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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 Nov 06. 2015

언젠가 스프링필드

호머 심슨을 사다

마트에 갔다가 충동구매를 하고 말았다. 필요한 걸 다 고르고 계산대로 가기 위해 레고가 진열된 통로를 지나가다가 ‘심슨’ 시리즈를 발견하고 만 것이다! ‘레고 심슨 미니 피규어’는 입고되자마자 전국에 품절 대란을 일으킨 인기상품이다. 이 동네도 첫 발매일 즈음에는 품절 팻말을 걸어놨는데, 살 사람 다 사고 거품이 빠지니 재고도 여유가 있는 모양이다. 이걸 하나 살까 말까 한 이십 분은 그 자리에 서서 꼼지락댔다.

 

피규어를 발견한 이상 최소 하나를 구매하는 것은 뻔했다. 문제는 어느 봉투를 고를 것이냐이다. 이 피규어의 못된 점은 16개의 모델 중 하나가 랜덤으로 들어있다는 것이다. 주인공인 호머 심슨 가족이 5명이니, 11개의 모델은 ‘쩌리’다. 내가 고른 봉투에 마음에 안 드는 캐릭터가 들어있을까 봐 자꾸만 고민하게 됐다. 다 다르게 생긴 피규어의 모양을 보면서 이 봉투 저 봉투를 쪼물딱거렸다. 고민  고민하다가 손의 감각을 믿고 하나를 골라온다. 심슨 가족 5명 중에 하나만 나오라고 기도하면서 쇼핑 끝.


심슨은 정말 수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나는 아주 어릴 때 EBS에서 ‘심슨 가족’이라는 더빙판으로 제일 먼저 접했는데, 볼수록 재미있어서 시즌별로 거의 다 찾아봤다. 아군도 적군도 가리지 않고 까는 블랙유머는 심슨 시리즈의 가장 큰 매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애를 강조하는 훈훈한 마무리가 보는 이의 마음까지 가볍게 한다. 시리즈가 길어지면서 점점 더 입체적으로 변하는 캐릭터들도 사랑스럽다. 주인공이 대머리에 배불뚝이에 멍청한 아저씨인데도 이렇게 호감인 건 심슨뿐이다. 그저 만화에 불과할지라도 역사가 쌓이면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된다.


심슨을 다른 어떤 영화나 드라마보다 좋아하는 걸 보면 ‘키덜트’ 기질이 없지는 않나 보다. 과거에 대한 향수를 강하게 느끼면서 어릴 때의 정서로 돌아가 마음의 안정을 찾고자 한다는 게 ‘키덜트’족 확산에 대한 일반적 평가다. 지금의 세대가 가진 경제적 풍요와 맞물려 자신의 개성을 눈치 보지 않고 꽃피우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분석도 곁들여진다. 아주 거칠게 요약하면 ‘돈 있는 철부지’라는 얘긴데, 그럼 또 어떤가 싶다. 쓸데없이 자세하게 짜여진 한국식 인생과업을 따르느니, 철부지로 살겠다. 


그래서 나의  마음속 여행지는 단연 미국이 1순위다.  그중에서도 플로리다 주 올랜도에 있는 유니버설 스튜디오. 그곳엔 심슨의 배경이 되는 가상의 마을 ‘스프링필드’를 그대로 옮겨놓았다고 한다. 만화에 나오는 대로 마을을 만들고 주인공의 집에서부터 마트, 술집, 경찰서까지 그야말로 스프링필드를 현실에 불러낸 것이다. 일부러 블로거들의 여행 후기도 찾아보지 않았다. 언젠가는 꼭 가서 마음껏 즐거워하고 기념품 샵을 다 털어오리라 다짐하면서. 지금은 마트에서 꼼지락대며 작은 레고를 사는 데 만족할  수밖에 없지만, 언젠가는 충동구매다운 충동구매를 하겠다고 다짐하면서. 

워후!

집에 와서 뜯은 봉투에는 보란 듯이 주인공 호머가 들어있었다. 성공적인 충동구매다. 괜찮은 게 하나 나왔으니 이젠 정말 아무거나 나와도 상관없겠다. 언젠가 심슨 레고가 눈에 또 들어온다면 고민 없이 하나만 더 사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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