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다 미리 <미우라 씨의 친구>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 ‘영원하다’라는 말을 믿지 않은 지 오래되었지만, 영원까지는 아니더라도 꽤 오랫동안 유지 될 것이라 의심하지 않았던 관계는 분명 있었다. 그래서인지 띠지에 적힌 ‘소중한 관계도 사소한 균열 하나로 간단히 깨져버린다.’라는 말이 참 씁쓸했다. 나이가 들면 좀 덜할 줄 알았는데, 늘상 익숙해지지 않는 건 어떻게든 얽히게 되는 관계다. 어떤 관계든 유지가 되려면 노력해야 하고, 시간을 쏟아야 하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생겨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주인공 미우라 씨가 하우스 셰어를 하며 친구와 함께 지내는 모습에 조금 놀랐다. 타인과 한집에 살면서 잘 지내는 사람들도 많지만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인 것 같기 때문이었다. 미우라 씨가 친구와 함께 대화하고, 동네 구경을 시켜주는 부분에서 ‘이 친구는 참 말이 별로 없네.’라는 생각을 하며, 미우라 씨와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다는 근본 없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러면서 책 제목이 자꾸 마음에 걸려 나중에 사이가 안 좋아지는 건 아닐까 계속 걱정을 했다. 사이가 멀어진 친구는 다른 사람이었지만 미우라 씨의 친구의 정체가 밝혀졌을 때 첫 부분으로 돌아가 몇 번을 다시 읽었다. 미우라 씨의 친구가 로봇이었다니! 사람과 너무 비슷해서 로봇이라고 의심하지 않았고, <친구>라는 작품이 미우라 씨에게 오기까지의 과정을 복기하면서 저자는 어떻게 이런 작품을 썼는지 놀라웠다.
저자의 작품을 많이 읽어 온 독자라면 이번 작품이 낯설었을 것이다. 나 또한 저자의 만화를 모두 소장하고 있는 터라 비슷한 느낌의 작품일 거라 여기고 편한 마음으로 책을 꺼내 들었다. 번역가도 ‘스포 금지’를 할 정도였으니 나도 ‘친구’의 정체를 밝히지 말아야 하나 고민을 했다. ‘친구’의 정체는 반전이긴 하나 그 친구가 로봇이라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으면 이 작품의 또 다른 의미들이 묻히는 기분이 들었다. 이를테면 이 작품을 만든 카지 씨의 의도와 미우라 씨와의 설레는 로맨스가 그랬다. 물론 백만 엔이나 하는 로봇의 가격도 그렇고, 관처럼 생긴 박스에(적절치 않은 표현인 건 알지만!) 배달되어 온 모습이나, 초기설정 된 네 개의 단어만 말할 수 있다는 것이 낯설고 무섭기도 했다. 왜 꼭 로봇이어야 했는지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같은 직장 동료인 미우라 씨와 카지 씨가 서로가 엄청난 걸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서서히 호감을 갖는 과정에서 괜히 애가 타고 설레기도 했다. 서로가 언제 알아차릴지 궁금했지만 끝까지 밝혀지지는 않았다. 로봇을 만든 작가가 어릴 때 세상을 떠난 여동생의 현재 모습을 추측하며 만든 <친구>라는 작품의 의도를 ‘다양한 곳에 가보길 원할지도 모르겠’다고 추측하는 미우라 씨의 모습의 시선도 신선했다. 감정이 없는 로봇이고, 상대방의 표정과 눈동자를 파악해 네 개의 단어를 말한다고 했지만 그런 로봇과 피크닉도 함께 가고, 산책을 하는 모습과 그 소식을 듣고 좋아하던 <친구>의 작가의 반응에 그제야 조금 공감할 수 있었다. 여동생이 어릴 때 세상을 떠났으니 현재 이런 모습으로 세상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해했다. 그런 의도를 미우라 씨가 공감해 주었고, 그랬기에 함께 살며 친구처럼 대해줄 수 있었을 것이다.
로봇이 등장했으니 먼 미래 사회를 말하는 것 같고, 사람과 너무 비슷한 모습에 놀라움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형태만 다를 뿐 인공지능이나 가상 세계는 우리 주변에 이미 상용화되어 있으며, 어쩌면 먼 미래의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리고 로봇을 인간의 어느 영역까지 허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은 고찰도 해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 나중에 미우라 씨가 로봇을 작가에게 다시 반품한 것도, 작가가 전액을 돌려준 것도 결국은 ‘사람’ 때문이라고 느꼈다. 애인이 생긴 미우라 씨, <친구>라는 작품이 진정한 친구를 만나서 행복한 경험을 하고 네 개의 단어를 모두 말한 것으로 <친구>를 만든 작가의 의도는 모두 발현된 것이 아닐까? 세상을 떠난 여동생이 다시 돌아올 수 없듯이 현재 누려야 할 관계에서 오는 행복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으로 해석했다. 그 관계에 로봇이 방해가 된다는 것이 아니라 매개물이 단지 사람과 너무 비슷해 놀랍고 무서웠던 로봇이었을 뿐, 복잡다단한 감정을 지닌 인간이 로봇보다 더 자유로운 존재였다고 말이다.
저자의 만화 데뷔 20주년이라는 사실도 놀랍고, 기념비적인 작품에 이런 주제를 쓴 것도 신선했다. 저자의 만화를 좋아하는 이유가 섬세한 감정 묘사와 타인과 자신에 대한 관찰 때문인데, 로봇을 등장시켰다는 것도 사회적 흐름을 관찰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면서 좀 더 ‘친구’라는 의미를 확장시켜 본다. 인간이 우위에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수많은 자연적 조건을 존중하는 것. 그리고 인간과 동등함의 기준을 더 확대시킬 때 좀 더 미래지향적인 사회를 꿈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표지의 미우라 씨와 <친구>의 어색하지 않은 다정한 모습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