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OIU May 15. 2016

베트남 프로파간다

베트남 종단 D+14, 하노이

프로파간다의 베트남

출장이 질리게 많은 일을 해왔는데, 이상하게 동남아와는 별로 연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여행 좀 다닐 수 있게 되자, 동남아를 가볼까 싶어 졌다. 근데 동남아에 뭐? 생각해 보자면 동남아는 내게 그저 '그냥 관광지'인 것 같다. 똠양꿍, 나시고랭, 반미가 진짜로는 무슨 맛일까 정도로나 궁금한 관광지. 식도락도 하루 이틀이고, 동남아 어딜 가서 뭘 해야 하나? 좀 난감한 듯해서, 동남아 말고 다른 델 갈까, 그러다 생각이 났다, 프로파간다(Propaganda)! '관광지' 동남아에 관해서, 아마도 딱 하나, 맛과 무관한 궁금함이 있었는데, 그것이 베트남의 프로파간다였다. 좁히자면 프로파간다 포스터들.


이건 카페다(호치민의 카페 프로파간다). 그렇다고 이 글이 카페 얘기인 것은 아니다.


포스터라는 것이 애초에 '한 방의 설득'을 의도하는 것인 만큼, 커뮤니케이션을 업으로 먹고살던 나로서는 포스터라 하면 뭔가 궁극의 지점인 듯한 느낌이 있었더랬다. 그중에서도 프로파간다 포스터는, 정치다 할 때 흔히 나타나는 경직성 같은 것이 있어서 그런지, 좀 더 직접적이고 전형적인 방식을 차용하기 십상이고, 그래서 더욱 직설적이다. 복장으로 대유 된 인물들, 45도 상향 처리된 그들의 시선, 돌직구 문구 들을 통해 커뮤니케이션의 주체와 그들이 처한 현실의 어젠다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거기에 더해, 이전 세대 프로파간다 포스터에 자주 보이는, 다소 조악한 비주얼도 은근 매력적이다. 8색 크레파스 같은 색감과 훅 치고 들어오는 라인, 그리고 그 와중에 은근 베어 나오는 당대의 미술 사조라거나, 대놓고 드러낼 순 없어도 포기하지 못하는 아티스트 개인의 욕심 같은 것이 상상되면서 (물론, 근거는 전혀 없음) 왠지 편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되기까지 한다.

 Vietnamese propaganda posters 1954-2000 from www.theoldreader.com


베트남 전쟁 때 반미 선전 포스터들로 보자면, 베트남의 프로파간다 포스터들은 유난히 그렇다. 러시아나 서구의 것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중국의 것들과도 살짝 구별되면서, 왠지 조금 더 선량하고 친근한 느낌이 있다. 대충 범접할 수 있을 것 같은데다, 인쇄 환경 때문이겠지만, 원색의 색감도 한 톤 푸근하다. 그 시기에 영향을 준 미술 사조가 있었는지 그런 건 잘 모르겠지만, 여튼 베트남의 프로파간다 포스터는 정이 간다.


여기에 생각이 이르자, 나는 베트남 거리의 최신 프로파간다 포스터들 훑는 것으로, 베트남의 현재를 이해하고 오겠다는, 무슨 기사 제목 같은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무모한 계획이었는데, 이때는 무모한지 몰랐다. 호찌민에서 하노이까지 15일이나 다니는데, 그 정도 여행이면 대충 답이 나오는 거 아닌가.

아, 뭐래는 거야, 대체...



프로파간다로 읽는 베트남

호찌민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서둘러 시내로 나섰다. 요즘 베트남의 어젠다는 뭘까? 반미나 증산은 아닐 테고, 단결도 좀 그렇고, 잘 살아보자 하는 건 사회주의 체제에서 좀 뭣하지 않나? 80년대 영화 포스터처럼 밀풀질로 벽을 꽉 채웠을 프로파간다 포스터들을 상상하며, 나는 두어 시간 호찌민 시내 골목을 훑고 다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이 즈음에 있었던 공산당 선거 때문에, 거리의 빌보드는 투표 독려의 메시지만 반복적으로 전하고 있고, 당대의 어젠다를 읽을 만한 것들은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일단 눈요기는 충분히 됐고, 베트남이야, 곧 뭐가 보이겠지, 그럭저럭 한 바퀴 돌며 보면, 어떤 나란지, 어떻게들 사는지 대충 답이 나올 테니까.

뭐라는 거냐고...


프로파간다 포스터 말고도 베트남에는 다른 볼거리가 천지였다. 그렇게 다른 것들에 몰두한 채, 메콩 델타의 농가에서 며칠을 보내고, 나뜨랑, 호이안 관광지를 돌고, 다시 훼와 다낭을 둘러보았다. 비가 안 와서 짜다는 물로 양치를 하고, 영어로 못할 게 없는 국제적 해변을 돌고, 양복 한 벌쯤은 다음날이면 만들어준다는 의상실도 가보고, 거리에 즐비한 노스페이스샵도 들르고, 보존 대신 개발을 선택해 최고로 잘 나가는 도시가 되었다는 자랑도 듣고.


그러는 동안 나는, 뭔가 좀 달라진 것일까? 여행 12일째, 하노이에 들어와 다시 그 붉고 노란 공산당 빌보드를 접했을 때, 나는 그걸 대하는 내 태도가 전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첫날 호찌민에서의 나는, 호기심과 탐구심으로 그걸 봤을 것이다. 여행지 기념품 보듯이 눈 반짝이면서, 뭔가 알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근데 지금 하노이에서는 그게 아니다. 나는 좀 더 복잡한 감정이 실린 시선으로 그것들을 보고 있다.


베트남에서 지낸 지난 십여 일 동안, 난 좀 어지러워졌었다. 베트남의 줄타기에 말려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눈에, 베트남은 줄을 타고 있다. 상반되는 가치의 경계 위에서 줄을 타고 있다. 사회주의 이념과 시장경제의 현실 사이에서, 전쟁 상대국에 대한 혐오와 선망 사이에서, 역사에 대한 자부심과 변화의 필요 사이에서, 심지어 아열대적 느긋함과 동아시아적 근면성 사이에서도. 베트남 사람들은 희한한 균형감으로 줄 위에 버티고 섰는데, 그걸 보고 있는 나는 오히려 휘청거리게 되었었다.  

베트남의 희한한 균형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오토바이 아저씨? 살짝 기울어지기까지 했는데 차암~ 편해보인다.


그렇게 휘청대며 쳐다보는 프로파간다 포스터는 처음과 달리, 어지러워 보였다. 잘 살아보겠다는 자본주의적 욕망이 넘실거리는 도시의 풍경 위에서, "공산당이여, 영광되고 영원하라"는 선전 문구는 어지럽게 흔들린다. 다 끝난 걸 부득부득 붙드느라 애쓰고 있는 것 같아 보여, 난감하고 안타깝다. 공산당 선전 문구를 머리 위에 두고, 베트남 사람들은, 종일, 자본주의적 경쟁을 버텨내느라 바쁘다. 공산당이야 영원하든지 말든지, 모든 인민이 힘을 합하든지 말든지, 됐고! 나는 당장 차 한 대가 필요하고, 아이는 영어학원 보내야 하고, 집값 오르기 전에 준비 좀 해야 하고... 그런 걸까?

공산당 선전물 옆으로, 미국 유학 설명회 광고배너가 즐비하다


여행도 끝이 보이고, 답도 대충 이런 식으로 정해버리고 말려던 즈음에, 나를 벙찌게 하는 일이 하나 있었다. 훌리아(Julia, 러시아 친구라, 훌리아 비슷하게 발음하랬다)와의 일이다. 하노이 둘째 날 일정은 호찌민 기념관이었다. 일행 모두 좀 내키지 않아하며 어물쩍 거리고 있었더래서, 그 일정에 들떠 있는 훌리아는 유난히 두드러졌다. 레닌, 모택동에 이어 호찌민 묘까지 이제 성지 순례 완성이라며 한층 높은 톤으로 수다가 길더니, 도중에 레닌 동상이 나오자, 훌리아는 격하게 감동하며 내게 자기 물병을 들려놓고 폴짝폴짝 뛰어가 기념사진을 찍기까지 했다. 자기가 속한 사회주의적 체제를 열성적으로 옹호하고 있는 훌리아의 모습을 보며 나는 놀랐고, 그 모습에 놀라는 나를 보고 더 놀랐다.


나는 그때, 퍼뜩, 내가 가지고 있던 근거 없는 선입관을 봤다. 사회주의 체제의 국민들은 사회주의를 시무룩하게 체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을 것이라는 이미지가 내게 있었던 것 같다. 또박또박 말로 생각한 정도는 아니겠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 강력한 이미지로, 나는 그렇게 여기고 있었나 보다. 나는 벙찌고 당황했고, 결국 부끄러웠다. 다른 나라와, 다른 사회와, 다른 체제, 그리고 그 다른 것들을 사는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나는 대체 얼마나 편협하고 무지한 것인가.


여행은 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나는, 프로파간다 포스터를 좀 훑는 것으로 베트남을 이해하겠다던 계획과, 십여 일 베트남을 돌아보는 중에 대충 답을 찾았다 했던 생각을, 아주 민망한 마음으로 철회했다. 여행을 시작하던 호찌민에서보다 여행을 마치는 여기 하노이에서 나는 베트남을 더 모르겠다. 여행으로 그 나라를 이해한다는 것은 과연 가당키나 한 걸까.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내게, 남편이 책을 가져다 안기기 시작했다.. 반백의 나이에 공부라니.


아마도, 여행이 답을 줄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됐다. 대신, 여행은 질문을 던진다. 15일간의 베트남 종단 여행은 베트남에 대해 내가 가진 부당한 선입관을 들여다보는 시간이었고, 그럼으로써 내게 진짜 베트남을 궁금하게 했다. 그러니, 이제부터 들여다봐야겠다, 베트남 여행이 던진 질문들을 - 중국 천년, 그리고 곧장 프랑스, 미국과의 전쟁 그러고도 꼿꼿이 서 있는 그들의 저력이 뭔지, 사회주의 이념과 개인의 자본주의적 열망은 어떻게 공존하는지, 전쟁 상대국과의 친교에 대해 그들의 실제 마음은 어떤지. 일말이라도 알 수 있는 질문들인지 모르겠지만, 뭐! 하여간! 어쨌든! 여행이 끝났으니 이제 시작할 때다. 여행이 질문을 던졌으니, 나는 답을 찾아봐야지.  


우선, 이것부터 알아볼까, 베트남에는 왜 그렇게 이발소가 많은지...?

HOT TOC. 시골에도 도시에도, 베트남에는 왜 그렇게 이발소가 많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미술관 방랑자, 미술관 여행자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