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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위밍 Mar 19. 2023

행복함을 느끼는 능력

요즘 나를 즐겁게 한 것들

과제를 하러 집 근처 단골 카페에 갔는데, 평소와 달리 사람이 많고 소음이 심해서 커피만 포장해서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왕복 10분 거리를 걸었을 뿐인데 3월 태국의 한낮 볕이 뜨거워 인중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 짧은 시간 동안에 급격하게 지쳐버렸지만, 집에 도착해서 씻고 에어컨을 켜고 음악을 틀고 아이스라테를 한잔 마시니 이 순간 누구도 부럽지 않을 만큼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느껴진다. 라테가 정말 맛있고, 스포티파이가 추천해 준 플레이리스트가 하나같이 내 마음에 쏙 들고, 애인이 선물해 준 마샬 스피커의 음질도 너무 좋고, 내 아담한 집은 금세 에어컨 냉기로 시원해졌고, 침실 창에선 햇볕이 쏟아져 온 집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이 순간을 잊고 싶지 않아서 오랜만에 일기를 쓴다.


요즘 나를 즐겁게 한 몇몇 순간들이 떠오른다. 엊그제 금요일 밤에는 친구들과 함께 방콕 시내로 '떡볶이 원정'을 떠났다. 얼마 전부터 떡볶이가 너무 먹고 싶었는데 내가 사는 동네에서는 제대로 된 떡볶이를 먹을 수 없어서 시내까지 먼 길을 갔다. 정말 먼 길이었다. 여기 살면서 경기도민들의 애환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동만 했을 뿐인데 지쳐버렸지만 떡볶이 뷔페 코너를 보니 심장이 뛰었다. 한국인으로서 친구들에게 최고의 양념 배합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책임감에 첫 번째 판은 제대로 먹질 못했다. 두 번째 판부터는 감을 잡고 본격적으로, 정말 전투적으로 먹었다. 정말 숨을 못 쉴 만큼! 맛있었다. 정말, 매우.. 너무... 굉장히...

배불리 먹고 난 뒤에는 친구들과 쇼핑몰 안을 구경하며 저마다 (4월 송크란 명절 여행을 위한) 시원한 원피스를 하나씩 사고, 3개에 100밧 하는 장난감 같은 반지도 하나씩 사서 나눠 꼈다. 액세서리 가게에서 선글라스도 껴보고, 평소에 잘 안 찍는 셀카도 찍으며 놀았다. 그게 뭐라고 너무 즐겁고 신났다. 장난감 같은 꽃반지가 내 마음에 쏙 들었고 친구들과 이것저것 입어보고 구경하면서 쉴새없이 웃고 떠들었다.


최근 내 일상의 또 다른 기쁨은... 덕질이다. 덕질은... 도파민 파티 그 자체다. 우연히 한 오디션 프로그램의 클립을 봤는데,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프로듀스 101 같은 전통의 오디션 프로도 안 봤던 나인데, 어쩌다... (이런 게 운명 아닐까...?) 여타 아이돌 메이킹 오디션과 다르게 이 프로그램은 이미 데뷔했었는데 잘 안된(ㅠㅠ) 친구들이 팀 단위로 나와서 겨루는 컨셉인데, 그러다 보니 (서사는 거의 빼고 보여주긴 하지만) 다들 사연이 하나씩은 있다. 이 프로그램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다. 열정과 실력, 성실함과 간절함을 가진 젊은이들. 하지만 냉혹한 현실과 실패. 그럼에도 좌절하지 않고 도전하는, 그래서 결국에는 빛을 보고 지난 시간을 보상받는, 노력은 배신하지 않고 언젠가는 세상이 나를 알아봐준다는, 공정 서사의 끝판왕 같은 그런 드라마. 나도 좋아한다. 하지만 프로그램은 좀처럼 흥하질 않아서, 이 친구들이 앞으로 더 잘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ㅠㅠ 지난주에 영상 하나가 유튜브 인기 동영상에도 가고 조회수도 폭발했는데, 이걸 계기로 프로그램도 잘되고 관심 많이 받았으면 좋겠다. 


아무튼 나는 처음에는 입덕 부정기를 조금 겪다가 이제는 깔끔하게 인정하고 매일 영상 찾아보는 재미로 산다. 하루가 부족하다. 내 가수(ㅋㅋ)는 데뷔한 지 10년이 넘어서 과거 영상이 많았다. 처음엔 그 옛날의 헤어 메이크업을 보고도 좋아하기는 좀 힘들었는데, 이제는 그것마저 조금 귀여워 보이고... 아무튼 작년에 그 친구가 솔로 앨범 활동을 할 때 했던 인스타 라이브 영상을 봤는데, 참 멋지다란 생각이 들었던 포인트가 있었다. 앨범을 내고 요즘 다 즐기면서 후회 없이 활동하고 있고 모든 것이 재밌다고 했다. 음악 방송 하는 것도 재밌고, 매번 조금씩 다르게 해보려고 하고 있고, 헤어 메이크업 해주시는 분들도 다 너무 잘해주셔서 감사하고, 앨범 작업에도 직접 다 참여해서 노래도 안무도 다 만족스럽고, 퇴근 후 매일 인스타 라이브로 팬들과 하나라도 더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ㅠㅠㅠㅠㅠ). 이런 즐거움을 조금 늦게 안 것 같아서 팬들에게 미안하다고도 했다. 


내 가수 정말 멋진 사람이구나... ㅠㅠㅠ 음원 순위, 음방 순위 같은 것보다도 결과물에 나는 만족하고 너무 즐겁고 재밌고 후회 없이 즐기고 있다니...! 95년생이 인생의 진리를 깨달은 것 아닌가? 근데 이지고잉 하는 척 하지만 무대는 너무 퍼펙트하게 잘한다. 아무튼 덕질 가운데 또 하나의 큰 깨달음을 얻고 나도 순간의 만족감을 자주자주 느끼며 이 시간을(나아가 나중에 논문 학기도 ㅠㅠ) 후회 없이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요즘 들어 만족감을 느끼는 것도 (선천적인 것인 든 후천적인 것이든) 일종의 능력이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행복은 만족감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만족감은 객관적인 상황이나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 자동으로 얻게 된다기보다는 내가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고 느끼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영역인 것 같다. 이렇게 쓰고 보니 마치 자기 계발 강사 같긴 하지만, 요즘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바는 그러하다. 아무튼  중요한 건 더 높은 목표나 성취의 기준을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순간에서든 즐거움과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생각의 습관을 발달시키고, (다른 사람은 못 느껴도 나에게는 와서 딱 꽂히는) 그 순간을 포착해서 풍부하게 느끼고 즐길 수 있는 감각의 확장인 것 같다. "오히려 좋아!"란 말이 유행했던 것처럼, 앞으로 다가올 수많은 좌절과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뭐 어쩌겠어 해내야지"라고 의연하게 넘긴 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라는 마음으로, 시원한 라테의 맛, 창밖의 지는 노을, 계절마다 바뀌는 꽃과 나무, 매일 조금씩 다른 낮과 밤의 하늘과 바람과 달, 우연히 알게 된 좋은 노래, 그리고 내 아이돌의 미소가 주는 충만한 행복감을 자주자주 느끼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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