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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샐리 Oct 07. 2015

숨을 느리게 쉬는 시간

도림천에서의 단상


'신림동 고시촌'이 일반인들에게는 어떤 이미지로 다가갈까. 츄리닝을 입고, 슬리퍼를 끌며 피곤한 채로 커피를 찾는 고시생들이 우글우글한 어두컴컴한 곳이려나. (사실  거의 그런 모습이긴 하다.)



하지만 가끔 공부에 지쳐서, 혹은 내 경우처럼 허리나 다리가 아파서 독서실을 뛰쳐나올 때면 고시생들에게 위안이 되는 곳, 도림천이 있다.



평소에는 한시라도 바삐 움직이려는 나지만, 도림천에만 내려오면 숨을 느리게 쉬고, 온 몸의 긴장을 뺀 채 느긋해진다. 특히 요즘 같이 날이 선선해지면 여름 내 북적이던 도림천도 조금은 여유로워진다.



같이 스터디를 했던 한 동생은 도림천을 걸으면서 세상에 이렇게나 많은 강아지 종류가 있다는 걸 알았단다. 그만큼이나 여름 밤에는 강아지 반상회가 열리는 줄 알았던 도림천. 어제는 두 세 마리 정도가 주인이랑 활기차게 산책을 하고 있었다.



한참 여름 때, 새끼 강아지들도 이렇게 도림천에 나와 밤 바람을 쐬고 있었다.
여름 밤에 찍어놓은 도림천은 실제로 보는 것보다 조금 더 분위기 있어보인다.



느리게 숨을 고르며 아픈 허리에 손을 올리고 걷는 동안, 도림천의 풍경 하나 하나를 생경한 눈빛으로 감상하다보면 머릿 속 생각들이 정리되고 오늘 하루의 계획도 마무리된다.



열매가 달리기 시작한 머루인지, 담쟁이 넝쿨의 열매인지 알 수는 없지만
강아지 풀도, 가만 보면 송충이를 닮아 조금은 징그러워 보이는 풀도 모두 가을의 빛을 담아낸다.



이곳 만큼은 담배를 태우는 사람이 없어 숨을 참고 급히 걸어갈 일도 없고, 아주머니들의 박력있는 걸음에 덩달아 나도 뭔가 열심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어제 내 하루가 져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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