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신입생 때였다. <연애와 결혼>이라는 교양과목 첫 수업에서 교수가 물었다.
"이 중에서 장래 꿈이 현모양처인 사람?"
곳곳에서 키득키득 웃음소리가 들렸다. 요즘 세상에 현모양처를 꿈꾸는 시대착오적 사고를 가진 사람이 있을까라는 웃음이었다.
90년대 중반, 난 막 20대가 됐다.
그 시절 내 또래 여자애들의 꿈은 모두 화려한 커리어 우먼이었다. 직장에서 능력을 펼치고, 가정에서는 남편과 가사분담도 공평하게 하는 똑부러지는 여성 말이다. 세상은 우리를 엑스세대라 불렀다. 구시대에 얽매이지 않은 신세대였다. 현모양처는 엄마 세대에나 있을 법한 얘기다.
교수가 다시 칠판으로 눈길을 돌리려는 순간, 한 여학생이 쭈뼛쭈뼛 손을 들었다.
"저는 현모양처가 꿈인데요"
순간 강의실은 웃음바다가 됐다. 다들 그녀의 말이 농담이라 생각했다.
그녀는 자신의 말이 진심인 듯 다시 한번 힘주어 얘기했다. "저는 제 일을 갖기 보다 좋은 남편 만나서 내조 잘하고 훌륭한 엄마가 되고 싶어요"
그 뒤부터 그녀에게는 '현모양처'라는 별명이 늘 따라다녔다.
20년이 넘었다. 그녀는 꿈과 다르게 결혼 문턱 조차 못넘은 싱글로 살고 있다. 작지만 튼실한 회사도 운영하는 CEO이기도 하다.
우리는 지금도 종종 그 시절 이야기를 꺼내며 웃는다.
"넌 진짜 현모양처가 꿈이었어?"
"어. 난 정말 대학 졸업 후 바로 결혼해서 멋진 엄마, 아내로 살고 싶었어. 근데 살다보니 결혼이 싫어지더라"
인생은 때로는 뒤통수를 친다.
'취집(취직 대신 시집)'을 꿈꾸던 내 친구는 결혼을 싫어하는 비혼주의자가 됐고, 그때 키득키득 웃어댔던 친구들의 절반은 대학 졸업하자마자 전업주부가 됐다.
10대 시절, 나의 꿈은 조금더 유치했다. 하이힐과 정장을 멋지게 입은 커리어 우먼이 되어 돈 많고 잘생긴 일등 신랑감을 만나 결혼에 성공하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하이틴 로맨스라 불리는 HR이라는 책의 영향이 컸다. HR은 80~90년대 10대 소녀들에게는 수학의 정석보다 유명한 책이었다. HR의 줄거리는 늘 뻔했다. 아름답고 능력있는 젊은 여성이 남성미가 넘치는 부자 남자와 결혼에 골인한다는 내용이었다. 40년쯤 살게 되면 이게 얼마나 허무맹랑한 이야기인줄 뻔히 알게 되지만, 10대 소녀에게는 무엇보다 가슴 뛰는 상상이었다. HR속 여주인공은 나의 모습이었다.
40세가 훌쩍 넘어선 지금의 나는 어린 시절 꿈꾸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전혀 상상하지 않았던, 플랜 B도 아닌 플랜 Z쯤될 법한 평범한 삶이다.
하이힐과 정장은 결혼식에나 가야 입을까 말까 하고, 직장에서는 능력을 펼치기는 커녕 하루하루 럭비공처럼 이리저리 치이고 있다.
39살에는 40대가 되면 인생이 끝날것 같았다. 하지만 정작 40대가 되도 세상은 그대로였다.
29살에도 그랬다. 30대가 되면 인생이 무미건조해질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청춘과의 이별을 고하기 위해 30살을 한달 앞둔 날 배낭여행을 떠났다. 붉게 타오르던 인도 고아의 아라바아해를 보며 스스로 위로했다. (웃기게도 막상 30대가 되니 이보다 더 신나는 나이대가 없다는 걸 바로 알게 됐지만 말이다)
하지만 50대를 몇년 앞둔 지금은 그때와 사뭇 다르다. 앞서 아홉수와 뭔가 다르다. 초조하고 불안하다.
그래도 29살,39살처럼 막상 숫자 9의 고개를 넘으면 '아, 새로운 나이대도 별게 아니구나'를 느끼게 되려나.
(근데 59살을 생각하면 더 끔찍해진다)
'내 나이가 어때서' 라는 노랫가락에 기대 자조도 해보지만, 사실 40대 후반은 객관적으로 '늙은 나이'다. 인심좋게 미국식 나이로 계산해 2를 빼더라도 꼼짝없이 중년의 범주에 들어간다. 한때는 X세대로 칭송받고, 어딜가나 톡톡튀는 매력을 발산하던 신세대였건만 이제는 '꼰대'라는 말을 들을까 고민하는 영락없는 아줌마가 됐다.
그러나 난 아줌마가 되기 싫은 아줌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