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애주 선생님의 글을 쓰던 중 부모님이 편찮으셔서 잠시 멈췄는데..
지금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이애주 선생님 글은 더 시간 들여서 조만간 2부를 올리겠습니다.
지금은 머리가 하얘서 글을 못 쓰겠어요.
안녕히 가세요. 선생님...
저는 일이 안 풀리면 오히려 운동을 더 열심히 하고, 영양제를 챙겨 먹고, 공부도 하고, 재밌는 일을 찾아서 합니다. 어차피 세상일은 내 뜻대로 안 되니까, ‘나’라도 내 뜻대로 하려고요. 가만 생각해 보면, 나를 키우는 게 게임에서 캐릭터 키우는 것보다 더 쉬운 일 같습니다.
요새 저를 열심히 키우고 있습니다. 일이 안 풀린다는 말이겠죠? 실은 근래 지인들의 죽음 소식을 많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비보를 접할 때마다 가라앉았으나, 갈수록 죽음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먼저 가건, 지인이 먼저 가건 서로 아쉽지 않게 잘해주고, 이해하고, 자주 연락하려고 합니다. 잊어서는 안 되는 분들도 찾아서 나름 공부하고요.
제일 처음 공부한 사람은 이애주 선생(이하 호칭 생략)입니다. 근래 이상하게 이애주 춤을 자주 봤습니다. 역시 사운드포럼에서도 이애주의 승무와 살풀이춤을 봤습니다.
이애주는 1947년 10월 17일생이고, 서울대 사범대학 체육교육과와 서울대 문리대 국어국문학과를 나왔습니다. 경기아트센터 이사장이고, 서울대 명예교수고, 많은 분이 알다시피 ‘승무’의 예능 보유자입니다. 승무는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로, 불교의 승려가 무거운 업을 벗는 과정, 속세와의 결별,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희열을 표현합니다. 승무는 1930년대 한성준에 의해 현재와 같이 양식화되었고, 한영숙과 이매방을 중심으로 전승되었습니다.
승무를 추는 무용수의 모습을 보면, 조지훈의 시 <승무>에 적힌 것처럼 ‘파르라니 깎은 머리’에 ‘하이얀 고깔’을 쓰고, 소매는 깁니다. 참, 요새 드라마 <나빌레라> 제목이 시 <승무> 마지막에 적힌 문구입니다. ‘나빌레라’는 ‘나비’와 ‘-ㄹ레라’를 합쳐서 ‘나비 같다’는 의미입니다. 승무 무용수를 보면 정말 소매가 길어서 나비 같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NZbEQfJbUU
영상은 벽사 한영숙 선생 30주기 추모공연 장면입니다.
2012년에 출간된 도서 <우리땅 터벌림>을 보면, 신경림 시인의 글이 나옵니다.
이 땅에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위하여
더불어 숨 쉬고 있는 모든 것들을 위하여
이 땅을 아름답게 만들겠다 죽어간 것들을 위하여
(...)
더불어, 이 땅을 아름답게 만들고 있는
사람들과 더불어 꽃과 나비와 새와 더불어
살아 있는 것들 죽어 있는 것들과 더불어
<우리땅 터벌림>은 2011년 세상을 떠난 사진작가 김영수 선생과 이애주가 함께 진행한 프로젝트입니다. 1999년 여름 백령도에서 춤을 추는 이애주의 모습을 김영수 작가가 사진으로 담기 시작해서 울릉도, 독도, 제주도, 마라도, 백두산, 광개토왕릉터, 압록강, 태백산 등을 찾아서 춤을 추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2010년 11월 강화도 마니산 첨성단에서 마지막 촬영이 있었고요. ‘터벌림’은 이애주의 스승인 한영숙 선생에게 이어받은 ‘태평무’ 가운데 ‘터벌림’춤에서 나온 말입니다. 이애주는 “터벌림의 뜻은 말 그대로 사방팔방으로 터를 벌리며 뻗어나가는 것으로 몸과 마음은 물론 거기에서 이어지는 정신세계의 우주적 확산까지도 의미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땅 터벌림>에서 이애주는 말합니다.
“진짜 춤이란 무지랭이건 명무이건 간에 고달픈 삶을 살아온 모든 사람 누구나가 할 수 있는 자연스런 몸짓, 자연의 춤이다. 사실은 내가 어려서부터 추어왔던 우리 전통춤도, 1980년대 역사의 현장에서 추었던 거리춤도, 4.3의 해원상생 진혼춤도 모두 자연 속에서 자연의 법도대로 추어진 춤들이었다.”
글에서 보듯이 이애주는 국내는 물론 세계 각지를 다니며 한국 전통춤의 가치를 빛냈으며, 민주화 과정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을 춤으로 위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