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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Aug 18. 2023

마침내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지 궁금해졌어

내 이십대는 늘 조급했다.

누가 뒤에서 바짝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나를 증명하는 것이 내 인생의 버거운 숙제였다.

늘 발을 동동 구르는 게 남들 눈에도 다 보였는지 사람들은 늘 이렇게 묻곤 했다.


"왜 그렇게 조급하게 굴어? 좀 천천히 해."


아직 어리니까 천천히 가도 된다고 내 주위 많은 사람들이 말해주었지만 그 시절에는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떻게하든 빨리 보여줘야했다.

내 부모에게 내가 여기 존재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싶었다. 당신들이 나를 무시하고, 내 현재를 비웃고, 내 미래를 폄하했지만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이뤄내고야 말았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준비도 없이 마음만 급했던 나는 천천히 깊게 사유하기 보다는 무모하게 시작하는 경우가 더 많았고, 당연하게도 실패가 잦았다. 좌절하고 포기하는 경험이 쌓여가며 나는 스스로 증명했다.

당신들이 맞았다.

나는 역시 별볼일 없는 인생으로 살게 됐다.  

그래, 그럴 줄 알았다.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다.

숙제도 독후감쓰는 게 제일 좋았고, 친구들이 글쓰는 걸 어려워하는 게 신기했다. '이렇게 재미있는 게 왜 싫지?' 라고 생각하면서 한두시간 안에 다 쓰고 놀러 나갔다.

그러다 대학생이 되면서 처음으로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상을 타고 영화 잡지에 인터뷰글도 실렸다. 살면서 처음으로 부모에게 자랑이 되는 경험을 했고 그대로 그게 내 인생의 목표가 되어버렸다.


그래, 내가 갈 길은 작가였구나.  


연달아 두번의 큰 상을 받고 나는 내가 대학교 졸업만 하고나면 바로 작가가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인생이 어디 그렇게 쉽던가?

아무것도 확정되지 않은 상태로 졸업을 했고, 그동안 글 쓴답시고 학점관리도, 이렇다할 스펙도 쌓지 않은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거지같은 현실과 이상의 간극에서 나는 늘 괴로워했다.


'어설픈 재능은 저주라다'는 말이 십여년간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그리고 다시 포기했다. 한동안은 드라마도, 영화도 보지 않았다. 더 버티기를, 나를 믿어보길 포기한 주제에 다른 사람들의 재능을 마주하는 것은 배아팠다. 그대로 자괴감에 침몰되었다.


이번에도 역시 나는 빨리 작가가 되지 않으면 아무짝에도 소용없다고 믿었다.

대학 졸업할 때까지만, 1년만 더, 서른살이 될때까지만... 이러면서 계속 유예기간을 늘렸지만 결국 서른살이 마지막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서른도 어린 나이였는데 그땐 그게 내 마지노선이었다. 이미 부모에게 나는 천덕꾸러기가 되어가는 중이었다.


어렸을 적 부모에게 인정을 받지 못한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평생을 부모의 인정을 받기 위해 산다고 한다. 딱 내가 그짝이다.

내가 좋아한다는 사실보다 부모의 인정을 받는 것이 더 중요했다. 우리딸이 작가라고, 이번에 우리딸이 쓴 영화가 개봉한다고, 드라마가 나온다고 이런 이야길 듣고 싶었다. 그저 그들에게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었다. 슬프지만, 그게 내 꿈의 시작이자 끝이었고 전부였다.


나는 정말 글쓰는 게 좋았을까?


밥을 지을 때 뜸들이기를 하는 이유는 밥솥 내의 열기가 밥알 전체에 고루 퍼지고, 수분이 밥알에 잘 스며들게 해 밥맛을 더욱 살리기 위해서다.

사람도 뜸들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사람이 뜸을 들인다는 건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다. 내가 생각하는 가치관, 내가 옳다고 믿는 것, 절대 타협할 수 없는 것, 내가 그리는 나의 미래, 내가 지향하는 삶과 그를 위해 갖춰야하는 태도와 같은 것들을 하나씩 차근차근 세워나가는 시간이다.

내 인생에서는 이런 시간이 건너뛰어졌다. 나를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보다 나를 둘러싼 가족과 상황을 살펴야하는 시간이 더 많았던 탓이다.


스무살에 했어야 했던 질문을 이십년이 흘러 다시 해본다.

그래 그래서 너는 대체 어떤 인간이니? 어떤 인간이 되고 싶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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