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리 Jan 06. 2018

손가락에 대한 단상

손가락의 온도

어릴 적 엄마와 나란히 누워 유독 튀어나온 엄마의 손가락 마디가 신기해서 물어본 적이 있다. 엄마는 어릴 적 화상에 입어서 그렇게 되었노라고 했다. 고통스러운 기억이 흔적으로 남아있었다. 어릴 적부터 엄마와 사소한 것이라도 닮았다 여기면 안도감이 들었던 나는 내 손가락에도 그런 흔적이 있는지 찬찬히 살펴보았다. 

엄마가 깍두기를 담기 위해 무를 써는 동안 나도 한번 썰어보고 싶다며 떼를 쓰다가 어렵게 얻은 칼을 쥐다 벤 흔적이 오른손 검지에 남았고, 초등학교 시절 좋아하는 남자애 앞에서 장난을 치다가 연필심이 박히는 민망한 순간도 오른손 새끼손가락에 담겨있었다.


신체일부 중 유독 손이 크던 나는 중학교 시절 처음으로 이웃 남학교 학생들과 포크댄스를 추던 순간에도 맞닿은 손이 유독 커 보여 민망해하곤 했었다. 만약 남자 친구가 생긴다면 굵은 손가락 때문에 같은 사이즈의 반지를 끼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을 하곤 했다. 사춘기가 지나고 손바닥을 활짝 펴 엄마의 손에 마주 대어보곤 그래도 엄마의 손가락을 간신히 넘지 않았다는 게 위안이 됐다.


혈액순환이 되지 않는 엄마의 손바닥을 마사지하면서 손끝에서 나온 힘을 느끼며 처음으로 손가락이 굵은 것이 싫지 않다고 여겼다. 그렇게 10년이 지나 나 또한 수족냉증에 걸렸다. 시린 손가락을 연신 비벼댈 때마다  병상에서 손끝이 찌릿찌릿하다던 엄마의 말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엄마의 손가락이 닿던 자리엔 먼지가 쌓였고, 간이 맞지 않았고, 빈자리가 드러났다. 엄마를 닮은 내 손가락이 엄마 대신 채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차가워진 손가락을 비비고 주무르면서 내 몸의 일부가 떨어져 나간 듯이 아려왔다.


살면서 손가락의 무게가 느껴지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춤을 추듯 자판을 두드리던 희열의 순간, 야채를 썰며 손끝이 미끄러지던 순간과 같이 그 수많은 틈 속에서 가장 자연스럽고 적당한 무게감은 나와 비슷한 손가락을 맞닿은 순간이었다. 겨울이 되면 장갑보다 좋은 해결책이 사람의 손을 잡는 순간이란 것을 알게 됐다.

누군가를 기억할 때 손길을 기억하는 것은 사람이 얼마나 가까울 수 있는가를 가늠해보기 좋은 일이다. 그 순간만큼은 상대의 마음이 담긴 정도를 알 수 있다. 내겐 손가락에 꼽을 만큼의 순간들이지만 어느 하나도 잊히지 않을 순간이다. 생에 첫 기억은 뜨거운 물을 받아 조심스레 내 몸을 헹구는 엄마의 손길이었다. 흐르는 콧물을 휴지로 야무지게 훔쳐주던, 아침마다 늦장을 부리던 내게 밥을 말아 올린 김밥을 입에 쏙 넣어주던, 배추김치를 버무려 입에 넣던 손가락이 그립다.


내게 남겨진 것은 금방 사그라질 손가락의 온기뿐만이 아닐 것이다. 추운 겨울날, 이제는 잡을 수 없는 엄마의 온기를 가늠해보는 것도, 수도 없이 물에 닿아 건조해진 손끝을 따라가는 순간마다 엄마를 닮은 내 손가락을 지그시 다시 쥐어볼 것이다. 나는 여전히 그런 것에 안도감이 들기 때문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