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워 이불 킥을 해보지만,
사건은 내가 1년간 맡았던 업무를 인수인계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내 업무를 인계받을 팀원들이 매뉴얼을 얼마나 숙지했는지 팀장님께 체크받는 시간이었고, 나는 전임자로 배석해달라는 요청에 가벼운 마음으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팀장님이 매뉴얼 한 꼭지마다 검토는 하고 시행 중인 것인지, 정보가 오기재 되어있는 걸 확인도 안 했었는지 하나씩 확인하면서 점점 내 얼굴이 붉어졌다. 특히 팀장님은 20년 전에 이 업무를 담당하면서 시스템도 만드셨던 분이었기에 더 날카로운 지적들이 이어졌다. 그렇게 한참을 혼나다가, "그래, 이 업무를 그동안 다들 기계적으로 하니까 복잡해지고 업무량만 많아졌어. 작년에 나 솔직히 샐리씨 너무 불쌍했어. " 하시는데 갑자기 울컥해 잠시 화장실을 가겠다고 말씀드리고는 사무실을 뛰쳐나갔다.
드라마 여주인공이 억울한 일을 당하고 화장실에서 우는 장면처럼 화장실 문을 잠그고 엉엉 울어댔다. 그냥 지난 1년간 힘들었던 게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나한테 아무도 안 알려줬는데.. 나는 한다고 했는데.. 오자마자 인수인계도 못 받은 상태로 배치받은 날부터 바로 업무에 투입됐었는데.. '
하지만 눈물이 나고 맘이 힘들었던 건 정작 억울한 것보다 정말 팀장님 말씀처럼 왜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을까 하는 자책이었다. 그리고 나의 힘겨움을 누군가 알고 있었다는데서 오는 묘한 감정.
한참을 울고 나서 내 자리로 돌아가 있으니 잠시 후 팀장님이 부르신다. "샐리씨, 내가 너무 무서웠어? 이리 와 차 한잔 하자." 그런데 팀장님의 그 말을 듣고 나가는데 또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났다. 함께 나가는 선배가 날 토닥일수록 더 눈물이 나고. "내가 샐리씨 미워서 그런 거 아니야." 하시는데 떨리는 목소리로 "알아요. 근데 눈물이 나요." 하면서 거의 억억대다시피 울며 스타벅스로 향했다.
"샐리씨는 이제 퇴직할 때까지 나 생각나겠다." 하시며 미안한 얼굴로 앉아계시던 팀장님은 "우리는 프로잖아. 일을 할 때 많은 생각들을 해야 하잖아." 하면서 선배랑 나에게 이런저런 말씀을 해주셨다.
겨우 겨우 울음을 그치고 퇴근한 나는 남자 친구를 만나 오늘 있었던 일을 얘기하다가 또 울기 시작했다. 눈물은 주기적으로 흘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일 년간 참은 눈물이 다 났다. 부서 막내로 부서원들을 좀 더 살뜰히 챙기려 했던 노력들, 가운데 끼어서 이리저리 죄송해했던 일들..
잠시 뒤, 선배에게서 기프티콘과 격려의 메시지가 왔다. 본인도 1년 차에 혼자 화장실에서 운 적이 있다며 너무 마음 쓰지 않고 힘내서 내일 보자고. 선배에게 카톡을 보내면서 다시 눈물이 난다. '부끄러워서 어떡하죠'하고.
다음날 퉁퉁 부은 눈으로 출근해서 빵끗 웃으며 팀장님께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잠시 뒤, "팀장님이 말씀하셨던 거 알아봤는데요." 하며 보고를 이어갔다. 뭔가 보고하는 중간에도 팀장님이 부드러운 말투로 "그래, 사실 그건 우리 책임은 아니야." 하실 때 다시 조금 울컥. (대체 왜 계속 울컥하는 거야 왜!)
그렇게 보고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왔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어제보다 1센티는 자란 기분. 아.. 그렇지만 정말 이불 킥을 얼마나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