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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단편소설
"분노거래소"

#7 - R7: 상담 - 분노, 분노거래소

『그가 어떻게 알고 있을까.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나의 이 분노와 관련된 치부를. 그리고 그와의 상담을 통해서 내 안의 감추어두었던 무언가가 깨어나려고 한다.』




“두 번째 주제는 바로 분노입니다. 당신이 살면서 느껴왔던 분노들에 대해 속 시원히 털어놓아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저와의 문답형식입니다. 문답 하나당 시간은 10초입니다. 첫 번째는 질의, 두 번째는 문답. 세 번째는 무엇일까요. 하하하하. 그럼 시작하지요.”


역시 그는 미친 게 분명하다. 무엇 때문에 미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히 정상은 아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나는 점점 그의 말에 빨려들어 간다. 정신 바짝 차리자.


“살면서 분노를 강하게 느꼈던 때는 언제인가요.”


너무 많다. 너무 많아서 고르기 힘들다. 그런데 제한 시간이 10초다. 미치겠다. 미스터 마가 품 안에서 작은 회중시계 하나를 꺼내 시간을 잰다. 그의 얇은 입술에서 새어 나오는 숫자들. 빨리 생각해야 한다.


“5초, 4초, 3초‥”

“남들이 나를 무시할 때입니다.”

“왜 무시하죠?”


모르겠다. 아니 정확한 이유를 꼬집어 말하기 힘들다. 이기적이라서, 아니면 내가 바보 같아서. 

그것도 아니라면 가난해서. 도대체 뭐지?


“빨리 대답해주십시오”

“제 성격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본인의 성격이 어떤지 간단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답변하기 쉽다. 있는 그대로 말하자.


“이기적이며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냉혈한입니다. 위선과 거짓으로 가득 찼고요.”


미스터마가 흡족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며 말한다.


“훌륭합니다. 10초 더 드리지요. 다음 답변도 기대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을 무시했던 사람들을 죽이고 싶습니까? 아니면 용서하실 겁니까?”


내가 처분을 선택한다는 것에 짜릿한 쾌감을 느낀 걸까. 매일 수도 없이 생각해왔던 장면. 생각. 바로 『처분』.


내가 매일 같이 생각해왔던 그들에 대한 처분은 폭력으로 얼룩진 장면들뿐이었다. 웃으며 화해하는 장면은 생각하기도, 할 수조차 없었다. 그들이 워낙 나에게 가한 행동과 모욕이 오늘날까지 나를 괴롭히기 때문이다. 용서라는 단어는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나에게는 오로지 분노와 복수뿐이다.


하지만 고민이 된다. 그들을 죽이고 싶다고 말했다 하더라도 진짜 죽이는 것은 아니다. 현실에서는 이루기 힘드나 상상하면 이룰 수가 있다. 그들을 난도질하던 토막을 내던 상상에서는 내가 왕이며 신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법이 있고 범법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존재한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위협을 가하고 해를 입히는 행위는 중죄에 해당되기에 평생을 감옥에서 썩을 수도 있다. 난 그러고 싶지는 않다. 그저 상상에서 그 처분을 내리는 것만으로도 나의 울분을 잠시나마 삭힐 수 있으니 말이다.


“죽이고 싶습니다.”


내 입은 생각과는 다르게 말하였다.


“솔직하게 답변해야 합니다.”


라는 미스터 마의 최면에 걸린 것 이기라도 한 걸까. 당황함을 느낀다. 이어 미스터 마가 말한다.


“그들을 죽였다고 가정합니다. 당신의 분노는 이로서 끝이 난 겁니까. 아니면 계속 남아 있을까요?”


그 부분도 매일 생각해왔던 부분이다. 죽이면 거기서 끝일까. 더 큰 고통과 분노가 날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것으로 내가 만족을 할까. 오만 생각이 다 든다.


“잘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미스터 마가 크게 소리친다.


“거짓말!”


“제가 분명히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당신은 죽여도 분노가 그대로 남을 것입니다. 장담하지요. 당신의 분노는 매우 특별하니까. 오히려 저는 당신에게 제안합니다. 죽이고 살리고를 떠나서 당신을 무시하고 괴롭히던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게 어떨까요. 뭐 그것이 힘들 수도 있겠네요. 당신은 이미 예전에 한번 실패했었으니까”


실패 그리고 예전? 무슨 말이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이미 말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당신이 이곳을 방문하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고. 기억나십니까. 중학교 시절. 반 아이들에게 집단따돌림을 당하던 그때의 당신을”


말하지 마. 저 자식, 어떻게 그 사실을 아는 거지.


“말씀이 없는 건 무언의 대답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몇 년 전, 당신은 한 중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을 수차례 받았었지요. 부유했던 집안 환경도 당신의 허무함으로 가득 찬 마음을 채워주지는 못했고요. 반 아이들을 피해 숨어 다니고 늘 혼자였던 당신. 참으로 안쓰럽습니다. 하하하하”


참을 수 없는 분노와 화가 치밀어 오른다. 


나의 치부를 다른 사람이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도, 부끄러운 과거를 들추는 것이 나를 미치게 만든다. 

나도 모르게 흥분하며 소리친다.


“그런 적 없습니다. 제 분노는 그들로 인해 생긴 것이 아니라고요.”


나의 외침에도 미스터 마는 아랑곳 하지 않는다.


“물론 당신의 분노는 매우 특별하고 귀중합니다. 그것은 평가하면 밝혀 질 테니 그때 다시 이야기 드리지요. 지금은 상담입니다. 당신이 마주하기 싫은 과거와 대면하여 이겨내야 순수한 결정체로 이루어진 분노가 만들어 집니다. 아시겠습니까.”


헛소리. 너무 화난 나머지 벌떡 일어서며 그의 멱살을 세게 움켜줬다.


“당신, 아까부터 꾹 참고 당신의 그 미친 지시에 따라준 것을 고맙게 여겨야지. 난 분노를 팔러 온 거야. 이딴 차나 마시면서 내 과거에 누가 뭐라 하는 게 싫다고. 알겠어?”


그의 몸이 살짝 붕 뜬다. 그러나 그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내 말에 맞받아친다.


“무언가 오해를 하는 것 같은데 방금 제가 말한 J씨 당신의 과거는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당신의 분노가 어째서 특별한지, 그렇게 된 원인인 깊숙한 분노를 찾기 위한 일종의 충격요법이라 보시면 됩니다. 그저 당신의 분노에 반 아이들의 괴롭힘도 일부 차지한다는 것을 인지해주기 위한 것이고요. 이해가 되셨다면 이제 손을 내려놓고 다시 상담을 진행해도 될까요.”


난 그의 멱살을 잡은 손을 천천히 아래로 놓았다. 옷깃을 바로잡으며 미스터 마가 말한다.


“그래도 J씨는 양호한 편입니다. 다른 손님들은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나자 눈이 홱 돌아가서는 저를 때리거나 죽인다고 협박까지 했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물건을 집어던지며 난장판을 피우던 한 미치광이 아가씨가 생각나는군요. 하하하하.”


일단 마음을 진정시키자. 그가 내게 있다고 말했던 『깊숙한 분노』그게 무엇일까.


“진정이 되셨다면 마지막 문답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시간 제약은 없습니다. 당신의 분노는 다른 사람들의 분노와 비교하여 특별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하나만 말씀해주십시오.”


나의 분노가 특별하다는 이유라‥다른 사람들의 분노도 제각기 특수한 사정이나 이유가 내포되어 있을 것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자기들도 또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분노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할 게 뻔하다.


그러면 무어라 대답할까. 특별한 대답을 원하는 거라면 얼마든지 대답해 줄 용의가 있다. 그러나 그는 특별한 대답이 아닌, 본인이 납득할 만한 대답을 듣고 싶어 하는 것이다. 물론 나의 분노는 특별하다. 아니, 기존의 분노와는 다르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근거는? 그거까지는 진지하게 고민해보지 않았다. 막연하게 나만이 내 분노가 특별하다고 여겼을 뿐이다.


누구에게 나의 분노를 설명하게 된다는 상상은 수도 없이 생각해왔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명확한 근거를 댈 수가 없으니 설명하는 것에서 부터는 말보다는 행동으로 나의 분노가 특별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생각나는 대로 정의하자면 나의 이기심, 욕망, 고집들이 혼재되어 표출되는 분노. 그러나 2%부족하다. 나의 삶에서 축척되어져온, 그 특수하면서도 고유한 무언가가 첨가되어있기 때문에 나의 분노가 매우 특별하다며 몇 십년동안을 착각 속에 살아오지 않았었나.


후회스럽다. 진작 나의 분노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머리가 터질 정도로 고민하였다면 지금 위 질문은 물론이고 앞으로의 내 분노의 질이 높아질 것은 자명한데‥지금이라도, 이 시간만이라도 찾아내보자. 나의 분노가 특별한 이유를. 그리고 2%의 그 무언가를!


미스터 마가 머리를 싸매며 고민해 있는 나의 모습을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본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의 본능적 시간감에 따르자면 약 1시간은 족히 넘었기 때문이다. 아무 말도 없이 부동자세로 고민하고 있는 나. 식은땀이 이마에서 콧등으로 또르르 흘러내린다.


하품소리가 들린다. 미스터 마가 도저히 지루함을 견딜 수 없었는지 짜증스러운 톤으로 말한다.


“이제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들려주시지 않겠습니까.”


무념무상(無念無想)의 상태. 그리고 한 가지 내 마음을 강하게 흔드는 울분.


“나의 분노는 매우 특별합니다. 일반적으로 분노는 상대방에 대한 원한으로 발생되어지는 것이지요. 즉, 분노도 그 감정이 ”싫어함“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 분노의 대상이 있다는 점에서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가 전제조건입니다. 더구나 분노의 지속시간도 어떠한 상황이나 마음가짐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예전보다 오늘 날의 분노의 지속시간이 무척 짧고요. 


그렇기 때문에 방식만 다를 뿐이지 나중에는 상대방을 용서하는 우를 범하게 됩니다. 그것은 당신이 말한 깊숙한 분노에도, 내가 말하는 특별한 분노에도 속하지 않는『형식적인 분노』에 지나지 않습니다. 부질없는 감정이죠. 제 분노는 다릅니다. 분노를 제공하고 표출할 대상이 있다는 점과 지속시간이 존재한다는 점은 기존의 형식적인 분노와 똑같습니다. 하지만 저의 분노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갈망하고 진화를 한다는 점이 특별합니다.”


오래 전부터 분노거래소를 운영해왔던 미스터 마였지만 지금 내가 정의내리고 있는 나만의 분노에 대한 특별함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듯 보였다. 아니, 이해한다하더라도 분노가 진화를 한다는 이야기는 수많은 분노를 취급하고 다루어왔을 그에게 있어 무척 생소하게 느껴질 것이다. 어쩌면 분노의 진화가 깊숙한 분노에 포함될 지도 모르는 일. 미스터 마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콧등의 식은땀을 손으로 닦아낸다.


“하하하하하.”


갑자기 미스터 마가 크게 웃는다. 실성한 사람처럼.


“무엇이 그리 웃기신 건지요. 저는 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정의했습니다만”


용기 내어 그에게 되물어보자.


“J씨, 당신 정말 재밌는 사람이야.”


미스터 마가 나를 쳐다보며 말한다. 약간의 연민과 우수에 젖은 눈빛으로 바라본다. 무척 부담스럽다.


“이 분노거래소를 운영해온지 20년이 조금 넘습니다. 그런데 그 20년 동안 당신처럼 분노에 대해 재해석을 한 손님은 없었습니다. 그저 자신의 분노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어졌고 누구에 의해 제공되어졌는지 나열하는 것 밖에 없었지요. 간혹 그런 경우는 있었습니다. 


계약과정에서 자신 내면에 감추어진 새로운 분노를 발견하게 된다든지, 아니면 그동안 자신이 가지고 있었고 느껴왔던 분노가 실은 분노가 아닌 다른 감정이라든지 말이죠. 그렇지만 극히 드문 경우에다 슬프게도 의뢰인들 모두 불행한 경우를 당했답니다.”


기분 나쁘다. 우선 잠자코 들어보자. 무언가 새로운 단서가 튀어나올 거 같으니.


“가만있어보자. 그런데 아주 최근에 말이죠. 당신이 이곳을 방문하기 전 당신과 아주 비슷한 말을 했던 한 사람이 있긴 있었어요. 자신의 분노도 끊임없이 팽창 중이라며 횡설수설하던 그 사람! 기억납니다. 당신과 차이점이 하나 있긴 하였지만, 그때와 지금의 상황 자체가 매우 비슷하다는 것을 참고로 알아두시길 바랍니다.”


나와 비슷한 분노를 느꼈던 사람이라고? 나만이 유일무이하게 가지고 있던 분노가 아니란 말인가. 똑같다는 건 아니지만 심히 불쾌해지고 화가 치밀어 오른다. 이 분노는 오로지 나만이 소유할 수 있는 거라고. 다른 사람들이 감히 가지고 싶어도 못 가지는 농축된 분노의 엑기스라고.


미스터 마가 헛기침을 한번 하며 말을 이어 나간다.


“제가 원하는 깊숙한 분노와 큰 연관은 없지만, 새롭게 분노를 바라보았다는 점과 제가 느끼기에도 손님의 분노가 특별한 이유를 알겠으니 마지막 주제로 넘어가지요.”


어안이 벙벙해진다. 좀 허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도감에 저절로 한숨이 셔진다. 그런데 그냥 넘어갈 수는 없지.


“그 사람은 어떻게 되었나요. 그리고 당신이 말하는 그 깊숙한 분노는 도대체 무업니까?”


“너무 자세히 아실 필요는 없다고 판단되어지는데요. 그리고 제가 판단하기에 깊숙한 분노는 전 세계 누구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즉,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일종의 허황된 분노라고 표현하는 게 옳을까요.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분노. 이쯤으로 정리해두죠.”


※ 분노거래소 Step 7 : 상담이 끝나면 중개인은 상담 내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 좋을 지의 여부를 결정하게 됩니다.

만약 상담 내용이 중개인의 재량에 따라 만족스럽지 못하다거나
상담규정에 어긋난다면 바로 폐기처분하며
두 번 다시 거래소를 이용하실 수 없습니다.

중개인의 다음 단계로의 진행여부 판단은
“계약”단계 전까지 유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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