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미술관 방문객은 아닙니다
2 라빌레뜨 공원도 가보셔야죠!
<펠리체 바리니>
‘관광지 파리’가 아닌 ‘파리지앵의 파리’를 들여다보면 항상 라빌레뜨 공원(Parc de la Villette)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북동부의 19구에 위치한 이곳은 관광객보다는 예술가들과 파리지앵의 쉼터로 유명하다. 본래 가축 도살장과 정육점이 모여 있던 지구를 스위스 출신의 건축가 베르나르 츄미(Bernand Tschumi)의 설계로 재개발한 공원으로, 라빌레뜨는 영국식과 프랑스식으로 나뉘던 이전의 조경 형태 구분을 모두 탈피하였다. 여느 공원과 다름없이 산책로, 광장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야외건축물의 창의성과 문화시설의 퀄리티는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정도다. 이번 여름, 이와 같이 현대적인 독특함으로 무장한 라빌레뜨는 기하학적 현대미술가 펠리체 바리니와 손을 잡았다.
들어서는 순간(사실 ‘정문’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도 딱히 존재하지 않지만) 왼쪽 건물의 천장에 가득한 오렌지색이 눈에 푹 잠긴다. 군데군데 색칠되어 어딘지 모르게 이상했지만, 현대미술의 한 종류려니 생각하고 넘어가려 했다. 그리고 전시장을 찾아 헤매던 그 때, 뒤를 돌아 발견한 ‘그’ 건물의 천장은 이전에 본 그것과 다른 얼굴을 지니고 있었다. 통로의 맨 끝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은 마치 해가 떠오르는 듯 오렌지빛의 무지개가 하늘을 찌르고 있는 모습이었고 다름 아닌 이번 전시의 시작이었다.
작은 파빌리온에 들어서는 순간 공간 곳곳의 점박이들이 보였다. 한 벽은 파란색 점들로 가득했고, 그 맞은편에는 빨간색 직선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하지만 특정 지점에 서는 순간, 이 모든 것들이 전시장 속의 모든 기하학적 낙서들이 펠리체 바리니가 창조해낸 착시 현상임을 깨닫게 된다. 그는 기존 건축물에 부여되었던 구조와 틀을 거부하고 평면을 입체로 만들어 낸다. 우리가 평소에 알고 있던 공간개념을 마음 놓고 깨버릴 수 있는 자유를 얻는 것은 물론,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그 착시 현상의 결과마저 조금씩 변한다는 것이 이번 전시의 무한한 매력이었다. 공간이 새롭게 탄생하고 소멸되는 고차원적 감상의 시간을 가지는 관람객들의 눈엔 놀라움이 가득했다.
또 한 가지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과정이 완벽한 계산에 의해 작업되었다는 것이다. 작가는 단순하게 한 지점을 놓고 평면의 도형을 그려내지 않고, 마치 공간의 한 면을 찍은 사진 위에 포토샵으로 도형을 올려놓은 듯이 완벽한 구도를 만들어 내기 위해 계산된 공간 속에 치밀하게 색을 올려두었다. 한 예시로, 여러 색으로 이루어진 원을 보여주기 위해 그는 마치 퍼즐처럼 원이 맞춰졌다가 다시 떨어져나가는 과정을 선보였다. 이와 같은 공간예술 작업은 타이포그래피에도 적용된다. 실제로 해외의 수많은 타이포그래피스트들과 협업을 하기도 했던 펠리체 바리니는 이번 전시에서도 색감과 테크닉을 이용해 하나의 문장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생각보다는 짧았던(사실은 ‘도형 맞추기 놀이’를 하고, 조금이라도 더 완벽한 사진을 찍기 위해 모두가 1시간 동안 키덜트가 된다) 전시를 보고 나오자, 건너편 건물에서 펠리체 바리니가 지금까지 진행해왔던 수많은 프로젝트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가 상영되고 있었다. 이번 전시가 전시장 내부에서 새로운 공간을 창출해내는 프로젝트의 일부였다면 다큐멘터리 속의 펠리체 바리니는 야외, 그것도 한 마을 전체를 기하학적 도형으로 덮어 좁디좁은 인간의 시야를 확장시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얀 집으로 가득했던 마을에 거대한 빨간 공들이 쏟아져 내리는 영상은 사실 마을 곳곳에 위치한 벽에 빨간색을 흩뿌린 결과물이었다!
라빌레뜨 공원을 찾은 나의 첫 번째 목적은 펠리체 바리니의 전시를 통해서 시각에 새로운 충격을 선사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 날의 나는 큰 성공을 거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저녁 10시는 되어야 해가 지는 여름의 파리, 그 날씨가 너무 더워 공원 곳곳의 더 많은 곳을 찾아가보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렇게 멋진 곳을 알게 된 이상 다음에 있을 파리 방문에서도 라빌레뜨 공원이 절대 빠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공간을 창출하는 예술가와 일상을 재탄생시키는 공원의 조화 속에서 조만간 또 다시 춤을 출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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