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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반짝 Feb 27. 2023

<빛 혹은 그림자> 공모전 낙방 글!

(feat. 창피 & 객기)



우연히 메일을 뒤지다 2017년 10월에 <빛 혹은 그림자> 공모전 소식을 듣고 호기롭고도 객기스럽게 응모를 해봤던 글을 찾았다. 결과는 예상하고 있었기에 실망스럽지 않았다. 그리고 굳이 저 작품을 찾아서 읽고 보고 싶지 않았다(애써서 좌절을 만들 필요가 없기에).

2017년 10월이면 내가 일을 시작하기도 전이고, 둘째가 3살일 무렵인데, 나는 무슨 객기로 이 글을 썼던 걸까?

표지의 저 그림을 보며 내 나름대로 상상해서 썼던 글이었고, 아마 분량제한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응모했다가 낙방 소식이 들려오자 그대로 잊어버렸다. 그리고 우연히 어제 그 글을 찾았다. 목적을 잃어버린 글이니 여기에라도 올려서 창피함을 공개해보자! 

*오로지 창밖을 보고 있는 '그녀'를 보면서 지어낸 이야기니 너무 흔해도 비웃지 마시길!^^

<빛 혹은 그림자>

그녀는 며칠째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두통으로 머리가 지끈거렸고 눈을 콕콕 찌르는 고통에도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샤워를 하고, 따뜻한 우유를 마시고, 방을 최대한 어둡게 하고 누워도 잠은 오지 않았다. 잠을 자야한다는 몸의 신호와는 달리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이 끊이질 않았다. 

그녀는 잠들 수 없는 것이 이렇게 고통스러운 일인지 몰랐다. 당연히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다. 하루 종일 집 안에 머물렀지만 깊은 잠은 찾아오지 않았다. 깜빡 잠이 들 때도 있었지만 그때뿐이었다. 잠든 시간은 허무할 정도로 짧아 몸의 피로가 풀리지 않았는데도 잠은 싹 달아나버렸다. 먹을 수도 없었다. 뱃속에서는 제발 뭐라도 넣어달라고 요동쳤지만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물을 간간이 마셨고 커피와 토마토 샐러드를 조금 먹는 게 전부였다.

그녀는 잠들 수 없는 이유를 몰랐다. 걱정거리가 있다거나 무언가에 집중하느라 잠을 놓친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며칠 째 잠을 들 수도, 먹을 수도 없으니 당혹스럽기만 했다. 원인을 곰곰 따져보기도 전에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머리가 무거워 생각들이 체계적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불쑥 나타났다 사라졌다. 갈수록 신경이 날카로워져갔다.


지난 번 모임에서 만난 앤은 왜 나에게 그런 말을 했을까? 자기나 똑바로 하라지. 

옆집 여자는 복도를 걸을 때 힐을 신지 않았으면 좋겠어. 또각거리는 소리가 너무 거슬려.

베란다 방충망에 또 구멍이 났군. 이 집은 아무리 정을 붙이려고 해도 겉도는 느낌이야.


두서없이 얄팍한 분노와 짜증이 솟구쳤다. 한숨 푹 자고 나면 이런 것들은 아무것도 아닐 텐데 도무지 그 잠이라는 것에 들 수가 없었다. 그녀는 이러다 정신을 놔버리는 건 아닌지 덜컥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그렇다고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다. 몸이 정상적인 리듬을 보내지 않으니 아무것도 하기가 싫었다. 집 안에서 그녀가 하는 생각과 행동은 무의미했다.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 몽롱하기만 했다. 

반사적으로 냉장고 문을 열었다. 음식이라고 이름 붙일만한 게 없었다. 며칠째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않았고 외출도 하지 않았으니 당연했다. 냉장고 문을 닫기 직전 귀퉁이에 소시지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는 걸 발견했다. 다섯 개 들이 소시지는 네 곳을 비워놓고 서서히 말라가고 있는 중이었다. 냉장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었는데 그녀의 몸에 변화가 일어났다. 발끝부터 찌릿찌릿한 느낌이 복부를 타고 올라오더니 심장을 콕하고 찔러 식도를 지나 입 안 가득 침을 올려놓았다.


소시지 빵이 먹고 싶어.


갑작스런 목표였다. 오로지 따끈한 소시지 빵을 먹겠다는 일념으로 외출을 했다. 준비하는 시간이 아까워 보이는 대로 옷을 걸쳐 입고 립스틱만 바르고 머리를 질끈 묶었다. 현관문을 나서자 훅 들어오는 열기에 깜짝 놀랐다. 바깥은 여름을 자랑하듯 열기를 한껏 뿜어내고 있었다. 오로지 자야한다는 생각 때문에 집 안이 더운지도 몰랐다.


역시 정상이 아니야. 소시지 빵을 먹고 잠을 자야 돼.


그녀는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더위를 인식하자 입고 있는 옷이 갑갑하게 느껴졌다. 시원한 옷을 찾다 가슴이 네모나게 파인 주황빛이 도는 반팔 원피스를 찾아냈다. 그걸로 갈아입고 소시지 빵을 찾아 나섰다. 해가 머리 위에 떠 있는 것을 보고서야 정오임을 알았다. 소시지 빵을 먹겠다는 생각이 앞서 가방도 없이 지갑만 들고 나온 참이었다. 이렇게 햇볕이 내리쬐는데 뜨거운 소시지 빵을 먹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또다시 몽롱한 생각들이 단편적으로 툭툭 올라왔다. 그런 와중에도 발걸음이 자동으로 그녀가 자주 가는 베이커리로 향했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소시지 빵을 집어 들고 뜨겁게 데워달라고 했다. 커피도 뜨거운 것으로 주문했다. 실내는 무척 시원했지만 이런 날씨에 뜨거운 소시지 빵과 커피를 주문하는 그녀가 의아했을 것이다. 며칠 동안 잠도 못 자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던 그녀가 냉장고에 말라가는 소시지를 보며 강한 식욕을 느껴 이곳까지 온 것만큼은 아닐 테지만 말이다.


곧 주문한 소시지 빵과 커피가 나왔다. 그녀는 자르지도 않은 채 소시지 빵을 단박에 베어 물었다. 그와 동시에 그녀는 멈췄다. 이상했다. 평소에 먹던 소시지 빵 맛을 상상하며 이곳에 왔는데 그 맛이 아니었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제대로 된 숙면을 취하지 못하면서 미각에도 이상이 왔는지도 몰랐다. 순식간에 식욕이 달아나버렸고 소시지 빵을 내려놓고 커피만 마셨다. 그렇게 커피를 다 마시고 한 입 베어 문 소시지 빵을 포장해 달라고 했다. 이대로 남겨두기엔 미안했다. 


밖으로 나오자 그녀는 모든 의욕이 사라졌다. 손에는 포장 된 소시지 빵과 지갑이 들려 있었고 목적도 이유도 없는 걷기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급기야 몸을 피곤하게 하면 잠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새로운 목표가 생긴 것 처럼 몽롱했던 그녀의 눈빛이 순간 또렷하게 돌아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주변은 살피지 않은 채 오로지 걷기만 했다. 두 다리를 움직이는 것이 잠과 직결되는 것처럼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걷다 보니 어느새 한적하고 와본 적 없는 낯선 동네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알았다. 게다가 땀범벅이었다. 누구라도 나가고 싶지 않을 한낮의 뜨거움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걸었으니 당연했다. 목도 말랐고 쉬고 싶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바로 앞에 세 갈래의 길이 나왔다. 머리가 고민하는 사이 그녀의 발은 어느새 오른쪽으로 걷고 있었다. 불쑥 숲이 보였다. 한적한 동네라고 생각했지만 숲은 느닷없었다. 그런데도 발걸음이 저절로 그곳으로 향했다. 한낮이라도 낯선 곳에 잘 가지 않는 그녀로서는 의아한 일이었다. 숲으로 들어간 그녀는 조금 전에 걸었던 도시의 풍경과 완전히 다른 세계임을 느꼈다.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고 숨쉬기가 용이해진 것 같았다. 오로지 자야한다는 생각 뿐, 숨 쉬는 것에 이상을 느끼지 못했는데 숲속에 들어오자 더 많은 공기가 몸속으로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숲을 걷고 있자니 무서운 생각도 들었다. 여기가 어딘지 정확히 몰랐고 잠이 부족한 그녀는 혹시 꿈속이 아닌가 하는 착각까지 들었다. 그때 왼쪽으로 흰 건물이 보였다. 이질적이었다. 이 숲도 그러한데 거기다 건물이라니. 좀 더 걸어 다가가 보니 모텔이었다. 굿 모닝 모텔? 순간 그녀는 짜증이 올라왔다. 좋은 아침이라니. 며칠 동안 잠을 이루지 못해 좀비마냥 거리를 걷고 있는데 좋은 아침이라니. 짜증이 분노로 바뀌기 직전 그녀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정신을 차릴 요량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모텔에 들어가 보고 싶었다. 그런 생각 역시 평소의 그녀답지 않았다. 


낯선 동네, 낯선 길, 낯선 모텔.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 혼자 이 묘한 상황을 설명하기는 힘들었다. 남자와 동행했다면 모든 게 자연스러웠을까? 모텔 안으로 들어가자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럴 만 했다. 한낮의 한적한 숲 옆의 모텔에 누가 있을 것인가. 카운터 앞에 멍하니 서 있자니 어디선가 사람이 나타났다. 직원인지, 주인인지, 주방 아주머니인지 구분이 가지 않은 묘한 사람이었다. 대뜸 묵고 가는지 물었다. 그럴 생각이 전혀 없는 그녀는 엉뚱하게도 그렇다고 말했다. 그것으로 부족해서 식사를 할 수 있냐고 물었다. 이곳은 아침에만 식사할 수 있어서 안 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녀 역시 물러서지 않고 며칠 동안 잠도 못자고 먹지도 못했다며 식사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직원, 주인, 주방 아주머니일지 모를 그녀는 화가 난 듯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러고는 자기가 점심으로 만들어 먹었던 스튜가 남아 있으니 일단 그걸 먹고 제대로 된 식사는 내일 아침에 하라고 했다. 그녀는 고맙다고 말했다. 숙박비만 계산하고 식사비는 체크아웃 할 때 계산하라고 했다. 그렇게 키를 받아들고 지정된 방으로 갔다. 별다를 것 없는 내부였다. 오히려 쇠락한 기운이 엿보이는 내부였지만 이상하게 안락한 기분이 들었다. 하얀 시트가 씌워진 침대에 앉아 손으로 문질러 봤다. 빳빳했고 햇살을 가득 머금은 것 같았다. 그녀는 그대로 벌렁 누웠다. 시트에서 세제와 희미한 햇빛 냄새가 났다. 이런 분위기라면 어쩌면 오늘은 잠들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쟁반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스튜를 들고 그녀가 서 있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쟁반을 받아들자 그녀는 고개를 까닥하고 가버렸다. 


설마 대구 스튜? 괜히 코드(cod)라는 이름을 가진 동네가 아니겠지.


식욕이 하나도 없었지만 무리하게 식사를 요구했으니 맛이라도 보기로 했다. 후후 불어 조심스레 입 안으로 스튜를 밀어 넣자마자 그녀는 놀라고 말았다. 너무 맛있었다. 몸속의 감각이 모두 돌아오는 듯한 굉장한 맛이었다. 세포 하나하나를 깨워 이 맛을 전달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허겁지겁 스튜를 먹었다. 금세 그릇은 비워졌고 이 묘한 기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가 이곳으로 온 것도, 대구 스튜를 먹은 것도 모두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인데도 예정된 일처럼 느껴졌다. 수면부족과 영양부족으로 뻣뻣하던 몸이 스튜로 인해 서서히 데워졌다. 금세 나른해졌고 졸렸다. 그녀는 커튼도 치지 않은 채 그대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햇빛 냄새가 났고 코끝에선 스튜 향까지 느껴졌다. 며칠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사실이 당연하고 무색할 정도로 그녀는 깊은 잠에 빠졌다. 꿈도 없는 깊은 잠이었다. 원래 그곳이 그녀의 자리인양 침대에 그녀의 몸이 그대로 녹아들었다.


햇살이 들어왔다. 새들이 시끄럽게 지저귀고 있었다. 그녀의 눈이 번쩍 떠졌다. 현실 감각이 없었지만 정신은 또렷했고 상쾌했다. 곧장 몸을 일으켜 발코니로 나갔다. 그제야 어제의 일들이 기억나기 시작했다. 푹 끓인 대구 스튜를 맛있게 먹고 그녀 역시 푹 곯아떨어졌다는 사실이 말이다. 햇살이 기분 좋게 그녀의 얼굴과 목, 팔에 닿았다. 그리고 바람도 불어왔다. 도시는 푹푹 찌는 불쾌한 아침일 텐데 이곳은 숲이 있어서 그런지 초가을 같았다. 핏기 없었던 그녀의 혈색이 돌아오고 있었다. 그녀는 한참을 그렇게 발코니에 손을 기댄 채 햇살을 받아냈다. 씻지도 않았고, 외출할 때 입은 옷 그대로였지만 어느 때보다 상쾌했다. 잠을 이루지 못했던 일들이 먼 과거처럼 느껴졌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 문득 아침 식사가 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녀는 지갑만 들고 미련 없이 그 방을 나왔다. 침대 옆 테이블엔 포장해 온 소시지 빵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아마 그녀는 미안하단 이유로 그 빵을 찾으러 돌아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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