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이제 조금은 쉬어도 되어요.
한동안 글을 쓰지 못할 만큼의 어깨 통증이 있었다. 지금은 주사와 물리치료로 많이 호전되었지만 나는 며칠 전만 해도 다신 글을 쓸 수 없을 것처럼 어깨를 들지 못했다. '잠시'라는 시간 동안 나는 키보드에서 손을 내려놓았고 직장과 사람들 사이에서 호되게 '사회'라는 찌든 먼지를 만나게 되었다.
나는 스무 살 때부터 사회를 직, 간접적으로 접하게 되었다. 학교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용돈을 받는 것을 줄여갔고 핸드폰비도 내기 시작했다. 스무 살에 시작한 아르바이트는 다른 아르바이트들보다 더 기억에 남는다. 대형마트의 계산원으로 근무도 오래했고 하루 일을 마치고 나면 손끝이 까매지고 여기저기 생긴 상처로 기억이 더 선명하게 남아있는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부모님이 재산이 없는 것도 가난에 허덕이지도 않았으며 부족함도 없이 자라 온 편이었는데 왜 그렇게 악착같이 살아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누군가 돈을 주지 않아도 나서서 일을 만들어가기도 했고 도와주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단순히 책임감이 강해서라고 생각했지만 몇몇의 경우를 더 생각해보면 그렇지도 못했다.
그렇게, 대학교를 졸업해 사회인으로서 '직장'이라는 곳에 새롭게 소속되었다. 오로지 내 힘으로 들어가 오로지 나 혼자 문제들을 해치고 하루를 마감해야 하는 '사회인'이 되었다. 시작은 누구나 조금씩 그렇듯 삐걱거렸다. 역시 알고 있던 만큼, 생각했던 만큼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었다. 나는 내 의견을 필히 말해야 할 때와 침묵을 지켜야 할 때를 스스로 익혀가게 되었고 내 능력 밖의 일도 거절하는 법을 배워갔다. 그 삶은 생각보다 지루하면서도 여유가 없었다. 나는 내가 오늘 무엇을 했구나, 돌아보기도 전에 잠으로 하루를 마감했고 기계적으로 일어나 다시 세수를 하고 피 튀기는 사회라는 전쟁터로 뛰어들었다. 바쁘게 뛰어다니고, 어려워도 열정을 가지고 더 열심히 해나갔다. 그러다 하루는 문득, 부모님 생각이 번뜩 들었다.
오늘도 수고했어.
집에 돌아가면 가장 먼저 듣는 말이었다. 몇 년, 아니 몇십 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그만두고 싶고, 어느 하루는 정말 출근하기 싫은 날도 많았을 텐데 단 한 번도 싫은 내색 없이 문 밖을 나섰고, 어깨가 무거워진 딸의 모습을 보면서 '왜 오늘은 울상이야. 많이 힘들어?'라며 더 속상해하셨던 얼굴이 아른거렸다. 그 생각은 야생마처럼 빠르게 내 머릿속을 헝클어놓았다. 나는 책임감이 강하지도 않았고 독립심이 강하지도 않았다. 부모님의 어깨에 올려진 '보이지 않는 짐'을 덜어들이기 위해 더 일어서려고 애썼던, 막 걸음마를 배우던 송아지에 불과했다. 나는 퇴근길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아 버스에서 한참 눈물을 훔쳤다.
이제 어깨의 짐, 제가 조금 덜어 드려도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