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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가책방 Dec 04. 2024

비상계엄령이 해제된 아침 우리는

평범한 일상처럼 보이는 기이한 비현실 속에 있다

초록이 좋아지면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큰일이다.

겨울인데 초록이 좋다.

오늘은 초록이 간절하다.


 비상계엄령이 선포되고 6시간 만에 대통령은 비상계엄 해제 담화를 냈다.

일상으로 돌아가도 되겠구나. 

비로소 피가 식는 기분으로 짧은 단잠을 잤다.


 아침.

아직 국회가 뭔지, 계엄이 뭔지 잘 모르는 아이에게 지난밤 일을 들려주었다.

지난밤에 군인들이 무장을 하고 국회에 들어가려고 했다고.

아이는 군인이란 우리나라를 지켜주는 우리 편인 줄 알고 있으므로, 군인이 이겼느냐고 물었다.

군인이 이기면 좋겠다고.

아무 일도 사실 누구도 군인의 총과 군홧발에 피 흘리지 않았음에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짧은 시간 너무 많은 생각이 떠올라서 오히려 막막해졌다.

다만 군인이 이긴 게 아니라고, 국회라는 곳은 군인이 들어가서는 안 되는 곳이라 평화적으로 돌아갔다고 간신히 말을 이었을 뿐이다. 조금 더 자라서 지난밤과 오늘 일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까지 아이는 오늘 일을 기억하게 될까? 우리 아이들의 시간에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기억하고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번 더 하게 된다.


무책임한 얼굴들, 책임 없는 말들이 이어졌다. 

모두 속보, 속보라는 이름으로.

 대통령의 계엄선포를 몰랐다는 여당 원내대표와 국회의원들.

마찬가지로 자신들도 몰랐다는 대통령실 실장, 수석이 일괄 사퇴를 발표했다.

지난밤 10시 20분부터 속보가 아닌 게 없다. 

조용해 보이는 이 소도시의 아침, 우리는 여전히 혼란 속에 있다. 

평온한 혼란, 침착한 분노가 잔잔히 끓는다.


 예언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벌써 이런저런 예언을 내놓는다.

이렇게 할 것이라거나 저렇게 될 것이라는.

들어보면 그럴 것도 같고 저럴 것도 같은 예언들.


 저마다 내놓는 우리들의 예언에 살그머니 예측 하나를 더한다.

정치적 예측은 한 번도 맞아떨어진 적이 없지만, 이 소설 같은 현실 속에서, 소설보다 더 극적이고 그 어떤 단막 코미디보다 우스운 이야기에 시답잖은 헛말 몇 개를 보탠다고 세상이 무너지지는 않으리라.


여기부터는 모두 가정이다.

 오랜 동료였던 이들에게 외면받고, 그나마 믿고 의지하던 참모들이 사퇴해서 떠나고, 같이 일을 벌였던 공범들이 모든 책임을 윤석열 본인에게 떠민다면 그는 어떤 선택을 할까.

 극단적인 댓글들도 있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은 없을 것이고, 있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정치와 정치인이란 자신의 행위, 의사, 신념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므로 그것이 잘한 것이든 잘못한 것이든 책임지는 모습이 성숙한 정치인의 모습이다. 대통령 역시 정치인이므로 그 어떤 상황에서든 책임을 지는 게 가장 중요하다.

 첫 번째 가정은 버티기다. 몰랐다는 말로든, 누군가 건의했고 대통령으로서 다만 합당한 건의를 승인했을 뿐이라는 주장으로 일관할 수 있다. 만약 여전히 검찰과 군경찰, 수사기관이 대통령의 권력을 인정하고 그에 따른다면 이 버티기는 제법 오래갈 것이다.

 둘째 가정은 하야다. 버티기보다 더 큰 용기와 결단이 요구되지만 참모도,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도 없는 상황이 된다면 그때는 '에라 모르겠다'로 흘러도 이상하지 않다. 그동안 반복됐듯이 일단 부인하고 곧바로 이어지는 반박에 대해 무시하고 내버려 두는 태도를 이어갈 수 있겠지만 이미 여야, 법 관계자들 다수가 '내란' 혹은 '절차적 하자가 있는 비상계엄선포'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는 이상 결말은 이미 정해져 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깔끔한 적 없었으나 혹시 모를 일이다. 마지막은 깔끔할 수도.

셋째 가정은 국회의 의사결정, 헌재의 판단을 거쳐 결국 법의 심판대에 섰던 이전 보수 정권의 길을 가는 것이다. 2016년 12월 9일의 풍경이 다시 펼쳐질 것이다. 찬성 234, 반대 56이던 그때와 비슷한 모습이 아닐까.

넷째 가정은 떠오르지만 하지 않기로 한다. 아마도 어차피 파국, 모두 함께 파국으로 가자일 테니까.


 비상계엄이 해제된 아침 우리는 곤두박질친 경제지표에 좌절하는가 하면, 일찍 자고 느지막이 일어나 어리둥절해하기도 하고, 기사를 따라다니며 댓글로 다투기도 하고, 지난밤 사태에 책임 있는 사람들의 소재와 의도를 묻고 있다. 


 지극히 일상에 가깝지만 비상계엄이 해제된 아침 우리는 어제와 다른 세상을 경험하고 있다.

오늘 아침, 하늘은 그 어느 가을날보다 맑고 또 맑다.

우리 마음도 그래야겠다.


2024년 12월 4일 봉황산 하늘

처음 경험해 보는 계엄을 기록하는 중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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