, 이제는 그 내용이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져  스타트업을 하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대부분 알고 있을 만한 내용이었다. 예를 들어 아이디어보다는 실행력이 중요하다든가, 최소한의 핵심적인 기능을 가진  제품을 만들어서 테스트해보라는 등의 조언은 이제 이 쪽 분야에서는 마치 기본 상식처럼 된 이야기들이다.


이 부분 역시 마찬가지다. 엔젤 투자자들이 스타트업에 투자를 평가할 때 보통 아이디어보다는 멤버 구성과 목표 시장 규모를 본다고들 한다. 스타트업 쪽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시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있고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는 인식이라고도 볼 수 있다.


전망 좋은 사업에 대한 환상

전망이 좋은 사업은 항상 존재한다. 전망 좋은 사업 아이템을 잡으려면 노력과 경험에서 얻은 지식을 토대로 트렌드를 읽고 기회를 포착해야 한다. 하지만 모두가 트렌드의 파도를 타고 성공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전망이 좋다고 해서 전문지식이 없는 분야에 무턱대고 뛰어드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p.66


트렌디한 아이템은 항상 매력적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핀테크나 IoT, O2O, 그리고 머신러닝이 그렇다. 하지만 이들과 관련된 아이템을 선택한다고 해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어찌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실제로 행하기는 쉽지 않은 말이다. 마치 핀테크를 하면 그래도 좀 더 쉽게 성공할 수 있을 것 같고, IoT나 O2O 서비스가 아니면 아무도 쳐다봐주지 않을 것 같다. 자신의 인생을 걸고 하는 일에, 좀 더 성공하기 쉬워 보이는 방향이 있음에도, 모두가 그 방향에 관심을 가지고 있음에도 나는 다른 방향을 바라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이런 말 한마디 한마디가 고맙다. 걱정되고 고민되겠지만, 당신이, 지금 내가 믿고 있는 그 방향으로 계속 나가도 된다는 그 조언이 고맙다. 최소한 나처럼 해서 성공한 사람이 있다는거니까, 그거면 된거다.


제품의 필요성

회의를 통해 아이디어를 구상할 때의 단점은, 현존하지 않는 가상의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답안을 내놓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스타트업의 제품과 서비스가 사람들이 느끼는 욕구, 즉 문제점을 제대로 해결하고 있느냐에 따라 스타트업의 성공이 판가름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스타트업을 시작하기 전에 연습 삼아 개인적인 프로젝트를 여러 개 시도해본 적이 있다. 그 때 생각해냈던 아이디어들 중에는 현존하지 않는 문제점을 해결하려 했던 게 참 많았다. 대표적인 예가 케이팝(K-POP) 아이돌의 사진을 올리고 공유하며 스크랩할 수 있는 스타캐처(StarKatcher)라는 사이트였다.

이 사이트에 접속하면 다른 회원들이 스크랩해놓은 케이팝 아이돌의 사진을 볼 수 있었고 회원 가입 후에는 내가 원하는 사진이나 동영상을 스크랩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이런 서비스를 만들면 케이팝을 좋아하는 팬들이 재밌어할 것이고 당연히 그들이 적극적으로 사용할 거라고 믿었다. 초기 반응은 괜찮았다. 1000명이 넘는 사용자가 방문했고 사이트는 잘 운영되는 듯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이트를 지속적으로 방문하는 사용자의 수는 한 자릿수로 감소했고 우리는 이 프로젝트를 접어야 했다.

이와 같은 프로젝트의 실패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게 마련이지만 스타캐처의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사용자에게 그다지 필요 없는 제품을 만들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사용자가 케이팝 아이돌 사진을 스크랩할 수 있는 사이트가 필요하다'라는 근거 없는 가정을 했고, 그 가정을 전혀 시험해보지 않은 채 사이트를 만드는 데 전념했다. 그 결과는 당연히 실패였다. 스타캐처는 예쁘게 잘 만들어진 제품이었지만 케이팝 아이돌 사진 스크랩은 당시 사용자가 갖고 있던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이 못 됐던 것이다.

물론 사용자의 실질적인 문제점을 해결하지 않는다고 해서 무조건 실패하라는 법은 없다. 다만 그런 경우 사용자에게 제품이 해결하려 하는 가상의 문제점을 이해시키는 일까지 해내야 한다. 그것은 몇 배나 더 어려운 여정이 될 것이다.

따라서 스타트업 아이디어가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지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명확한 결론이 보이지 않는다면 테스트를 통해 제품의 필요성에 대한 가정을 단계별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아무리 잘 만들어진 제품이라 해도 사용자에게 어필할 수 없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더 자세히 다루겠다.

pp.74-75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예는 정말 그럴 듯 해 보이고,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어보이는 서비스다. 하지만 이 서비스는 실패했고, 그건 이들도 지적하듯이 아래와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우리는 '사용자가 케이팝 아이돌 사진을 스크랩할 수 있는 사이트가 필요하다'라는 근거 없는 가정을 했고, 그 가정을 전혀 시험해보지 않은 채 사이트를 만드는 데 전념했다.


스타트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이런 사례는 분명 되새겨볼만 하다.


스타트업을 꿈꾸는 단계에서 가장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은 '언제', '누구와', '어디서', '어떻게'가 아니다. 자신이 '왜' 스타트업을 꿈꾸는지에 대해 명확하게 답변할 수 있어야 한다. 스타트업을 꼭 시작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가? 자신에게 어떤 열정과 지식이 있는가? 스타트업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왜'라는 질문에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지 못한다면 사업을 위한 사업을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스타트업을 시작한다면 험난한 여정을 거치게 될 것이다. 잘될 수도, 오래갈 수도 없다. 스타트업을 시작하고 싶다면 반드시 자문해봐야 한다. 나는 '왜' 스타트업을 하고 싶은가?

pp.77-78


언젠가 후배가 자기도 친구에게 들었다며 이런 이야기를 했다. 봉준호가 위대한 감독인 이유를 아냐고, 봉준호는 자신이 하고싶은 이야기 담는 동시에 대중에게도 인기가 있는 영화를 만들 줄 안다는거다. 자신이 하고싶은 이야기를 영화에 담기는 쉽다. 알맹이 없이 대중에게 인기있는 영화를 만드는 것도 쉬울 수 있다. 하지만 그 둘을 동시에 하기는 무척이나 힘든데, 봉준호는 그걸 해낸다는거다.


주위를 신경쓰지 않고 내가 하고싶은 일만 할 수도 있고, 내 꿈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들을 하면서 돈을 버는 것도 쉽다.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라면 그 일이 무엇이든 지속될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돈을 벌 수 있는 장치를 함께 넣을수만 있다면 그 일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다. 그 일이 세상을 바꾸는 일이라 할지라도, 그 과정에서 돈을 벌 수 있다면 지속될 수 있다.

내가 스타트업을 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내가 꿈꾸는게 무엇인지 소리지르는 것은 쉽다. 남들보다 좀 더 돈을 버는 것도 그리 어려워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가 꿈꾸는 걸 이루면서 돈도 벌기는 어렵다. 자본주의 세상은, 돈을 함께 벌 수 있어야 지속될 수 있다.


어찌보면 아이러니 한 것이, 타임잇을 만들 때 마음에 안들었던 점 중 하나가 바로 이 부분이다. 돈을 벌 수 없는 것은 그것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도 지속될 수 없다. 위키피디아조차도 매년 운영비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 하물며 대한민국의 고등학생, 고시생, 대학원생들 중 일부만 사용하는 무료 앱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나가기 힘든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 세상에서 가치있는 것의 기준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느냐가 아니라 돈을 벌 수 있느냐에 맞추어져 있는 것 같았다.


...아직은 스스로 답을 내리지 못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창업자가 해야하는 일들

스타트업을 운영하면 내가 하지 않으면 진행이 안되는 일들이 많다. 큰 회사들은 직원이 휴가를 내고 며칠 쉬어도 일은 계속 진행된다. 그 직원이 요직에 있다고 해도 업무를 대신해줄 사람이 항상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타트업은 다르다. 회사에서 개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크기 때문에 누군가 게으름을 피우거나 일을 소홀히 하면 진행이안 되는 일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현실이 창업자를 쉬지 않고 일만 하는 일벌레로 만들고 시간이 흐를수록 서서히 지쳐가게 만든다. 이럴 때일수록 멀리 내다보는 안목과 지혜를 갖추라고 말하지만 그 원칙과 기본을 지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p.82


시간이 흐를수록 창업자를 서서히 지쳐가게 만든다. 이럴 때일수록 멀리 내다보는 안목과 지혜를 갖추라고 말하지만 그 원칙과 기본을 지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뉴질랜드 팀과 보스턴 팀은 매일 화상회의를 통해 제품 기능을 논의했고 최종 결정이 나면 디자인 작업에 들어갔다. 우리는 밤낮없이 일했지만 휴식이 필요할 때는 조깅이나 축구를 하며 쉬기도 했다. 일하고 싶으면 일하고 쉬고 싶으면 쉬는 나날들이 계속됐다. 지금 생각하면 이 때가 스타트업을 운영하면서 가장 평온했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회사를 그만둔 뒤 긴장이 풀려 있기도 했고, 그렇게 하고 싶었던 스타트업을 드디어 하게 됐다는 사실에 마냥 신이 났던 것 같다.

이유야 어찌 됐든 간에 나는 대학 때 티마타에서 맛봤던 자유를 다시 경험했다.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감동과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행복감 그리고 비로소 내 시간의 주인이됐다는 자부심 등이 나를 한없이 자유롭게 했고 잠깐이나마 그동안 꿈꿔왔던 스타트업 생활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허니문 기간은 생각보다 빨리 끝났고 현실을 직시하면서 자유의 대가를 하나둘 치르기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사소할 수도 있는 자유의 대가들에 대해 나는 그동안 누구에게도 조언을 들은 적이 없다. 혼자 경험하고 깨달으면서 대처해나갔다. 만약 시간을 되돌려 그때로 돌아간다면 규칙적인 생활을 하라고 조언해주고 싶다.

pp.83-84


앞에서 인용한 부분과도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인 듯 하다. 스타트업을 하다 보면 지치기 쉽고, 자유만 즐기다 보면 그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나 역시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놀고 싶을 때 노는 생활을 짧게나마 해봤고, 그게 굉장히 일의 효율이 좋았던 경험이 있다. 하지만 그게 며칠이 아니라 몇 년이 되면 또 이야기가 달라지겠지. 규칙적인 생활을 하라, 고마운 조언이다.


스타트업을 창업하려면 회사 운영과 제품 개발에 대한 지식도 중요하지만 긍정적인 감정 에너지도 필요하다. 스타트업의 10년 여정을 버텨낼 동력은 감정 에너지다. 눈에 보이는 성과도 중요하지만 오랜 기간 갖가지 시련을 이겨내려면 자기 안의 감정 에너지를 잘 다스려야 한다.

p.138


감정을 잘 다스려야 한다. 정말이지 맞는 말이다.


디자이너가 리더로 성장하도록 돕는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디자인 결정의 이유를 자주 묻는 것이다. 람스의 디자인 십계명이 어떻게 적용됐는지를 묻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다. 다만 질문을 할 때 디자이너를 의심하고 있거나 실력을 못 믿는다는 느낌을 줘서는 절대 안 된다.

pp.205-206


디자인을 그렇게 결정한 이유를 자주 물어라! 굉장히 좋은 조언인 듯 하다.


하루는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던 친구와 미팅을 하면서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눴다.

“다른 회사들도 하는데 우리라고 못할 일은 아니잖아. 우리도 바이럴 마케팅을 하자. 비디오를 포함해 여러 가지 콘텐츠를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퍼뜨리는 거야.”

“말 참 쉽게 한다.”

“못할 것도 없잖아? 좋은 아이디어 하나만 있으면 돼.”

“그래.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시도는 해보자. 하지만 단지 좋은 아이디어 하나만 있으면 바이럴 마케팅에 쉽게 성공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은, 좋은 아이디어 하나만 있으면 스타트업으로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는 믿음이랑 똑같아.”

그 친구의 말이 백번 옳았다. 나는 스타트업의 성공은 좋은 아이디어 하나로 보장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바이럴 마케팅에 대해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pp.212-213


나 역시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했었다. 바이럴, 우리라고 못할 거 있어? 하지만 이 책의 말처럼 바이럴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나와 유사한 생각들을 하고, 비슷한 실수들을 했다는 것이 반갑기도 하고, 이 책에서 언급하는 내용들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도 되었다.


제품의 특성상 바이럴 마케팅이 주된 전략이 되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입소문을 타고 널리 터져 많은 사용자를 끌어들어야 하는 네트워크 구조의 제품들이 그렇다. 이런 경우 바이럴 마케팅은 마케팅 전략이라기보다는 제품의 일부일 가능성이 크다. 이미 말했듯이 마케팅 매니저를 제품 기획과 개발 단계에 참여시켜야 하는 이유다.

제품이 출시된 후에 시도하는 일시적인 전략이 아니라 마케팅 매니저와 함께 기획 단계에서부터 제품의 일부분을 마케팅 전략으로 만든다면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제품의 특성과 무관하게 바이럴 마케팅을 주된 마케팅 전략으로 사용하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다. 적은 비용으로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전략은 많은 고민과 계획이 필요하며 성공 여부에 대한 기대치 조정 또한 필요하다.

p.213


이건 내가 마케팅 수업 등에서 들었던 이야기와 거의 동일하다. 제품의 일부분을 마케팅 전략으로 만들어라.


다음으로 예상되는 이익보다 비용이 더 많이 드는 경우를 살펴보자. 광고 링크 클릭부터 제품 구매까지의 퍼널 분석이 가능한 온라인 캠페인을 제외한다면, 스타트업 마케팅 전략의 효과를 미리 점치는 건 매우 힘들다.

솔직히 말하면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른다. 다음 달에 있을 콘퍼런스에 부스로 참여할 기회가 주어졌는데 스타트업에 가져다줄 이익을 어떻게 예상할 것인가? 스타트업 창업자들과 대학생들을 위한 세미나에 초청받았는데 그곳에  가져갈 홍보물에는 얼마나 투자해야 하는가? 너무나도 기발한 마케팅 전략이 떠올랐는데 이번 분기에 할당된 마케팅 예산을 300퍼센트 초과할 뿐 아니라 이익 측정이 불가능하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정과 모델을 사용해 이익을 점쳐볼 수 있지만 정확하게 예상할 수 있는 경우는 드물다. 마케팅 매니저에게 비용과 이익을 정확하게 계산해 모든 마케팅 전략의 정당화를 요구하는 건 이상적이지 않다. “마케팅 예산으로 100원을 허락할 테니 꼭 200원의 이익을 만들어와”라는 요구는 스타트업 환경에서는 무리다.

이는 비용과 이익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스타트업은 비용 지출을 아껴야 한다. 다만 ‘비용>이익=비효율적인 전략’이라는 절대 공식을 적용하거나 이익 예상이 어려울 때 마케팅 매니저에게 억지로 숫자를 만들어오도록 요구하는 건 피해야 한다. 그보다는 모든 구성원이 머리를 맞대고 이익에 대해 논의하고 전략의 가치를 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 시도해보지 않고 스타트업의 가치를 계산할 수 없는 것처럼 마케팅의 효과도 정확한숫자로 점칠 수 없다.

마케팅 전략의 가치를 이익과 비용의 공식으로만 정의해서는 안된다. 제품을 출시한다고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바이럴 마케팅을 해줄 일도 없지만, 이익이 뚜렷하지 않다고 무조건 포기해야 하는 전략도 없다. 입소문과 바이럴 마케팅을 통해 거둔 성공은 매우 드물다. 스타트업처럼 때로는 마케팅도 불확실한 이익을 위해 도박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마케팅 매니저에게 이 모든 짐을 안겨주는 건 매우 위험하다. 전략의 가치와 기대치를 조정하는 일을 팀원 모두가 함께 나눠야 한다. 그리고 스타트업에 알맞은 마케팅을 하는 게 중요하다.

pp.212-215


사실 마케팅에 대해 많은 의문점들이 있는데, '솔직히 말하면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른다'는 말에 좀 더 자신감이 생기기도 한다.


스타트업에서 쉬운 결정은 없다. 크고 작은 모든 결정에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다양한 시각에서 문제를 파악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우리 팀은 논리적인 결정을 중시하여 가급적 다수결 방식을 사용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최상의 결정은 다수결로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단 한 사람이라도 자기 의견이 가장 논리적이라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끝까지 다른 팀원들을 설득해야 했다.

물론 이런 방식으로 매번 옳은 결정을 내린 건 아니다. 하지만 자료와 지식 그리고 논리를 기반으로 결정을 내리겠다는 우리의 태도는 결과적으로 큰 도움이 됐다.

p.218


맞는 말이다. 어떤 회사의 결정이 다수결로 이루어진다는 건 사실 말이 안된다.


결정을 내리는 일도 비슷하다. 중요한 결정일수록 오랜 시간 고민하게 마련이다. 스타트업이 직면하는 문제들 중 대부분은 정답이 없기에 아무 생각 없이 계속 찬반 공방을 벌이다 보면 끝이 나질 않는다.

초창기에 우리는 중요한 선택을 앞두고 열띤 토론을 벌일 때면 이미 했던 얘기를 다시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대개는 중요한 사항들이 대부분 논의됐기 때문에 얘기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경우였다. 이는 토론을 멈추고 결정을 내려야 할 시간을 놓쳤다는 의미다.

이런 이유에서 선택 마감일을 미리 정해둬야 한다. 중요한 결정은 무리하게 서둘러 처리하기보다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토론하되, 이미 했던 얘기를 다시 하는 순간까지 가서는 안 된다. 스타트업의 가장 중요한 자원은 시간이다. 선택 마감일을 지키는 습관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도록 해준다.

스타트업은 매일매일 중요한 선택을 내려야 한다. 완벽한 선택은 없다. 그래서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결단력 부족으로 선택을 미루는 태도는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것보다 더 나쁘다. 선택의 기로에 서면 상황에 맞는 적절한 방법을 활용해 신속하게 판단을 내려야 한다. 장고 끝에 악수를 둔다는 말이 있듯이 지나친 고민은 오히려 최악의 결정을 불러올 수 있다.

p.225


우리 역시 똑같은 시행착오를 거쳤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슷한 선택들을 했었다. 마치 내가 스타트업을 하면서 겪은 경험들을 누군가가 옆에서 지켜보고 쓴 글인 것 같다.


흔들리지 않는 신념

섀클턴은 죽음의 문턱에 이른 절박한 상황에서도 대원들 모두가 살아서 집으로 돌아가는 걸 목표로 삼았다. 문제는 이 상황을 타개할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리더로서 큰 짐을 지게 된 섀클턴은 많이 두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목표를 향해 달려갔다.

산을 어떻게 오를 것인지 고민하는 일이 경영이라면, 어떤 산을 올라야 하는지 결정하는 일은 리더십이다. 어떤 산을 올라야 하는지 명확하게 아는 사람은 없다. 그저 경험을 토대로 최고의 선택을 내릴 뿐이다. 결국에는 산에 직접 올라봐야 자신의 선택이 옳은 것이었는지 알 수 있다. 리더의 역할을 매번 정답을 맞히는 게 아니다. 그것을 불가능한 일이다. 리더는 주어진 상황에서 가장 현명한 선택을 내리고, 그 선택의 결과가 명확해질 때까지 흔들림 없는 신념을 보여주면 된다. 설령 잘못된 선택을 했더라도 실패에 신속하게 도달할 수 있도록 돕는 일 또한 리더의 책임이다. 정해진 방향이 잘못됐다는 걸 아는 가장 빠른 방법은 그 방향으로 전속력으로 가보는 것이다. 최악의 선택은 두려움에 떨며 가만히 있는 것이다.

스타트업은 자주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정답을 알고 있는 리더는 없다. 길을 가다 보면 잘못 들 수도 있다. 이럴 때 리더는 실수를 재빨리 인식하고 제대로 된 길을 안내해야 한다. 확고한 신념과 재빠른 판단력은 스타트업 리더에게 반드시 필요한 자질이다.

pp.240-241


자기모순 최소화

섀클턴이 절박한 상황에서 힘든 결정을 내릴 때마다 그가 정답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 대원은 없었을 것이다. 대원들은 자신들의 생사가 걸린 그의 결단이 미덥지 못하고 불안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섀클턴을 신뢰했고 그를 따라 어디든 갈 준비가 돼있었다. 섀클턴의 솔선수범하는 자세와 확고한 신념이 대원들의 지지를 얻어낸 것이다. 만약 섀클턴이 자신의 결정을 자주 번복하는 모습을 대원들에게 보였다면 섀클턴을 신뢰하는 대원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우린 구명보트를 타고 섬으로 간다.”

섀클턴이 이렇게 결정한 뒤 다음날 아침에 이런 말을 한다고 상상해보자.

“내가 밤새 생각해봤는데, 그건 좀 아닌 것 같아. 일단 얼음이 더 녹을 때까지 기다려보자.”

물론 자신의 선택을 한 번쯤 번복할 수 있다. 그런데 그가 그날 저녁 다시 마음을 바꾸었다고 해보자.

“아니, 그래도 언젠가는 이 얼음에서 벗어나야 하잖아. 그렇다면 차라리 일찍 가는 게 낫겠어. 내일 떠나자.”

팀의 생사가 걸린 상황에서 리더가 결정을 자주 번복한다면 팀원들의 불안만 가중될 뿐이다. 리더는 경솔해서는 안 된다. 어려울 때일수록 심사숙고한 뒤 결정을 내려야 한다. 팀원들 앞에서 한 번 내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지 않는 게 좋다. 리더는 신뢰를 얻어야 한다. 팀원들에게 ‘저 사람을 따라가면 어떻게든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아’라는 믿음을 줘야 한다.

pp.241-242


인상적이다. 굉장히 인상적이다. 이게 바로 리더십이구나 싶다. 글을 읽는 내 가슴이 뜨거워질 정도다.

이타적이고 모범적인 리더십


스타트업의 리더는 항상 앞장서야 한다. 직급에서 비롯되는 권력이 존재한다면 스타트업은 멀리 갈 수 없다. 스타트업의 CEO는 역할이지 권력이 아니다. CEO는 회사가 나아갈 방향을 정하는 사람이다. 훌륭한 리더는 두려움은 숨기고 용기는 나눈다고 했다. 자기 자신보다 팀원들을 먼저 생각하고 자기희생으로 팀을 이끌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만이 스타트업의 리더가 될 자격이 있다. 섀클턴이 처음부터 끝까지 앞장섰던 것처럼 리더가 직급을 떠나 이타적이고 모범적인 태도를 보여야 팀원들도 주인의식을 갖고 전진한다.

구조적인 혜택이 최소화된 스타트업 환경에서 리더십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다. 직급 뒤에 숨어 지시를 내리는 게 아니라 모범을 보이고 영감을 불어넣어주는 리더가 돼야 한다. 도한 이러한 리더십은 CEO뿐 아니라 팀원 모두에게도 요구되어야 한다. 스타트업에서는 리더는 물론 팀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책임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pp. 242-243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어찌보면 감동적이기까지 한 부분이다.


우리는 이 교훈을 바탕으로 사람들에게 카나리를 설명할 때 ‘왜’사용해야 하는지 납득시키는 데 집중했다. 처음 시도하는 일이라 쉽지 안핬지만 계속 연습하다 보니 어느새 설명을 듣는 사람들의 눈이 반짝거리는 걸 알 수 있었다. 카나리가 무엇인지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카나리는 손 쉽게 쓸 수 있는 스케줄링 기능이 포함되어 있는 아이폰용 캘린더 앱입니다.”

이해하기 쉽고 간단명료한 설명이지만, 이렇게 설명했을 때 큰 관심을 갖고 카나리를 써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우리는 ‘왜’ 카나리를 써야 하는지 이해시키기 위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중요한 비즈니스 미팅이나 친구들과의 만남을 계획할 때 몇 번의 대화가 오가고 나서야 겨우 시간을 잡게 된 경험이 있습니까? 스케줄 관리는 매우 번거로운 일입니다. 카나리는 몇 번의 터치만으로 중요한 미팅을 계획하고 친구들과 만날 수 있게 해주는 혁신적인 스케줄러입니다. 한 마디로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개인 비서인 셈이죠.”

캘린더 앱이란 말은 섹시하지 않다. 스케줄 관리는 누구나 다 귀찮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캘린더 앱이라는 개념을 섹시하게 만들 수 없다는 걸 깨달았고, 이후 카나리를 설명할 때 캘린더 앱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카나리는 캘린더 앱이 아니었다. 소중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스케줄 관리를 도와주는 개인 비서였다.

우리는 이렇게 ‘무엇’과 ‘왜’를 설명하고 스케줄 관리라는 과정을 악당으로 만든 뒤 카나리라는 영웅을 등장시키는 방법으로 6초 피치를 완성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캘린더 앱이라고 설명할 때는 거들떠보지 않았던 사람들이 스케줄 관리라는, 모두가 느끼는 공통점을 꼬집으며 카나리를 소개하자 한번 써보고 싶다고 했다.

정답은 거기에 있었다. 진짜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제품을 제공하면 사람들은 관심을 보인다. 제품을 머리로만 이해시키는 게 아니라 공감대를 형성하도록 만들면 듣는 사람뿐 아니라 설명하는 사람의 태도에도 큰 변화가 생긴다. 제품의 스토리를 잘 구성하고 ‘무엇’과 ‘왜’를 둘 다 효율적으로 잘 설명하면 누구나 성공적인 스토리텔러가 될 수 있다.

pp.260-261


좋은 조언, 감사합니다.


제품이 아닌 배움

린 스타트업은 최소기능제품을 만들라고 권하지만 제품이 린 스타트업의 핵심은 아니다. 검증된 학습을 통해 최소한의 노력으로 가장 빠른 시일 안에 시장에 대한 가정을 입증하는게 린 스타트업의 목표다. 다시 말해 최소기능제품은 제품이 아닐 수도 있다.

우리는 스위터스푼을 만들 때 “무엇이 최소기능제품인가?”라는 질문부터 던졌다. 그러고는 며칠 안에 제품을 디자인하고 곧바로 개발 작업에 들어갔다. 그처럼 빠른 속도로 최소기능제품을 만들면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놓쳤다는 걸 알지 못했다. 어떻게 제품을 만들 것인지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이 제품을 만들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질문하지 않았던 것이다.

리스는 “이 제품을 만들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옳은 질문이 아니라고 했다. 대부분의 제품은 만들 수 있으므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이 제품을 굳이 만들 필요가 있는가?”라고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스위터스푼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음식을 먹을 때 그 음식의 건강지수를 알고 싶어 한다’가 우리가 입증해야 할 가정이었다면 우리의 최소기능제품은 처음부터 제품일 필요가 전혀 없었다. 지인을 인터뷰해 직접 물어본다든지, 아니면 임의로 건강지수를 표시하는 가짜 앱을 만들어 앱에 대한 피드백을 받아도 됐다. 하지만 우리는 ‘최소한의 기능’에 대해서만 고민을 했고 제품이 ‘꼭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결국 몇 주에 걸쳐 최소기능제품을 출시하고 난 뒤에야 그 가정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이런 이유에서 제품 자체를 스타트업의 중심에 놓는 일은 피해야 한다. 대신 제품이 아닌 배움에 집중해야 한다. “이번 주에 제품을 얼마나 만들 수 있을까?”가 아니라 “이번 주에 입증할 가정은 무엇이고 어떤 배움을 얻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제품에 대한 생각보다는 배움에 집중하는 게 더 현명한 전략이다.

pp.264-265


여러 책에서 비슷하게 말한다. '제품 자체를 스타트업의 중심에 놓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그것이 진리가 아니라 할지라도, 최소한 많은 이들이 동의하고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는 뜻일 것이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아직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는 못하기 때문에 좀 더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스타트업의 성공에 관해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재정적인 안정과 자유, 사용자에게 어떤 형태로든 편리함을 제공하는 제품, 인수합병 혹은 상장을 통한 엑시트, 자부심을 가질 수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존중받을 수 있는 회사 브랜드 등 여러 가지 성공의 형태에 대해 논의했다. 누가 말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가 그때 논의했던 여러 성공의 형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게 하나 있다.

“어느 날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서 우리가 만든 제품을 쓰고 있는 걸 발견한다면 그게 성공이지 않을까?”

p.275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타임잇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우리도 똑같이 이야기를 했었다. 고등학생들이, 고시생이, 대학원생들이 우리 앱 써서 공부해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면 우린 성공한게 아닐까.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권도균의 스타트업 경영 수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