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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립 김동우 Aug 23. 2017

창살 없는 감옥

 Thailand




나에 대한 나의 기대만큼 나를 괴롭히는 것도 없다. 내 안에서 내 안으로 향하고 있는, 떼어 낼 수 없는 시선은 한 번도 나를 속여본적이 없다. 나에 대한 모든 걸 알고 있는, 그래서 가장 믿음직하면서 또 섬뜩한 눈. 그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고 어제와는 분명 다를거야, 하고 말하는 나를 토닥거렸다.


중국, 태국, 미얀마 등에 넓게 퍼져 사는 소수민족 중 한 부족을 찾아가는 날이었다.

사진으로 익숙하게 봐온 그들은 이제는 관광객들에게 자신의 삶을 내보이고 그 대가로 돈을 받아 생활하는 사람들이 적잖다. 태국에서는 정부 차원에서 그들의 관광상품화를 부추기는 상황이기도 하다.

이들 중 한 부족은 미얀마에 살던 사람들이 많았는데 내전을 피해 태국, 중국으로 퍼져 나갔다. 목에 구리로 된 링을 차고 있어 서양인들은 롱넥족이라고 부른다. 현지에서 카렌족, 빠동족 등으로 칭한다. 소수민족의 분류가 어찌 됐건 그들 중 여성들은 어린 나이부터 목에 링을 거는 전통을 갖고 있다. 그래서 마치 목이 점점 길어지는 사람처럼 보인다. 미의 기준 또한 긴 목이라고 했다. 목에 링을 끼우기 시작한 이유에 대해서는 호랑이에 물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또는 여자들이 팔려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등 다양한 설이 있다. 링을 차고 있는 여성들은 나이가 들수록 링의 숫자를 늘린다. 그럴수록 목이 길어진다. 이는 링의 무게에 눌린 어깨와 쇄골이 밑으로 쳐지면서 목이 길어지는 착시효과일 뿐이다.


라오스, 태국, 미얀마 등을 여행하다 보면 자연스레 다양한 소수민족들을 만날 기회가 생긴다. 동남아 여행을 하면서 그들의 삶을 멋지게 담아 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소수민족을 만나기만 하면 괜찮은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거란 자신에 차 있기도 했다. 결과부터 말하면 전통을 이어 나가고 있는 소수민족을 만날 때마다 나에 대한 나의 기대는 참담한 수준이었다. 제대로 카메라조차 들지 못할 때가 부지기수였으니.

목과 다리 등에 무거운 쇠 링을 달고 있는 모습은 마치 창살 없는 감옥 같았다. 죄 없는 죄수들이 갇혀있는 공간에서 어느 누가 호기심과 흥미의 눈빛으로 그들을 쉽게 담을 수 있단 말인가. 육체적 속박을 전제로 한 여성적 미가 유효한 세상을 살아오지 않은 내게 이 모습은 혼란스럽기만 했다. 무엇보다 무시무시했던 건 여성들이 부정을 저질렀을 때였다. 처벌은 가혹했다. 평생 목을 지탱하며 생명줄 역할을 하던 링을 없애버리는 형벌이 주어졌는데, 그럼 여성들은 목이 부러져 죽거나 평생을 누워 지내야만 했다. 속박의 밖에는 눈부신 자유가 아닌 처참한 죽임이 기다리고 있는 셈이었다.


이제 태국이나 미얀마를 찾는 사람들이 상업화될 때로 상업화된 이들의 집단 거주지를 찾는 건 예삿일이 됐다. 나도 그들 틈에 끼여 이들의 거주지를 찾았지만, 이 슬픈 이야기 때문일까. 그들을 보는 내 시선에 호기심 따위가 스밀 여유가 없었다.

‘뭘 보러 온 거지. 그리고 멋지게 그들을 찍어 보겠다는 나에 대한 나의 기대는 도대체 어디로 간 거지.’










_Photo Info
Leica M-P(typ240) + Summilux-M / 50mm ASPH
2017, Pai, Thailand © Kim Dong Woo
CopyRight. 2017. Kim Dong Woo All Rights Reserved.
All Pictures Can not be Copied Without Permission.
instagram_ https://www.instagram.com/road_dongw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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