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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반짝 Jun 26. 2024

작은 풀 한 폭의 기록 일지라도 세상에 무가치한 일은

이소영 <식물과 나>


아침에 푹 자고 일어나서 밖을 보니 날씨가 너무 좋았다. 아이들을 깨워서 학교에 보내고 베란다 문을 활짝 열었다. 1층이어서 그런지 풀 냄새가 가득 올라왔다. 얼마 전에 화단 풀을 깎은 듯한데 그래서인지 풀냄새가 더 좋았다. 간단하게 주방과 거실 정리를 하는데, 문득 '음악을 좋아하면 좋은 나를 위해 스피커를 사서 음악을 들어보라!'는 말이 떠올라서 책장 맨 아래 먼지가 켜켜이 쌓인 오디오를 꺼냈다. 오래전에 선물로 받은 중고 오디오인데 음악을 듣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스피커 소리가 좀 왔다 갔다 하지만 잘 맞추면 그럭저럭 들을 만했다. 오디오 세트를 거실 텔레비전 옆으로 꺼내서 음악을 틀었다. 오디오 안에 클래식 음반이 들어가 있기에 그대로 재생시켰다. 

 

음악을 들으며 집안 여기저기 묵은 먼지를 닦아내니 나름대로 능률이 올라왔다. 간식을 조금 먹고 창가에 있는 책상에 앉아 이 책을 꺼냈다. 오래전에 읽다 만 책이었는데, 현재 모든 상황들이 이 책을 떠오르게 했다. 오랜만에 다시 꺼낸 책이었는데도 마치 얼마 전에 읽다 만 책처럼 저자의 글은 친근했고 좋았다. 오래도록 관찰해서 식물을 세밀하게 그려내야 하는 저자의 차분한 내면을 들여다 보는 게 마치 식물 곳곳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내가 매일 살아내야 하는 평범한 하루처럼 어디선가 식물들도 제각각의 삶을 살아내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기록들이었다.

 

모두가 각자의 역할을 해내고 있는 한여름 숲속에서, 제각기 다른 생물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오늘도 힘을 얻는다. 작은 풀 한 폭의 기록 일지라도 세상에 무가치한 일은 없다는 것을, 긴 관찰의 여정에서 배운다. 107쪽

 

처음에는 저자의 직업이 생소했다. 식물세밀화가라는 직업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식물을 세세히 관찰하고 그려내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저자가 관찰하는 식물의 대상이 되고 싶다는 엉뚱한 생각이 든 적도 있었다. 누군가 나를 저렇게 세세히 관찰하고 기록해 준다면 부담스러울 것 같으면서도 존재감만으로도 충만할 것 같은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저자는 자신이 하는 일을 소개해 주는데 ‘식물을 소재로 사유를 담거나 아름다움에 목적을 두고 그린 그림이 식물화라면 식물세밀화는 과학 안에서, 식물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그려지는 해부도라고. 그러니 오로지 식물의 형태에만 집중해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그려야 하는 그림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이런 설명을 들으니 내가 해부되고, 객관적으로 바라봐져야 한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식물들에게 배울만한 점이 많은 부분에서 누군가에게 객관화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식물들은 살아온 삶을 거리낌 없이 낱낱이 드러내는 반면, 내 삶의 오점들이 낱낱이 드러날 것 같은 기분에 자꾸 나를 식물화하는 혼란스러움이 우습기도 했다. 

 

사람들이 신기하게 생겼다며 좋아하거나, 무섭게 생겼다며 기피하는 벌레잡이식물의 형태가 내게는 어쩐지 참 슬프게 느껴진다. 다른 식물들에선 보지 못했던 그들의 기이하고 생소한 형태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166~167쪽

 

이런 면은 슬프게도 인간과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은 각자 누구나 있지 않을까? 인간이라면 내면의 몸부림은 각자 하나쯤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일이 되었든, 습관이 되었든 나도 그런 모습이 하나쯤 있지만 식물처럼 매 순간 치열하지는 못했다. 기이한 형태가 될까 겁내거나 타인을 의식하느라 생존을 위한 몸부림에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게 식물 앞에서 조금은 부끄러워졌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항상 이렇게 부끄럽고 작아지는 기분만 들었던 건 아니다. 우리나라 참질경이에 대한 부분을 읽는데 잊고 있었던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다. 저자가 작업실 근처의 질경이를 관찰하다, 잎맥이 특이해 잎을 반으로 자르니 그 안에서 다섯 개의 실줄기가 액체와 함께 나왔다고 했다. 시골 두메산골에서 자란 나는 어린 시절 놀잇감이 없어서 자연에서 늘 찾곤 했는데, 질경이의 그 질긴 실줄기를 이용해 제기를 만들어 가지고 놀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질경이의 줄기를 잘라도 실줄기가 나오는데 여러 잎의 실줄기끼리 엮으면 단단한 재기가 되었다. 누가 더 풍성하고 단단한 제기를 만드는지 내기도 하고, 잎이 시들때까지 반나절은 너끈히 놀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미안해지기도 하지만 내 어린시절 한 부분을 차지해준 질경이가 고맙게 느껴진다. 

 

저자는 식물만큼이나 인간도 다른 생물의 공격을 당하기 쉬운 수동적인 존재라고 말한다. 오히려 식물은 우리보다 강하며, 오랜 시간 끈기 있게 변화하여 지능적으로 대응할 방법을 강구해낸다고 한다. 또한 밟히면서 더 먼 곳으로 나아가는 질경이에 저자는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직업의 특성상 저자와 나의 관점은 다르지만 다른 의미로 질경이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공통점으로 충분히 위안을 얻었다. 내가 내 자신에게 가장 잘 못하기에 바라는 점이 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봐 주길 바라는 것처럼 식물들도, 이 세상 모든 것들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법을 배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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