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위구르자치구- 우루무치(1)
우루무치에서 놀란 사실.
첫째, 밤 10시가 되야 해가 지기 시작한다.
둘째, 세련된 대도시였다.
셋째, 여름이 (생각보다) 덥지 않았다.
감숙성 가욕관(嘉峪關)에서 출발한 고속열차는 6시간을 달려 밤 10시 경 우루무치에 도착했다. 창밖에는 누런 황무지가 몇 시간째 끝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건조한 황무지 위에는 수많은 풍력 발전기가 바늘처럼 꽂혀있었다. 우루무치 일대에는 무려 천여개의 풍력발전기가 있다. 다반청(達板城) 지역으로 아시아 최대 규모다. 천산산맥에서 불어오는 강풍을 전기로 바꾸어 준다. 우루무치 전력의 20%를 감당할 정도의 양이다. 광할한 초원과 사막, 천천히 돌아가는 풍력발전기의 풍경은 낯선 행성에 온 듯 그저 몽환적이다.
우루무치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벌써 그렇게 됐나?' 시계를 보니 도착시간인 밤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창밖이 여전히 밝다보니 밤이 온 줄 몰랐던 것이다.
중국은 대륙 전체가 베이징 동일 시간대를 쓴다.
한 나라가 동일 시간대를 쓰는게 당연하지 않냐고 하겠지만, 대륙은 다르다. 미국만 해도 동부와 서부가 시간이 다르다. 중국 또한 남한 면적의 98배나 된다. 위도를 계산해도 베이징과 신장자치구는 최소 3시간이 차이나야 하지만, 중국 정부는 베이징에 모든 대륙의 시계를 맞춘 것이다. 그렇다보니, 우루무치에선 밤 10시가 되야 해가 지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우루무치 스타일의 '백야(白夜)'였다.
짐을 챙겨 기차역 밖으로 나오니 또 한번 놀라운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지겹도록 봤던 황량한 사막 지대는 온데간데 없고 수십 층의 고층 빌딩이 즐비한 대도시가 나타난 것이다. 마치 깊은 잠에서 홀로 깨어난 듯 했다.
우루무치라는 도시는 그렇게 신기루처럼 나에게 다가왔다.
우루무치에서는 그저 쉬었다. 시안을 시작으로 2주가량 여러 도시들을 여행하며 많은 피로가 쌓인것도 사실이다. 하루에 2만보는 기본이었고, 장거리 야간 열차도 여러번 탔다. 대자연의 풍광에 가슴은 설렜지만, 체력적으로는 힘든 여정이었다.
에베레스트산도 베이스캠프가 필요한 것처럼, 우루무치는 본격적으로 시작될 서역(西域) 여행을 위한 전초기지였다.
깨끗하고 저렴한 호텔, 한여름인데도 끈적임없이 뽀송뽀송한 바람을 느낄 수 있는 청명한 날씨, 쾌적한 에어컨이 나오는 대형 쇼핑몰과 식당들. 우루무치에서 호캉스를 했다면 웃을 수도 있지만, 우루무치의 일주일은 동남아시아 휴양지 못지 않았다.
묵힌 옷가지들을 빨고, 여행 사진을 정리했다. 아침에는 우루무치 현지인들의 쉼터인 홍산공원을 걸었고, 저녁에는 흥겨운 신장자치구 음악이 흘러나오는 레스토랑에서 느긋하게 식사를 하기도 했다. 3천년전의 미라가 전시된 신장박물관에서 하루종일 시간을 보낸 적도 있었다. <고독한 미식가>의 고로처럼 어디에도 구속함이 없는 자유로운 시간이었다.
그 중에서도 유독 마음에 든 곳은 '국제대바자르'였다. 현지인들은 '따빠차'라고 부른다.
대바자르에는 내가 중국을 여행하며 먹은 가장 맛있는 양꼬치가 있다. 신선한 고기와 야채가 겹겹이 끼워진 두툼한 꼬치는 불맛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맛을 선사한다.
국제대바자르는 이도교(二道橋)역과 연결되어 있다.
지하철 출구를 나오면 미식 거리와 기념품 거리가 마주보고 있다. 대바자르에 들어가려면 짐검사가 필수다. 시장에 가는데 짐검사까지 해야 하나 싶지만, 신장자치구는 어딜가나 보안 검색이 특히 많다. 정치적인 상황 때문이다.
신장자치구는 청나라 건륭제 이전까지만 해도 이민족들이 살던 미지의 땅이었다. 중원 지역에서 여러번 정복을 시도했지만, 강인한 유목민들이 사는 땅이라 '도호부' 정도만 설치하는 '간접지배' 형식에 그쳤다. 청나라의 전성기를 연 건륭제에 와서야 신장자치구 지역은 청에 편입됐고, 이는 현대 중국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신장자치구 지역에 터를 잡고 살던 위구르, 몽골, 카자흐족들은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생김새, 문화, 언어, 역사까지 한족과 전혀 다른 그들로서는 하루아침에 나라를 빼앗긴 셈이었다.
중국은 신장자치구의 완전한 중국화(中國化)에 공을 들였다. 대규모 경제 개발을 단행했고, 한족을 대거 이주시켰다. 우루무치는 신장자치구의 성도(省都)라, 변화 속도가 빨랐다. 순식간에 고층 빌딩들이 들어섰고, 거리는 정비됐다. 현재 우루무치 인구 중 한족은 75% 이상이 될정도로 많아졌다.
하지만 카슈가르, 쿠처 등 신장자치구 지역의 많은 도시에서는 여전히 분리 독립 투쟁이 거세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중국 정부의 무자비한 인권 탄압이 이뤄진다는 사실이다. 신장자치구 지역의 아름다운 대자연에 감춰진 가슴아픈 현실이다.
과거 우루무치는 동서양의 문화가 교류하던 실크로드 최대 요충지였다.
동서양의 진귀한 물건들이 거래됐고, 수많은 나라 사람들이 오가던 번화한 도시였다.
국제대바자르는 과거 우루무치의 번영을 재현하기 위해 2016년에 만들어졌다.
4천제곱미터의 넓은 규모에 먹거리는 물론 모스크와 오페라극장까지 갖춰어놓고 있다.
그 중 미식거리는 대바자르의 핵심이다.
성인 팔뚝만한 큼직한 양꼬치부터 생선구이, 닭 한마리를 그대로 튀긴 치킨, 얼굴보다 큰 낭 등 신장자치구 지역 음식들이 한자리에 모여있다. 뭘 먹을지 모를땐 생맥주와 양꼬치가 최고다. 신장지역의 맥주인 우수(WOSU) 생맥주는 특히 꼬치구이와 찰떡이다. 생선구이도 좋다. 매콤한 향신료를 뿌려 화덕에 통째로 구워내는 생선구이는 비린내 하나 없이 담백해 맥주 안주로 그만이다.
음식은 중앙에 마련된 테이블에서 먹을 수 있다. 합석도 자유롭다. 스피커에서는 경쾌한 중앙아시아 음악이 흘러나오고,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맛있는 음식냄새가 가득하다.
국제대바자르에서 꼬치를 먹던 순간은 나의 실크로드 여행 중 가장 행복했던 기억 중 하나로 기억된다. 소박하지만 온전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공간, 우루무치를 떠올릴때마다 늘 대바자르가 그리워진다.
맞은편 기념품 거리로 향했다.
황토색의 돔은 파란 하늘과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 신장 자치구 여행은 늘 티끌하나 없는 청명한 날씨였다. 강수량이 적고 미세먼지가 없어, 매일 푸른 바다 같은 맑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신장자치구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건물마다 다양한 기념품으로 가득하다. 중앙아시아 여행을 가면 꼭 사온다는 말린 과일과 견과류가 특히 인기다. 신장자치구 지역은 햇볕이 강하고 건조하다보니 말린 과일이 하나같이 달콤하다. 배낭 무게만 생각하지 않는다면 한가득 사오고 싶을 정도였다.
그 중에서 나의 시선을 끄는 건 두타르다. 두타르는 일반 기타보다 목이 가늘고 하체가 불룩한 모양새를 가진 악기로, 위구르족 등 중앙아시아의 전통 민속악기다. 현이 두개밖에 없는 단순한 구조인데도, 음색이 꽤 구슬프다. 깊은 울림과 서정성이 있다.
실크로드 여행을 하다보면 거리에서 종종 두타르 연주 소리가 들려오는데, 그럴때면 늘 발걸음을 멈추고 애달프고 처연한 노랫 가락에 귀를 쫑긋 세우곤 했다.
오감을 행복하게 해주는 곳, 어찌 우루무치라는 도시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