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에서 물건을 주워도 이상하지 않은 나라
Dear Eun,
간만의 편지를 주고받게 되어 조금 설렌다. 마치 오래 기다리던 연인에게 한 통의 긴 편지를 받은 기분이야.
언니의 임신, 그리고 머지않은 출산을 기다림, 그리고 내게 일어났던 일들까지 2021년의 상반기는 꽤 분주히 채워진 것 같아. 그러는 와중에서도 즐거운 일들은 일어났고 삶의 소소한 영역들이 기쁨으로 채워졌어.
한국의 당근 마켓, 이름만 들어도 다정하기만 한 그곳에서 언니는 세상의 정을 발견하고 쏠쏠한 가격에 물건까지 구매했다니 그야말로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어. 얼마 전엔 당근 마켓을 통해 떡볶이를 나눔 하는 기사를 읽기도 했는데 아마도 '훈훈하다'는 말은 이런 상황에 쓰이기 위해 만들어진 단어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어.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받았을 때, 좋아하는 누군가로부터 같은 마음임을 알리는 고백을 들었을 때, 아니면 그저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기쁨은 나로 인해 누군가가 기뻐할 때가 아닐까?
누군가를 기쁘게 하는 방법에는 다양한 것이 있지만 가장 쉽고 명확한 방법은 선물이 아닐까 싶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자주 선물하는 사람은 아니었어. 생일날, 특별한 날, 그리고 누군가에게 받은 것이 고마워 보답하고픈 어떤 날에만 선물을 하곤 했지. 하지만 이곳 독일에서 내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잘 주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야.
선물 뜻
: 선물(膳物)은 타인에게 어떤 물건을 주는 것 또는 그 물건을 일컫는다. (출처:위키백과)
어떤 이들은 독일 사람에 대해 정의를 내릴 때 융통성이 없고, 시간 및 돈에 관한 계산이 정확한 사람들이라고 말하기도 해. 더치페이는 물론이고 공적인 영역에서의 오차는 용납하지 않는, 어쩌면 조금은 깐깐한 사람들로 정의 내려지기도 하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어. 알고 보면 정이 많고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기꺼이 남을 돕길 원하는 사람들이 바로 독일 사람들이야. 공적인 영역에서 독일인과의 거래는 다소 진땀이 나는 경우가 있긴 해도 사적인 영역에서의 우정을 맺을 때 웃을 일이 훨씬 더 많다는 것, 이것은 꼭 말해주고 싶어.
독일에서의 중고시장은 온라인에서도 오프라인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어. 흔히 Second hand shop(중고품 가게)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독일인들 사이에 상당히 인기가 많은데 가격도 상당히 저렴하고 잘 찾아보면 '힙한' 제품이 많다는 사실.
1. e-bay kleinanzeige (이베이 클라인 안짜이게)
-우리나라의 중고나라/당근 마켓처럼 가장 대중적인 온라인 중고가게야. 사고 팔리는 물품은 적게는 0원에서 크게는 100만 원, 그 이상의 것들도 아주 많아. 이곳에서는 물건뿐 아니라 일자리를 제시하고 구하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급한 이사가 있을 때 이곳을 통해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고, 과외를 구하기도 해. 내가 다른 온라인 중고마켓을 알기 전까지 가장 많이 애용했던 곳인데 물건을 사고팔 때의 쾌감, 아직도 짜릿하게 기억이 나.
https://www.ebay-kleinanzeigen.de/
잘 나누어 주고, 남을 돕는 것을 좋아하는 독일인이 많다고 위에서 언급한 이유는 바로 지금 나와. 사실 이베이는 물건을 팔 기 위한 곳인데 자주 "zum Verschenken"-선물합니다 를 찾을 수 있어. 팔아도 충분히 값어치가 있을 제품들도 흔히 그저 주어지는 경우가 많고 나 또한 고데기, 빨랫대 등 새 제품을 선물로 받은 경우가 있어.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지!
2. Diakonie (개신교의 사회 봉사 활동)
-다음으로는 디아코니 라덴이야. 오프라인 샵으로 상당히 저렴한 물건이 많고 물건의 질이 좋은 이곳은 남녀노소 불문 인기가 좋은 곳이야. 물건을 구매한 적도 있지만 사실 나는 이곳에 내가 입지 않는 옷을 가져다준 적도 있어. 한국 옷은 독일인들에게 인기가 많아서 팔아도 충분한 돈을 벌 수 있었겠지만 이곳에 기부를 한 이유는 바로 친구들의 영향 때문이야. 저렴하게 옷과 물건을 구입한 친구들은 그러한 것에 감사한 마음을 품고 언젠가 본인들의 것도 선물하더라. 누군가의 것을 거저 받은 마음을 잊지 않고 자신의 옷, 가구, 그리고 가정용품까지 기부하는 그들을 보고 나 또한 이제는 내 것을 덜 욕심내고 기부하기 시작했어.
https://www.ev-kirchenbezirk-nuertingen.de/kirchliche-einrichtungen/diakonieladen/
3. Umsonstladen (무료 상점)
-코로나로 몇 달째 문을 닫고 있지만 중고시장 나눔의 최강자는 바로 움 존스트 라덴이야. 독일어로 Umsonst는 :무료로, 목적 없이, 까닭 없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가게를 뜻하는 Laden이 붙어 무료 상점이 된 거야. 이 상점은 한 비영리 단체에서 만들어졌지만 그 이면에는 사회적, 정치적 동기를 근본으로 가지고 있어.
독일의 모든 지역에 있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지역에 작게 자리하고 있는 이 무료 상점에는 재미있는 것들이 많아. 내가 사는 지역처럼 학생과 예술가가 많은 곳의 Umsonstladen은 그야말로 득템 천국이야. 빈티지 램프, 청바지, 식탁보 등 사실 나도 꽤 많은 것들을 선물로 받았어. 언젠가 코로나 수가 조금 줄어들고 상점이 문을 열면 내 옷들도 가져다 줄 생각이야. 누군가가 기쁜 마음으로 입어주길 바라는 마음 안고.
https://de.wikipedia.org/wiki/Umsonstladen
4. Depop/ Vinted
-온라인 중고 상점으로 주로 옷과 신발, 액세서리 등이 거래되는 곳이야. 이베이를 통해 거래를 해도 좋지만 디팝이나 빈티드를 통해 거래를 하면 소비자 층이 훨씬 좁혀지고 다양한 상품을 세세하게 볼 수 있어서 좋아. 크게 저렴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젊은 층의 이용률이 높다는 점과, 트렌드에 잘 맞는 제품이 쉬지 않고 올라온다는 점에서는 장점이 많은 곳이야. 나도 심심할 때 자주 들어가서 좋아요를 자주 누르곤 해:-) 아, vinted는 영국 및 영어권 국가에서도 자주 이용되는 곳이라 한정판 제품을 구매하기도 좋은 곳이야.
5. 길거리 상점
마지막으로는 길거리 상점을 소개하려 해. 한국에서 물건을 줍는 것은 사실 내겐 조금 부끄러운 일이었어. 그런 일이 잘 일어나지도 않았지만 행여나 줍게 되는 일이 있다면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견뎌내야만 했지. 그런데 이곳 독일은 조금 달라. 한 블록을 지나 다른 골목이 나오면 "Zum Verschenken"-선물합니다 문구를 흔히 발견할 수 있는데 그 안에 들어있는 것들은 책과 옷, 그리고 머리띠와 염색약.. 종류가 정말 무궁무진해.
처음에는 나도 괜찮은 물건을 발견했을 때 들고 가도 되는 것인지 긴가민가 했어. 그런데 어느 날 의자를 하나 사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머릿속에 생각하던 바로 그 의자를 발견했지 뭐야. 3초의 고민 뒤 나는 그것을 들고 집으로 왔어. 그렇게 나의 길거리 쇼핑은 시작되었지. 그 후로 책과 꽃병, 그리고 탄산수 기계 등 다양한 제품을 선물로 얻었어. 내가 선물로 받은 것 중 가장 고가품은 바로 자전거야. 중고로 샀던 자전거를 팔고 새로 하나를 구매하려 알아보던 중 "선물합니다"라는 문구가 쓰인 검은색 자전거를 발견했지 뭐야. 하지만 의아한 마음이 들어 집주인에게 물어봤어. 그랬더니 이사를 가야 해서 그저 선물로 밖에 내놓았다고 하더라. 운명이 있다면 그런 것일까? 그때 발견한 소중한 자전거는 지금까지 나와 함께해주고 있어 :-)
길거리 상점을 통해 가끔은 이처럼 고가품 혹은, 요가매트나 식기구, 책상 및 생필품도 발견할 수 있어. 그리고 우리 지역에는 특별한 냉장고가 있는데, "Foodsharing"으로 직접 기른 Bio식품, 기부하고 싶은 음식, 등을 가져다 놓을 수 있는 곳이야. 이 또한 나눔의 장터로 볼 수 있는데 아침 일찍 가면 신선한 야채는 물론 요구르트와 우유, 꽃까지 다양한 것을 선물로 받을 수 있어.
독일인의 절약정신은 사실 남달라서 가끔은 그런 그들의 모습이 '인색함'으로 오해되기도 하는데 실은 억울할 때가 많아. 절약은 하되 쓸 때는 쓰고 나눌 때는 나누는 그들의 국민성, 정말 멋진 부분인데 말이야!
어쨌든 독일의 중고시장을 통해 나눔의 기쁨을 느끼고 배우는 요즘, 언젠가 나도 한국에서 당근 마켓을 통해 혹은 주변의 이웃들에게 내 것을 나눌 기회가 오기를 소망해 본다 :-)
그때까지 우리 건강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