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anmar
미얀마 여행 중 선배에게 연락이 왔다.
“미얀마는 내가 여행한 나라 중 몇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나라인데 어땠어? 라오스도 좋지 않았어? 나 때는 이 두 나라 사람들이 참 정겨웠는데 요즘은 어때?” 선배의 말에선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사람다움에 대한 그리움이 진하게 묻어났다. 선배는 “문제는 자본이야. 돈에 찌들면 변하는 거야.”라고 했다. 하지만 이들 나라 중 자본의 영양이 덜 미친 곳을 객관화할 재주가 내겐 없었다. 게다가 자본의 영향이 인간의 삶의 형태를 바꿔 놓는다는 주제 같은 건 박사학위 논문쯤으로 다뤄야 할 내용 아닌가. 선배의 질문을 받고 피상적이고 단편적인 경험만으로 그들의 마음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사람다움을 평가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미얀마 만달레이에서 있었던 일이다.
길을 가다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서둘러 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다 빗방울이 굵어져 작은 식당 처마에 신세를 지게 됐다. 괜히 주인 눈치가 보여 차를 주문하려고 보니 식사만 된다고 했다. 좀 전에 점심을 먹고 나온 뒤여서 처마 아래서 불편한 마음으로 하늘만 쳐다봤다. 나를 본체만체하는 주인은 비가 떨어지는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고, 난 조금이라도 불편을 줄까 싶어 몸의 반은 비를 피하고 반은 비를 맞고 서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본 식당 손님 중 “어느 나라 사람이냐”, “여기 왜 왔냐” 등 말을 붙이기 시작했다. 그는 자기 옆에 앉으라고 몇 번이나 권했다. 난 퉁명스러운 주인 눈치가 보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어서 비가 그치길 빌 뿐이었다. 그러다 손님과 주인이 나를 보며 옥신각신하는 일이 벌어졌다. 밥을 먹고 있던 손님들이 외국인 하나가 제대로 비를 피하지도 못하는 모습이 도리어 불편했는지 주인에게 자리를 내주라고 하는 모양새였다. 순간 그 상황이 너무 민망해 난 좌불안석이 됐다. 그런데 천만다행으로 빗방울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주인보다 친절한 손님들에게 서둘러 감사 인사를 하고 식당을 빠져나왔다.
나로 인해 괜히 마음 상하는 사람이 생길까 싶어 너무 서둘러 움직인 걸까. 몇 걸음 못 가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번엔 빗방울의 강도가 예사롭지 않았다. 조금 전 일 때문인지 잎이 무성한 나무 아래를 찾게 됐다. 오토바이를 탄 아저씨, 자전거를 탄 아가씨 등이 비를 피해 나무 아래로 몰려들었다. 잠시 뒤 빗줄기는 더 거세져 폭우 수준으로 바뀌었다. 비는 쉬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우기에 미얀마를 여행하고 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나무 아래에 조금만 더 있다가는 생쥐 꼴이 될 게 뻔했다. 그나마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은 길 건너편 건물 처마 아래 정도였다. 그 사이 나무 아래는 갑자기 굵어진 비를 피해 몰려든 사람들로 빼곡해졌다. 배낭을 우산 삼아 머리 위에 올리고 빗속을 뚫고 달렸다. 우산을 써도 온몸이 흠뻑 젖을 만한 폭우 속을 맨몸으로 달리자 꼴이 말이 아니었다. 입고 있던 티셔츠가 스티커처럼 피부에 달라붙었다. 티셔츠 아랫단을 잡고 옷을 털어 내고 있을 때였다.
건물 모퉁이에서 얼굴에 곱게 타나카<현지인들이 피부 보호를 위해 바르는 나뭇 가루>를 칠한 한 아주머니가 나를 보고 손짓했다. 손에는 빨간색 플라스틱 의자가 들려있었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비를 좀 더 잘 피할 수 있는 가게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아있으란 이야기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쩨주딘바대<감사합니다>!”란 말과 목례뿐이었다. 여러 번 감사를 표하고 가게 앞에 자리 잡고 앉았다. 젖은 생쥐 꼴을 하고 가만히 앉아 있자, 으슬으슬 한기가 몰려왔다. 툭툭 내 어깨를 조심스레 두드리는 인기척. 고개를 돌려보니, 빨간색 의자를 들고 있던 아주머니 손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차 한 잔이 들려있었다.
주인보다 손님이 객을 배려하는 마음,
당신 가게 앞에 잠시 머문 객을 걱정하는 마음,
세상 사람 그 누구나 나와 같음을 보는 마음.
어디서나 여행자들이 찾는 그 마음, 결론아닌 결론으로.
_Photo Info
Leica M-P(typ240) + Summilux-M 1:1.4 / 50mm ASPH
2017, Mandalay, Myanmar © Kim Dong W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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