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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립 김동우 Apr 06. 2024

국가보훈부에 묻다, “누가 죄인인가?”

‘윤 대통령’ 비판했으니 나가라?...보훈부판 ‘블랙리스트’ 논란


지난 2017년부터 카메라를 들고 국외독립운동사적지 기록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10여 개국 300여 곳 이상의 현장을 찾았다. 또 현지에 살고 있는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수소문해 그들을 인터뷰했다. 이 작업은 누가 시켜 한 일이 아닌 순수 개인 작업으로 진행됐다. 지금까지 대단한 후원도 지원도 없이 근근이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도움이라면 과거 쌈짓돈을 독립자금으로 내놓은 민초들처럼 매달 만 원씩 보내주시는 몇 분의 후원자가 전부다. 이런 곤궁함에도 강연과 책을 쓰며 작업을 계속하는 이유는 찬란한 우리 역사 현장이 품고 있는 서러움과 외로움을 외면할 수 없어서다. 독립운동가 모두 모난돌이었다. 그들은 핍박 속에서 위대한 역사를 썼다. 이제 그 질곡의 역사를 제대로 직시해야지 않나.


최근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내용인즉, 오는 6월 예정 돼 있는 국가보훈부 국외보훈사적지 하와이 탐방에 강사로 모실 수 없게 됐다는 소식이었다. 참고로 지난 2022년(미국 캘리포니아), 2023년(중국 동북 3성) 국외보훈사적지 탐방 강사로 참여한 적 있다. 설마 설마 하던 일이 현실이 되고 보니 적잖게 당황스러웠다. 이 결과는 지난 3월 1일자 경향신문 기사가 발단으로 짐작된다. 이 기사는 《“독립운동사적지? 비싸면 못 사고” 무심한 윤 대통령 목소리 못 잊어》란 제목의 인터뷰(https://www.khan.co.kr/politics/politics-general/article/202403011000011)였다. 제목과 함께 문제가 된 것으로 보이는 내용은 아래와 같다.


《김 작가는 지난해 1월, 윤석열 대통령을 직접 만나 반드시 연구 및 보존이 필요한 사적에 대한 보호를 부탁했다. “너무 비싸면 못 사고.” 무심하게 돌아온 한마디였다. 대통령에게 요청한 것은 계산기를 두드려 보고 살까, 말까 고민하는 명품 가방 같은 것이 아닌 우리 역사에 대한 보존이었다. 지난해 윤 대통령이 해외 순방에 사용한 돈은 알려진 것만 651억 원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가면 ‘윌로우스’라는 곳이 있다. 작은 시골인데 이곳에 최초의 한인 비행사 양성소가 있었다. 한인 백만장자라고 불린 김종림과 임시정부 초대 군무총장(국방부 장관) 노백린 장군이 의기투합해 세웠다. 특히 이곳은 터만 덩그러니 있는 것이 아니다. 한인 비행사 양성소 교육장 건물이 남아 있다. 현재는 그 옆에 집을 짓고 사는 미국인 소유다. 독립운동 흔적일 뿐만 아니라 어떻게 보면 한국 공군의 시작점이기도 한 만큼 역사적 가치가 높다. 그래서 지난해 1월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가보훈부 업무보고 때 정책자문위원 자격으로 윤석열 대통령을 만나 이 건물에 관해 설명했다. 꼭 땅과 건물을 매입해서 후손들이 기릴 만한 공간으로 만들어줄 것을 부탁드렸다. 행사가 끝나고 대통령이 참석자들과 악수를 할 때 재차 ‘꼭 좀 부탁드린다’라고 말씀드렸다. 윤 대통령이 한마디 하더라. ‘너무 비싸면 못 사고.’ 그날 행사가 영빈관에서 열렸는데 5시간 정도 기다려 대통령을 만났다. 그 부탁을 드리기 위해서였다. 옆에 서 있던 보훈부 장관에게 검토해 보라는 말 한마디만 했어도 기뻤을 것이다.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한인 비행사 양성소가 남의 나라 사적지인가. 윤 대통령과 한국 보수는 국방을 강조하지 않나. 그렇다면 더더욱 중요한 곳 아닌가. 무표정하게 ‘너무 비싸면 못 사고’ 하던 대통령 목소리가 잊히지 않아서 한동안 술만 마셨다. 지난해 10월에는 국가보훈부 정책자문위원에서도 사퇴했다. 지금도 미국에선 연락이 온다. 건물 주인이 한국인들은 연구한답시고 귀찮게만 하고, 팔려고 해도 정작 매입은 하지 않는다고 화가 났다는 내용이다. 그래서인지 2022년 무렵 이 건물에 페인트칠을 해버렸더라.》


사실 이 기사가 나가고 주변에서 “괜찮겠냐”며 많은 분들이 걱정해 주셨다. 한 분은 “‘입틀막’ 당하면 어떻게 하냐”며 우려했다. 신기하지 않나 사람들이 선험적으로 이런 경우 정부의 반응을 대충 예상하니. 이런 불안의 기원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정부가 국민을 향해 보여준 태도에 있을 거다. 그럼에도 홍범도 장군을 욕보이는 역사 왜곡 앞에 국가보훈부 정책자문위원을 사퇴하고, 언론 인터뷰에서 사적지 보전을 위해 입을 열어야 했던 건, 우리 독립운동 현장이 물리적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우리 땅이 아니란 이유로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가는 현실을 어떻게 해서든 바꿔보자 했던 절박함이었다. 그 애달픈 마음에 해볼 수 있는 건 ‘권력’이란 두 글자가 새겨진 바위에 계란을 던져 보는 일뿐이었다.


그 넘볼 수 없는 힘 앞에서 부조리와 불합리에 복지부동해야 하는가, 또 다른 불이익을 있다는 걸 알면서도 목소리를 내야 하는가, 그 번뇌 가운데 하나 분명한 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단 사실이다. 불행(?)하게도 부나방이 돼 보는 선택은 내가 가장 떳떳할 수 있는 길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격언의 확인장이 현실인 것 같다.


그렇다면 바람 부는 대로 물결 흐르는 대로 시류에 편승해 무색무취하게 기회를 염탐해야 하나. 그렇게 사는 게 얼굴 붉히지 않아도 되고, 타는 속을 쓴 소주로 진정시키지 않아도 되는 삶이다. 적당히 눈치 보다 부나방이 불길 속에서 타죽길 기다리며 그 자리를 은근슬쩍 차지하는 편이 훨씬 이득이 되는 세상이질 않나. 그럼 터져 나가고 깨져 나가는 것을 보며 무릎이 꺾인 채 무력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그럼에도 현실은 입이 틀어막혀, 목소리가 입 밖을 헤쳐 나가지 못해 가슴통 울리는 소리 귓가 맴돌고, 사지가 들려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카메라 밖으로 사라지는 몸부림이 고개를 돌리게 만든다. 왜 그 새 나오지 못하는 비명이 정 맞는 ‘뭉우리돌’의 울음 같을까. 가슴 뻐근한 깊은 슬픔 뒤 엄습하는 건, ‘목구멍까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도 삼켜라, 그래야 젖과 꿀을 내줄 수 있다’는 제왕적 권력의 엄포뿐이다. 그 권력 앞에 “그러시면 안 된다”는 말 한마디는 곧 세상에서 소리소문 없이 지워지는 지름길일지 모른다.


권력은 아편보다 더한 중독성이 있다. 그 힘은 권력 최정점에 있는 사람을 닮는 속성이 있다. 여기 더해 마치 여왕벌이 일벌의 호위를 받듯 권력을 지켜 내고자 한다. 인간 세상에서 절대로 충성하고 보호해야 할, 그 삐뚤어진 맹목적 복종은 사전검열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렇게 애써 모두 평안해 보이는 가상세상이 만들어진다. 자격이 안 된다거나, 실력이 없다거나 전 답사에서 평가가 좋지 못하다는 등의 객관적 이유로 국외보훈사적지 탐방 강사 선정에서 배제된 거라면 차라리 좋겠다. 자격을 갖추면 되고, 실력을 키우면 되니 말이다. 그럼 최소한 나 스스로 노력해 볼 수 있는 여지가 있지 않나.


하지만 하와이 구석구석을 발로 뛰며 한 장 한 장 사진으로 기록해 사진전을 한 적도 있고, 하와이에서 미국 본토로 이어지는 독립운동사를 사진과 글로 정리해 출간한 경험도 있다. 게다가 지난해 중국 보훈사적지 답사 강사 평가 또한 제일 좋았던 것으로 전해 들었다. 올해 하와이 국외보훈사적지 행사 진행 업체 선정 과정에서 5개 회사가 입찰해 경쟁 PT를 했다. 이 중 4곳에서 나를 강사로 섭외하겠다고 국가보훈부에 제안한 것으로 알고 있다. 사정을 보니 유감스럽게도 내가 해야 했던 건 입을 닫고, 눈을 감고, 권력자들에게 미소를 보내는 거였는지 모른다. 당나귀 귀를 당나귀 귀로 말하지 않고 꾹 참고 견뎌야 했던 셈이다. 국가 폭력은 몽둥이와 총, 칼을 들고 국민을 을러대는 것만 있는 게 아니다. 보이지 않는 행정적 불이익과 차별도 얼마든지 폭압의 수단이 될 수 있다.


이번 강사 배제 결정이 왜 내 눈엔 권력 최정점에 있는 대통령의 거친 언행을 닮아있어 보이나. 정무적 판단이라고 변명한다면야 대통령에게 고언(苦言)해 밉보인 자를 강사로 섭외해 위에 보고하기 불편하다는 정도일 거다. 국민 세금으로 국외보훈사적지를 답사하지 않나 왜 그 과정은 국민 정서에 반하나, 공무원은 국민이 대신 나랏일을 돌보라고 맡긴 자리다. 그 책임은 불편부당하고 투명해야 한다. 또 객관성과 선명성이 있어야 지지받는다. 내가 좀 껄끄럽다고, 내키지 않는다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거나, 해선 안 되는 일을 하면 그것이 결국엔 국가 품격을 헤치는 동시에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 된다. 정부에 대한 불신은 이런 것들의 총합인 셈이다.


전 국가보훈부 정책자문위원으로 자문해 본다면, 국가기관이 매번 옮은 결정을 하는 건 아니다. 겸손하게 주변 말을 경청하는 것부터 하시라, 누군가가 울분을 토로하면 심심한 위로부터 하시라, 다수가 맞다고 하면 그것은 참이 아닌 선이다. 또 자신이 내뱉은 말을 부인하지 마시라. 언젠가 그 화살은 말 바꾼 자의 심장을 정면으로 겨눌 거다. 스스로 권력의 파수꾼이 돼 국민을 길들이려 하지 마시라. 해야 할 건 눈치 안보고 일에 대한 신념과 정의를 지키는 일이다. 본인들의 이익을 위해 국민을 투사로 만드는 잘못을 반복하지 마시라.

당부 하나 더 해본다. 도와달라 부탁하지 않겠다. 특혜를 달라 청탁하지도 않겠다. 단, 정당하게 쌓아온 권리와 자격을 권력자의 눈치를 보며 무시하지 마시라. 이 글을 내가 하와이를 못 가서 쓰는 거라고도 생각하지 마시라, 그러면 당신은 정말 쪼잔한 거다.


마지막으로 국가보훈부에 묻는다, “방법을 알려주시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당분간 입 닫고, 아무것도 말하지 않으면 되나? 그럼 괘씸죄에 면죄부를 주시나? 그런데 누가 죄인인가? 대가 없이 국외독립운동사적지를 기록하며 그 실상을 알리려 한 자인가, 그 실상에 무관심 한 자인가?”


김동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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