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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유자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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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 Oct 13. 2015

새로움에 관하여

못생김도 즐거움도 지나가리

유자는 부분미용을 한 번 더 했다. 배, 발, 항문의 털을 미는 위생미용에 주둥이 부분을 추가로 정리해 달라고 요청했다. 얘기할 때 미용사가 바뀌었다는 걸 알았는데, 기본적인 미용이라 그냥 다른 때랑 비슷하겠거니 했다. 미용이 끝난 유자를 데려오는 건 남동생에게 맡기고, 가벼운 마음으로 신나게 놀러 갔다. 몇 시간 뒤 남동생이 유자 사진을 찍어서 보내줬는데 좀 놀랐다. 예상했던 모습이 아니었다. 주둥이 털은 그대로였고 머리 윗부분도 덜 자른 느낌이었다. 전체적으로 머리가 너무 길어 보여서 다른 개 같았다. 약간 호머 심슨을 닮은 것 같기도 하고, 확실히 전보다 못생겨졌다.     

못생김이 묻었다

집에 가서 내 눈으로 확인해도 못생긴 건 여전했다. 심지어 유자를 본 엄마의 첫 마디는 “유자 왜 이렇게 고릴라같이 됐어?”였다. 아마 유자에게도 새로운 경험이었을 것이다. 대놓고 못생겼다는 소리를 들은 건 처음이니, 그게 무슨 뜻인지는 정확히 몰라도 기분이 조금 이상하지 않았을까? 그래도 이삼일 지나니 유자의 새로운 스타일도 눈에 익어 나름 귀엽게 보인다. 예정보다 조금 빠르게 전체 미용을 시킬 것 같긴 하지만.     



잘 가지 않던 쪽으로 산책을 나갔다. 산길 정비가 끝나지 않아 조금은 어수선한 길이었는데 오랜만에 가니 아주 말끔했다. 그 근처엔 폐광을 동굴 관광지로 바꾼 곳이 있는데, 시에서 팍팍 밀고 있는 곳이라 나름 신경 써서 정비를 한 모양이다. 매표소도 세워져 있고, 출발 대기 중인 코끼리 열차도 서 있다. 제일 좋은 건 유자의 새 놀이터를 찾았다는 점이다. 전에 없던 아주 작은 공원이 새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쪽은 걸어 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어 유자의 목줄을 잠깐 풀어주기에도 좋았다. 목줄을 풀자마자 얼마나 정신없이 뛰어다니는지, 같이 뛰어다니느라 숨이 찰 정도였다.      

"신난다!"

유자의 산책 만족도는 걷는 모양새와 표정으로 가늠할 수 있다. 너무 짧은 산책을 하거나, 산책 코스가 마음에 안 들거나 하여간 제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으면 발걸음이 무겁다. 입도 꾹 다문 채로 걷는다. 반대로 마음에 들면 집에 도착할 때까지 발걸음이 통통 튄다. 입도 벌어져 꼭 웃는 표정처럼 보인다. 오늘 작은 공원에서 뛰어다닐 때 딱 그랬다. 유자도 미용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을 텐데, 어느 정도는 풀리지 않았을까 싶다. 당분간은 그 공원으로 산책을 나갈 것 같다.      


새로운 것이 독이 될 때도 있고, 약이 될 때도 있다. 유자의 새로운 헤어스타일은 별로였지만, 새로운 놀이터에서는 즐거웠다. 하지만 어떤 새로움이든 언제나 일시적이다. 유자를 못생겼다고 놀리는 것도 며칠 안에 끝날 것이고, 유자는 며칠만 지나도 새로 찾은 공원을 지루해할지 모른다. 곧 지나갈 것들 앞에서 지금보다 아주 조금만 더 덤덤한 자세를 유지하고 싶다. 앞으로는 유자 미용이 얼마나 웃기게 되든지 놀리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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