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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Jun 25. 2023

오빠는 왜 돈 빌릴 때만 연락을 할까

정말 급해서 그런데 50만원만 빌려주라.
금요일에 바로 갚을게.

오빠에게 정말 오랜만에 연락이 왔습니다. 

역시나 돈을 빌려달라는 내용의 문자였습니다.

저는 군소리 없이 50만원을 통장으로 보내주었습니다. 


하나뿐인 형제인 내 오빠는 돈을 빌릴 때만 연락을 합니다. 그 외에는 단 한번도 연락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내가 집과 연락을 끊었을 때도, 결혼을 했을 때도, 이사를 할 때도, 아플 때도 오빠는 거의 연락을 하지 않습니다.  제가 연락을 해도 오빠는 대부분 읽씹을 하거나 본인의 힘듦을 이야기 할 뿐입니다.


최근 찐 남매 케미를 보여주며 웃음을 주었던 악동뮤지션 이찬혁과 이수현을 보니, 꼭 우리만 그런 것 같지는 않지만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에 대한 가족애가 찐득하게 묻어나는 것을 보니 내심 부러웠습니다. 사실 오빠와 저 사이엔 그런 가족애가 없습니다.  


본인이 뭔가 필요할 때, 부탁할 일이 있을 때에만 오빠는 연락을 하곤 합니다. 

어느 날은 10만원만... 또 다른 날엔 30만원만... 그리고 또 100만원만...


오빠가 나에게 보낸 메시지를 보면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웬일로 연락을 했나 보면 결국은 돈 얘기를 꺼냅니다. 어느 순간 부터는 화도 나지 않았고, 오히려 오빠가 나에게 빌리는 걸 다행으로 여겼습니다. 친구나 지인에게 돈을 빌리고 갚지 못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 게 더 힘드니 차라리 내 돈을 가져가는 게 속편한 것이죠.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여기서도 빌리고 저기서도 빌리고 결국은 똑같더군요. 


돈을 빌려간 오빠가 다시 돈을 돌려준 적은 거의 없습니다. 오빠는 나에게 돈을 항상 빌려달라고 말하지만 그냥 가져갈 뿐입니다. 한 번에 몇 천만원 단위의 큰 돈을 빌려달라고 하지는 않지만 저렇게 자잘하게 빌려간 돈을 합치면 천만원은 족히 넘을 것 같네요. 


저도 딱히 돈을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오빠에게 돈을 빌려줄 때 저는 그냥 준다고 생각하고 줍니다. 빌려줬다고 생각하면 갚지않는 오빠의 행동에 울화가 치미는 경험을 몇 번 한 뒤로는 그냥 주었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저에게 오빠는 아픈 손가락 같은 존재입니다. 

가족에게 무시 받지 않으려고 어렸을 때부터 몸에 밴 허세와 허영을 여전히 끌어안고 사는 사람. 

한 번도 자신의 속 마음을 털어놓은 적이 없기에 본인조차 스스로를 바닥까지 성찰해본 적 없는 사람. 

가장 따뜻했어야 할 부모에게 단 한번도 위로나 공감받아 본 적 없기에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능력이 낮고, 본인의 이익을 위해서 얼마든지 자기 연민도 이용할 수도 있는 사람. 

그리고 저는 그런 오빠에게 기꺼이 이용당해주는 사람이고요. 


사실 오빠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건 제 마음의 병 때문입니다. 

마흔이 훌쩍 넘은 오빠를 생각하면 늘 불안하고 미안하고 가슴이 아픕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아빠에게 어렸을 때부터 지속적인 정신적인 학대를 받아온 전우애 때문일 수도 있고

아마 오빠도 나처럼 여전히 아물지 못한 상처에 고름이 맺힌 채 있을 것 같다는 마음일 수도 있겠죠. 

그래서 한 번 걱정이 시작되면 공황이 올 정도로 불안해집니다. 

꼭 오빠에게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아서 마치 놀이기구를 타고 높은 곳에서 아래로 떨어질 때의 기분을 계속해서 느끼는 거죠.  


다행히 사회적으로 볼 때 오빠는 잘 살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오빠는 아주 잘 나가는 사람이에요. 그런 오빠를 제가 연민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게 어이없을 만큼 말이지요. 


나에게 일어난 모든 결과를 부모 탓으로 돌리고 싶지는 않지만 

지금 우리 가족이 이렇게 서로에게 마음 하나 의지 하지 못하고 뿔뿔히 흩어지게 된 이유는 명백합니다.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불안의 원인도 여전히 내가 부모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증거겠죠.  


이 마음이 용서되는 날이 올까요? 

대체 이 마음의 끝에는 무엇이 남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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