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따뜻한 정을 엿볼 수 있는 시장
은아, 잘 지내지?
나는 이제 출산을 2개월 앞두고 있어서 육아용품을 하나 둘 알아보고 있어. 찾아보면 찾아볼수록 아기 키우려면 돈이 있어야 된다는 말이 실감 나더라. 블로그나 유튜브에서 육아 필수템이라고 적혀 있는 것들은 대부분 10만 원~20만 원 사이라서 살 엄두가 안 나더라고. 그리고 육아가 처음이다 보니까 진짜 필요한 걸까 하고 의문을 품기도 했어. 육아를 시작한 언니, 오빠들이 인스타에 아이 용품을 올린 걸 보면 척척 뭔가 좋은 제품들을 많이 쓰던데, 나는 그렇게 못해줄까 봐 덜컥 겁이 나더라.
혼자 걱정만 하지 말고 자문을 많이 구해야겠다는 생각에 육아를 하고 있는 지인들한테 많이 물어봤어. 맘 카페에서 출산 전에 준비해야 하는 물품들을 쭉 보내 보니까 지인들마다 반응이 정말 다르더라. 어떤 언니는 필수로 필요한 것들이라고 말하고, 어떤 언니는 당근 마켓에서 구입해도 괜찮다. 육아용품은 사용 기간이 짧다 보니 당근 마켓에서 좋은 제품을 구해서 사용하라고 하더라고. 나도 지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을 정리해봤는데 아무래도 아이 몸에 직접 닿는 것 빼고는 당근 마켓을 이용해봐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생각이 더 확실해진 계기는 필수라고 했던 용품들의 가격을 보고 나서야. 아기 침대만 해도 15~20만 원, 바구니 카시트 8만 원, 카시트 15~20만 원, 젖병 소독기 15~20만 원 정도. 보통 20만 원이 기본이더라고. 국민 템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말이야. 그런데 이렇게 구입해 놓고 3개월 미만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까 나는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 그래서 당근 마켓을 이용해 보기로 했지.
당근 마켓을 이용해 본 경험은 많이 없었어. 연애 때 선물 받은 인형들을 몇 개 팔아보고, 결혼해서 이사 올 때 화장대를 받은 기억만 있다. 그러곤 내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까 봐 어플을 지웠었는데 오랜만에 들어가 본 당근 마켓의 중고 시장은 신세계더라. 어린이날 선물을 당근 마켓에서 구입하기도 하나 봐. 당근 마켓 자체에서 어린이날 선물로 추천해주는 중고 섹션도 있었고, 지역을 잘 설정하면 뚜벅이로 제품을 거래할 수 있는 곳도 있었어. 예전에는 너무 먼 곳에서 제품을 받아와서 남편이랑 항상 동행해야 하는 중고 거래였는데, 제품을 볼 수 있는 지역을 1-2개로 최소화하다 보니까 뚜벅이로 거래할 수 있는 곳이 생각보다 많더라고. 그리고 제일 눈에 들어왔던 건 무료 나눔이었어. 나도 무료 나눔에 도전해 봤는데 대부분 집 앞 문고리 거래를 많이 하시더라고. 코로나도 있고 하니까 비대면 거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
내가 제일 먼저 시도했던 제품은 아이 의자야. 아이들이 목을 가눌 수 있고, 앉기 시작할 때 사용하면 되는 의자라고 하더라고. 너무 귀여웠어. 사용감도 있고, 스크래치도 있지만 깨끗이 닦아 사용하면 정말 좋은 제품이더라. 무료 나눔 받을 때 어떻게 가야 하는지 고민이 많았는데 대부분 음료나 스낵 종류를 가져간다고 하시더라고. 그래서 두 번 다 두유랑 주스 몇 개를 예쁜 봉지에 담아 문고리에 걸어드리고 왔어. ‘아이고 안 가져오셔도 되는데’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래도 무언가 가져감으로써 무료로 나눠주는 사람, 가져오는 사람 모두 행복한 거래를 한 기분이 들더라. 서로 거래 후기도 남겨주며 정을 많이 느꼈어.
두 번째로 오천 원에 구입한 제품이 있는데 바로 젖병 소독기야. 지인들이 이거는 필수템이라고 많이 알려줬는데 한 언니가 당근으로 구입해도 무관하다고 해서 눈이 빠지게 당근 마켓 어플을 계속 찾아봤어. 그러다가 레이퀸 젖병 소독기이고, 작동도 잘 되고, 전구도 잘 들어오는 제품이 있는 거야. 그래서 지역을 바로 알아봤는데 뚜벅이로 갈 수 있는 거리라 카트를 끌고 다녀왔다. 미리 계좌로 돈을 입금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번에는 돈을 직접 줘야 하는 상황이라 살짝 민망하긴 했지만 거래 후 카트에 실어 집으로 걸어오는데 괜한 뿌듯함이 밀려오더라.
세밴째로 만 원 구입한 제품은 아이 카시트야. 바구니 카시트의 경우 신생아 3개월만 사용하고, 거의 방치된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많이 찾아봤는데 대부분 오만 원 단위로 판매를 하셨었어. 그래서 포기할까. 그냥 대여를 해야 할까 고민하던 찰나에 좋은 제품이 뜬 거야. 그래서 바로 연락드렸지. 차와 너무 어울리는 색깔의 카시트를 구입한 것 같아 기분이 좋더라고.
이렇게 내가 원하는 제품들을 당근 마켓에서 구입하고 나니 현명한 소비를 한 기분이 들고, 뿌듯하더라. 한편으로 저걸 언제 소독하지 하는 생각도 들지만 남은 두 달 동안 시간을 쪼개면 충분히 소독을 하고 준비할 수 있을 것 같아.
거래를 하면서 제일 기분이 좋았던 말은 내가 가져간 쿠키를 보시고, ‘좋은 이웃을 만난 것 같아 기분이 좋네요~’라는 말이었어. 비대면 거래라 그분의 얼굴을 직접 보진 못했지만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볍고 즐거워지더라.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따뜻한 말을 건넬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이야.
당근 마켓 말고도 자주 들어가는 맘 카페가 있는데 그곳에서도 중고거래를 하는 경우가 있어. 육아를 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다 보니 좋은 제품을 거래하는 분들이 많더라. 예전에는 중고 제품을 거래하는 것에 대해 약간의 두려움이 있었어. 돈을 들고 갔는데 위험한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도 한 적이 있고, 예전에 어떤 분이 가방 중고 거래를 했는데 그냥 종이가 왔다 이런 후기들을 몇 개 봤어서 무서웠는데, 요즘에는 중고 시장이 워낙 활발해서 이런 걱정은 안 해도 되더라.
다만 아직 당근 거래를 하러 나갔을 때 서로를 못 알아보는 경우가 있어서 그것을 개선하는 노력들을 많이 하는 것 같아. 당근 마켓의 경우 ‘당근이세요?’라는 멘트를 버스 정류장 광고에 실기도 하고, 최근엔 ‘놀면 뭐하니’나 각종 유튜브 매체에서 당근 마켓이 소개되면서 사람들이 중고 거래에 대한 인식이 많이 높아진 것 같아. 당근 거래 앱에서 봤는데 당근 마켓 장바구니를 팔기도 하더라. 그 장바구니 하나면 서로를 잘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아. ㅋㅋㅋ
독일에도 중고 거래를 하는 앱이나 사이트가 있나? 문득 궁금해진다. 독일의 이야기도 들려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