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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ji Jeon May 15. 2016

미술관 방랑자, 미술관 여행자 3

그러나 미술관 방문객은 아닙니다

3. 도쿄의 현대미술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도쿄도현대미술관>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미술관에 들어서는 동시에 곳곳에 놓인 의자를 뜯어보는 습관을 가진 이상한 관람객이다. 의자가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그리고 그 수는 적당한지 등등 소위 말하는 쓸모없는 궁금증들을 해결한 뒤에야 그 미술관에서 발걸음을 떼는 것이다. 이는 미술관 안과 밖의 사이에 서있는 존재로서, 다시 말해 관람객인 동시에 미술관의 일을 해본 관계자로서, 그 무엇보다도 공간에서 느끼는 편안함이 우선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런 ‘특징’을 지닌 사람이 아니었더라도, 도쿄현대미술관의 이야기를 쓰는 모든 이가 의자에 대한 꼭지를 빼놓지는 않았겠지만 말이다. 

  현대미술관에 가기 전 날, 나는 새벽 비행기를 놓치지 않겠다는 일념 하나로 밤을 완전히 샜고 도착하자마자 미술관 네 곳을 연달아 다녀왔다. 나의 다섯 번째 미술관이었던 도쿄현대미술관은 유난히 문을 늦게 닫는 곳이었기에 에너지가 방전되기 일보 직전에 방문할 수 있었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에서, 별다른 기대 없이 한 쪽 벽이 통유리로 가득한 미술관 내부를 올라섰다. 그 순간, 건물 옆으로 화려하게 빛나는 연못이 저 너머로 펼쳐진 것을 보고 몇 초 간 숨을 쉴 수 없었다. 기바 공원의 자연과 함께 미술이 공존하는 공간을 원했던 건축가 야나기사와 다카히코(柳澤孝彦)의 의도였다. 그리고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유리를 따라 놓인 알록달록한 의자들(소파에 가까웠다) 중 하나에 ‘누워서’ 그 황홀한 풍경을 바라보았다. 

  건물들도 이야기를 한다. 무심하게 지나치는 사람에게 들리지 않는 건물들의 작은 목소리는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속삭임을 전한다. 또한 노출 콘크리트나 강철, 유리로 둘러싸인 현대적 건물이라 할지라도 그 건물이 전해주는 이야기는 의외로 따스하고 친근한 면이 있다. 특히나 미술관일 경우, 그의 품에 안겨 이야기에 초대되는 것은 관람객으로서 누릴 수 있는 가장 생경하고도 이색적인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도쿄도현대미술관은 내부의 전시를 관람하는 사람들에게 주변의 빛을 조곤조곤 소개하며 바닥으로 침전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편안한 의자로 부른다. 이러한 경험은 전시라는 ‘본론’을 잊지 않으면서도 색다른 서론과 결론을 만들어낸다. 낮과 저녁 사이의 시간에 끼워 맞춘 듯이 도착해 미술관 한쪽 벽 통유리로 쏟아지는 햇빛과, 어두컴컴한 연못 위 반사광을 모두 즐길 수 있다면 이야기는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그런 풍경에 넋을 놓고 있던 시간 동안, 나는 이 미술관을 방문한 주요 목적이 오노 요코의 전시였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며칠 내로 오노 요코의 작품을 직접 본 소감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던 나였다. 예상하지 못한 결과이기는 하지만, 도쿄도현대미술관이 가진 공간의 매력은 이 글을 ‘존 레논의 아내이기 이전에 아방가르드 미술의 선구자 중 한 명으로서, 오노 요코는 행위예술과 개념미술로 현대미술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로 시작하지 않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미술관에 대한 기억을 풀어내면서도 전시나 작품에 대한 설명을 적지 않는 것은 당황스러운 일이지만, 의자라는 덫에 걸려 미술관 로비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던 몇 시간은 기록할 만한 가치가 충분했다. 

  지하철역로부터 한참을 걸어야만 방문할 수 있고, 도쿄 도립 시설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가격을 지불해야 하는 곳이지만 도쿄도현대미술관은 사랑스럽기 그지 없었다. 크게 눈에 띄는 건물도 하나 없는 조용한 주택가 사이를 인내심을 가지고 곱씹으며 걸어야만 등장하는 스틸과 유리가 어우러진 외관은 차가운 겉모습과 달리 친절하다.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 하고 주변 공간을 보다 깊숙하게 둘러보았다. 느지막이 전시장으로 향하는 다른 관람객들이 자연광을 한껏 머금도록 하는 천장을 바라보니 그 날은 더 이상 겨울이 아니었다. 철학자 후설이 주창했던 현상학적 환원을 감히 떠올려본다. 대상에 대한 객관성을 버리고 직접 인식하는 체험, 그것은 이제 전시장 밖으로 걸어 나와 주변의 모든 장소와 맥락을 같이 하는 현대미술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은빛으로 쨍한 스틸 아래로 햇빛이 부서져 내릴 때, 오노 요코가 ‘Cloud Piece’라는 제목을 붙인 창문 밖의 구름을 바라보자. 더 이상 차갑고 딱딱했던 미술관이 몸에 닿는 것을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http://magazine.urbanpoly.com/?p=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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