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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가책방 Mar 01. 2024

도시는 꿈꾸지 않는다

변하는 도시의 모습은 누구의 꿈일까

 지금은 오히려 너무 익숙해져서 얘기하는 걸 잊는 게 있다. 공주에 처음 여행 와서 독특하다 생각한 풍경 중 하나인 고양이가 많은 마을이라는 이미지다. 정식으로는 대통사지 공원 혹은 당간지주 공원이라 부르는 공원을 어떤 사람들은 고양이 사파리라 했다. 마치 공원 전체가 제 집인 양 사파리 그늘에 누워 햇볕을 피하며 낮잠을 자거나 어슬렁거리는 고양이가 많았기 때문이다. 나중에 공주에 더 자주 오가면서 세어보니 많을 때는 열 마리도 넘는 고양이가 사방 100미터 안에서 쉬거나 먹거나 놀고 있었다. 그야말로 고양이를 맘껏 볼 수 있는 사파리 그 자체.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고양이들의 건강 상태가 대부분 양호하고 중성화를 끝낸 상태라는 거였다. 고양이에게는 분명 안타까운 일이지만 무분별한 번식으로 폐사하는 경우가 많다. 발정기에 내는 특유의 날카롭고 거북한 소리가 줄어 싫다는 사람들의 원성이 덜하고 본능의 영역인 경계심이나 폭력성도 줄어 비교적 평화로운 고양이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던 거다.


 지금은 달라졌는지 모르지만 5년 전까지 길고양이의 평균 수명이 2년 6개월 정도라 했는데 공주 원도심 고양이 사파리에 사는 고양이들은 그보다 오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책방 앞에 만들어 둔 고양이 급식소 단골 4인방과 몇몇 고양이들은 5년이 지나 지금까지 건강히 지낸다. 아는 사람도 없고 머물 시간도 짧아 그 도시를 자세히 들여다보기 어려울 때 그 동네나 마을에서 볼 수 있는 길고양이를 살펴보면 대략적으로나마 그 마을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이웃에게 모질지 않은 사람들이 많은 마을은 길고양이에게도 모질지 않다. 소도시의 마을이라고 더 넉넉해서 이웃에게 관심을 기울이거나 호의를 베풀게 되지 않는다. 길 위에 사는 동물들을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다. 특별히 마음 쓰지 않으면,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없으면 행복한 길냥이도 있을 수 없다.


 어른들 중 길고양이에게 밥 주는 걸 두고 한 두 마디 문제 제기를 하는 분들도 있었다. 고양이가 새끼를 낳아서 곤란하다거나 자꾸 마당에 똥을 누고 가서 더럽다거나 싸우는 소리가 너무 소름 끼치고 시끄럽다는 흔히 듣는 얘기들이다. 실제로는 대부분이 중성화된 상태라 새끼를 낳을 리 없지만 자꾸 똥을 누고 가서 더럽고 번거로운 건 사실이고, 외부에서 새로 들어온 고양이나 영역 다툼이 있을 때 내는 소리가 듣기 싫은 건 마찬가지라 허허 웃으며 얘기를 들어드렸다. 그렇게 들어드리고 있으면 어른들은 먼저 멋쩍어하시며 '그래도 참 좋은 일 한다'라고 하며 자리를 떠나곤 했다. 어떤 어른은 만날 때마다 '복 받을 거예유'하고 축복의 말을 건네셨다. 길냥이가 행복한 동네에 나쁜 사람이 없다는 가설이 어느 정도는 검증되는 순간들이었다. 

 그런 마을 분위기에 어울리는 공간도 곳곳에 있었다. 지금은 차도 확장으로 집의 절반이 헐리는 바람에 사라진 작은 전시 공간에는 반려 동물 관련한 작품을 전시하기도 했다. 전시 공간의 주인이기도 하던 작가님은 집이 반파되면서 실망한 마음에 거처를 옮기기도 했다. 공간이 사라진다는 것이 단순히 물리적 소실을 의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서적인 상실과 지역이나 공간에 대한 애정을 잃어버리는 직접적인 계기가 될 수 있음을 실감하는 장면이었다.

  공주 원도심 많은 집들의 수도와 배수로를 연결하고 고쳤을 공간도 그렇게 사라졌다. 포클레인이 집을 헐어내는 이 장면은 개발이나 개선이 가져올 수 있는 단절 혹은 상실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기억에 남았다. 이 건물이었는지 그 옆 건물이었는지는 지자체와 행정 소송 끝에 최종 패소하면서 집을 잃었다. 질 거라는 얘기를 무수히 들었을 텐데 소송을 시도한 마음과 그 상실감을 나는 상상할 수가 없다.


 너무 당연해서 얘기할 필요가 있나 싶은 말이긴 한데 나 역시 변화를 무조건 거부한다거나 싫어하지 않는다. 필요한 변화는 반드시 일어나야 하고 더 이르게, 서두르면 좋은 것도 있다. 그러나 그 변화는 환경 변화와 달라진 요구를 정확히 진단한 후에 시작해야 하기에 조금 신중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다. 수십 년 간 대전과 부여를 잇는 유일한 길로 쓰던 좁고 불편한 도로가 넓어지길 바라는 마음과 인도로 안전하게 다니길 소원하는 마음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우회 도로와 고속도로가 여럿 생겼고 도로가 넓어지면 차들이 빨리 달리면서 고령화된 사회 구성원들이 다치거나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 점들을 두루 고려했더라면 어땠을까. 이미 헐려버린 건물이고 넓어진 도로라 이런 가정이 의미가 없지만 앞으로 원도심의 또 다른 곳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기에 덧붙이게 된다. 

큰 도로가 아니어도 변화는 늘, 갑자기 찾아온다. 이제는 유명한 장소가 된 루치아의 뜰이라는 찻집이 있는데 그 앞 골목의 예전 모습은 더 어수선하고 복잡했다. 누군가는 지저분하고 위험해 보였을지 몰라도 나는 이때의 풍경이 지금보다 더 친근해서 좋았다. 덥수룩하지만 자연스럽게 얽히고설킨 풍경이 원도심의 분위기와 닮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도로가 넓어지고 인도가 깔끔히 닦이듯 말끔해졌다. 그 말끔함이 그 골목에 들어설 때마다 아쉬움이 된다. 


  이 아쉬움이 뒤처진 나만의 느낌인지 공주 원도심을 사랑하던 또 다른 누군가와 앞으로 찾아올지 모를 이름 모를 사람도 느낄 아쉬움인지 확인할 길은 없다. 다만 지극히 개인적으로 도시의 곳곳이 세련되게 변하는 게 때로는 아쉽기도 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이 변화들이 정말 도시가 꿈꾸는 모습이었을까? 

도시는 꿈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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