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중순, 연구원에서 처음 일을 시작할 때, 박사님은 나에게 언제 가장 행복하냐고 물으셨다. 그런 질문을 태어나서 설문지가 아닌, 사람에게 직접 받아본 건 처음이었는데, 글쎄 '행복감'을 느끼는 순간이 구체적으로 바로 떠오르지 않아서 박사님께 되물었다. 박사님은 '뭔가를 성취하거나, 남의 성장을 도와줄 때'라고 하셨다. 그러자 나도 "저도 아마 그런 것 같아요."라고 대답했다.
그 이후로 그 질문이 계속 맴돈다. '난 언제 가장 행복감을 느낄까?'
행복감이라는 주관적 감정이 가장 강렬하게 나타날 때는 '사랑에 빠졌을 때'지만(하나님이든 이성이든), 사랑'만' 업으로 삼을 수는 없으니까. 사랑은 평생 겸업하기로 하고.
그 다음으로는 좋은 사람들과 마음이 딱 맞는 걸 느끼며 대화할 때. 애써 괜찮다 괜찮다 참아왔던 감정들을 편하게 다 쏟아놓고 서로 보듬다보면 정말 괜찮아져서 또 한참은 그 힘으로 든든히 버텨갈 수 있다. 정말 잘 맞는 사람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고, 또 상대에게 맞춰 주려는 습성이 몸에 배어있는지라, 편하지 않아도 만나야 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이 끝나고 나면 피로감이 몰려온다. 그렇기에 무조건 내편이 되어줄 편한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이야기할 때, 혹은 취향이 잘 맞는 영화를 볼 때, 이런 때가 참 소중하게 행복한 순간이다. 하지만 이것 또한 업은 못 될테고.
그러면, 관계 속에서의 행복감 말고 내가 어떤 행동을 할 때 행복한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난 내 생각을 글로 정리할 때가 가장 행복한 아니, 적어도 지속적으로 즐거움을 느끼는 순간인 것 같다. 고등학교 때도 가끔 일기를 썼는데, 주로 힘들 때였다. 하루는 그냥 몸이 좀 안 좋았는데, 친구가 '세모 아파서 어떡해'하는 말에 억억 울면서 조퇴한 적이 있다. 갑자기 왜 그렇게 누군가의 위로 내지 걱정에 덜컥 무장해제가 되었는지. 그런 날들에 내 일기는 쓰였다. 내가 가진 긍정적 태도는 태생적인 건지, 내 삶에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자기방어였는지, 일기들은 대개 다 좋아질 거라는 믿음과 기도로 끝이 났다.
대학생이 되고 난 뒤 나에게 글쓰기는 생소하게 겪는 온갖 다채로운 감정을 풀어내는 수단이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감정을, 말로 해도 다 전해지질 않아서 혼자 까마득해지는 그 숱한 밤의 감정들을. 사건은 드러나지 않되, 감정만 글에 남도록. 밤을 새며 라디오로 새로운 노래를 듣고, 몰랑거리는 마음을 두 손을 꼭 쥐고 참아봤다가, 그냥 흐르는대로 놔뒀다가. 글로 쓰고나면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면서 좀 가라앉곤 했다. '카타르시스'라는 게 이런건가 싶을만큼.
지금은 그만큼의 감정보다, 그냥 이런 저런 생각들을 적어내는 것 같다. 내 안에 그만큼 몰두할 만한 감정이 더 이상 없어서일 수도 있지만. 몇 개월 동안 골똘히 생각하는 사회현상에 대한 내 의견, 일상 생활에서의 단상을 글로 남기는 데 성취감을 느끼고, 계속 시간과 노력을 따로 들이게 된다.
일을 하면서 내가 글로 뭔가를 정리하는 걸 즐긴다는 걸 더 느끼게 됐다. 자꾸만 표로 정리하고 글로 정리해서 박사님께 내민다. 블로그에 캐쥬얼하게 포스팅할 때보다 재밌진 않지만, 목차를 세우고 내 생각대로 글을 쓸 수 있단 생각에 갑자기 신나는 내 자신을 보면, 그래 죽을 때까지 공부하는 게 맞는 것 같기도.
더 있는지 계속 찾아봐야지 나의 행복한 순간들. 지금도 음악을 틀어놓고 한 시간째 이 글을 쓰고 있다. 흠, 역시 강렬하진 않지만 은근한 즐거움이야. 포슬포슬하게 새로 막 지어 김 나는 쌀밥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