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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리 Aug 15. 2017

경주에 대한 인상

삶과 죽음 모두에 가까운 곳

8월은 나의 생일이 있는 달이자, 엄마의 기일이 있는 달이다. 이맘쯤이면 여행을 떠나고 싶어 진다. 이번 여행도 그런 이유에서 시작됐다. 목적지는 경주였다. 유적지가 가득한 낯선 도시에서 철없이 돌아다니던 유년 시절과는 다르게, 다른 목적으로 걷고 싶었다. 그렇게 다시 찾은 경주에서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커다란 고분이었다.

영화 '경주'에서 신민아는 집 창문에서 고분을 바라보며 말한다. "경주에서는 어딜 가나 능이 보여요."


고속터미널에 도착해 근처 대릉원을 향해 걷다가 고분이 보이자 새삼스레 경주에 왔다는 실감이 났다. 대릉원 근처의 황리단길에서 신라시대부터 들여왔다는 향신료를 넣은 음식을 먹으면서도 창문을 통해 들어온 것은 커다란 능이었다. 능 근처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연인들의 활기찬 모습이 무척 자연스러웠다. 대릉원의 천마총을 들여다보며, 나무덧널 뒤로 안치돼 있는 고인을 위해 조용히 관람해달라는 안내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무덤 주위에는 그곳에서 함께 발견됐다는 수많은 유물의 복제품이 전시돼 있었다. 이승에서 누린 모든 것을 저승에서도 누릴 수 있도록 담아가려는 흔적이 유리창 너머로 가득했다. 그 흔적은 낯설고 기이한 풍경이기도 했고, 삶에 대한 간절함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한참을 걷고 나서 커피를 마시러 들어간 카페에서도 커다란 창문을 통해 능이 들어온다. 경주에서는 이승과 훌쩍 떨어진 곳을 바라보는 것이 일상처럼 느껴진다.  

여행에 오면 좀 더 솔직한 나의 시선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 그래서 기대했고, 흘긋 지나친 시선도 놓치지 않고 찬찬히 되새겨보았다. 곳곳마다 못내 잊지 못한 그리움이 넘실댔다.

결국엔 평소에도 보고 싶고, 말하고 싶고, 생각하고 싶은 것들이었는데 이렇게 솔직하게 마주하고 보니 어색해졌다. 일상에 기대어 도망치듯 벗어난 시선들이 여행지에서는 다양한 형태로 그 존재를 알리고 있었다. 이를테면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호스트 어머니를 통해서, 낯선 방에 남겨진 어머니를 향해 쓴 시에서도 그랬다. 내 생일을 마지막으로 챙겨주던 엄마의 손길이 떠오르는 달이어서 일까. 다 잠잠해졌으리라 생각했던 기억이 물밀듯 밀려와서 일까. 게스트 하우스의 방이 유독 더 낯설게 느껴졌다.

게스트하우스의 거실에 늘어서 있던 책들.

호스트 어머니의 정성스러운 조식을 대접받고 나온 길에 하루 오갔던 길이라고 경주가 조금은 가깝게 느껴졌다. 어딜 가도 능이 보이는 경주는 자연스레 삶의 이면을 떠올릴 수 있는 배경이었다. 삶과 동 떨어진 듯 멀리 보았던 죽음은 마치 그리움처럼 잊었다가도 금방 떠올려지곤 한다. 죽음도 그리움도 결국 가닿을 수 없기에 그토록 먹먹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대릉원 근처의 작은 동화책 서점에서 찾은 책에서는 '죽음'이 주인공이었다.

"안녕. 난 죽음이야. 나는 오늘도 낡고, 늙고, 오래된 것을 찾아가. 오래될수록 아주 편안하고 따뜻하게 나를 맞이하지."

'죽음'이란 의미를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쓰고 싶었다는 저자의 의도가 '경주'란 곳에서 빛을 발했다.

'죽음'은 반짝반짝 윤이나고 존재감이 드러나기보다는 오래되고 낡고 때론 현실에서 소외된 것으로 여겨질 때가 많다. 그럼에도 '죽음' 가까이에 있는 것은 왠지 모를 깊이가 느껴진다.

산림환경연구원을 걸으며

산림환경연구원을 한 바퀴 돌고 나서 근처에 시래기 밥으로 유명하다는 식당을 찾았다. 식당은 통일전이라는 곳에 있었는데 사출지라는 작은 연못이 있었다. 고즈넉한 연못을 주변으로 고승의 목탁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배가 고파 식당으로 가는 조급한 마음을 목탁소리에 감추고는 담너머 절 안으로 고개를 돌렸다.

일정한 간격으로 목탁을 치는 승려 뒤로 왼쪽 팔에 하얀 천을 두른 상주 두 명이 뒤따랐다.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행렬을 이뤘다.

서출지

식당에서 대기번호를 받고 밖에 앉아있는데 절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먹고, 걷고, 보고, 살기 위해 걷는 여행자로서 경주를 향한 시선은 늘 '죽음'이 가까이에 있었다. 어딜 가나 쉽게 보이는 고분도 그랬고,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현실만큼이나 간절하게 죽음 이후를 위해 유물을 쌓고, 순장도 마다하지 않던 흔적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밥을 먹고 나와 다시 한번 서출지 주변을 맴돌았다. 문득 엄마와 함께 경주를 왔더라면이란 생각을 했다. 부질없는 생각이지만 여행지여서 솔직할 수 있었다. 때론 부질없는 솔직함도 마음을 한결 낫게 해준다. 서출지에서 덜컥 감돌았던 눈물도 그런 이유에서다.


2017.08.11-2017.08.12

경주에서,


경주에서 담은 두서없는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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