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꿈꾸던 그 자리에... 네가 앉다
30년 전의 기억을 반추하며
"새로운 친구를 소개한다. 이름은 임○○."
피아노 치는 친구라고 했다. 얼굴도 예쁜데 공부도 잘하는.. 6학년이 끝나갈 무렵, 두 명의 친구가 우리 반에 전학 왔다. 그중 임○○은 남자친구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고 나는 여러 면에서 질투가 났다. 대체 못하는 건 뭐야. 전공을 하기 위해 면단위 시골에서 전학을 왔다고 했다.
나는 피아노를 2학년부터 배웠고 피아노와 음악을 사랑했다. 시에서 개최하는 정기연주회도 학원대표로 2번이나 나갈 만큼 난 피아노에 진심인 아이였다. 형편만 허락했다면 아마 전공을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 말은 입 밖으로 꺼내지조차 못했다. 심지어 6학년 되던 해에는 공부해야 하니 학원 그만두라는 아빠를 피해 몰래 숨어서 학원을 다녔을 정도였으니까. 내가 6학년 되던 해, 학원이 멀리 이사를 가는 바람에 30분 거리를 혼자 시내버스까지 타고 다녔다. 그리고 6학년 때는 그 좋아하던 피아노를 부모님 때문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중2 음악시간에 악기 연주로 실기평가를 보던 날 난 당연하게도 피아노를 선택해 연주했고 연주를 들은 음악선생님은 나에게 물으셨다.
"근데 피아노 전공 안 하고 왜 그만두었니?"
"......"
목이 막혀 대답도 나오지 않았다.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는 그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도 않았다. 그때 음악실의 장면과 온도, 나의 감정은 25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남아있다.
난 피아노에 특출 난 재능이 있는 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객관적으로 내가 스스로를 봤을 때 뛰어났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단지 좋아했다. 그리고 끈기가 있으니 5년이나 배웠을 테고. 그렇지만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것과 할 수 없어서 못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외벌이 공무원 큰 딸에게 예체능은 언감생심이었다. 제대로 된 학원 하나 다니기에도 빠듯했으니까. 교사가 되고서도 못다 배운 피아노를 더 배우고 싶어서 학원을 기웃거렸지만 내가 부담스러웠던지 학원에서는 나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아들을 낳았고 나의 아이가 7세 되던 해. 그게 작년이다. 난 아이가 피아노를 배웠으면 싶어 단지 내 피아노 학원 상담에 아들을 끌고 다녔다. 나의 바람과는 다르게 아들은 피아노를 배우길 원치 않았다.
아들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자연스럽게 방과 후과목을 선택하게 되었는데 그 많은 과목들 중 전혀 생각지 못한 바이올린을 고르는 것이 아닌가(악기 수업은 바이올린이 유일했다) 그렇지만 20여 명이 하는 악기수업이 제대로 지도될리는 없다는 생각에 바이올린 학원을 알아보았고 한 번의 수업 후 학원 수업은 여러 면에서 마음에 들지 않아 개인레슨을 알아보게 되었다. 그런데 바이올린 선생님이아직은 바이올린이 배우기 어려우니 피아노를 먼저 배우는 게 좋겠다 하셨다. 본인한테 레슨 받겠다고 연락했더니 피아노를 먼저 배우는 게 좋다고 솔직히 말씀해 주신 바이올린 선생님. 그런 사람이 어디 또 있을까?
바이올린 선생님께 피아노 선생님을 소개받아서 첫 수업을 하던 날. 내가 30년 전 꿈꾸던 그 피아노-이사하면서 친정집에서 가져왔다-에서 우리 아들이 레슨을 받던 그날의 감격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어린 시절의 내가 대신 위로받은 기분이랄까.
아들이 열심히 배웠으면 좋겠다. 녀석이 무대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본다면 더없이 기쁘겠다. 하지만 싫다고 한다면 강요할 생각은 없다. 하고 싶었던 내가 하지 못하도록 강요당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