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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sallim Mar 28. 2022

홈웨어는 무릎이 나와야 제 맛이지!

잠옷을 입고 사는 여자

앞치마를 입고 설거지를 하지 않는다.

2 전에 만든 앞치마는 크리미한 아이보리 컬러의 광목 원단인데 물과 불과 기름을 만지는 살림에는 적합하지 않다 것을 재봉 공방 선생님으로부터 듣고 나서야 알았다.

그냥 ‘예쁜’ 모습으로 살림을 하고 싶을 때 잠시 걸친다. 마치 레이어드 원피스처럼.


집에서는 주로 100% 면소재의 셋업을 홈웨어로도 잠옷으로도 입는다.

경계를 두지 않고 입은 옷차림 그대로 살림하고 잠도 잔다.

무릎이 몹시 튀어나온 바지는 그 굴곡이 상당하다.

상의는 싱크대에 기대 설거지를 하다 물에 젖고, 제육볶음을 하다 양념이 튀고 성급하게 간을 보다 재료가 툭! 떨어져 얼룩이 생기기 일쑤다.

그러니 후줄근한 모습인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청소기를 돌리고 밥을 하고 빨래를 개키며 동동거리는 살림 속에서 나도 모르게 심드렁하게 잠이 드는 일상을 살다 보면 꾸밈과 예쁨을 꺼내놓기란 쉽지 않다.


여느 날처럼 습관적으로 SNS를 떠다니다 탐나는 잠옷을 보았다.

한껏 꾸민 패셔너블한 감각의 옷차림이 아닌데 몹시 끌렸다.

무릎이 불쑥 튀어나오지 않으면서 귀엽고 여성스러운 스타일의 잠옷이었다.

베이지 컬러의 프릴 소매에 소녀스러운 레이스가 놓인 잠옷과 빈티지 블루에 자잘한 꽃무늬가 뿌려진 잠옷 두 개가 딱 내 스타일이다.

일사천리로 결제가 이뤄졌다.


며칠 뒤 배송된 잠옷은 그야말로 소녀스러웠다.

나이에 걸맞지 않는다고 느낄 만큼. 

그래서  마음에 들었다.

놀라우리만치 툭! 튀어나오진 않아 다행이지만 아쉽게도 두 파자마 모두 무릎이 나온다.

그래도 무채색 계열의 밋밋한 홈웨어보다 약간의 과한 소녀스러운 잠옷이 괜스레 기분을 좋게 한다.


드레스룸에 나란히 걸린 옷들은 몸에 걸쳐지는 날보다 옷걸이에 매달려있는 날이 더 많다.

같은 방향으로 줄지어 있다가 아주 잠깐의 외출 시 내 몸에 걸쳐져 동행할 뿐이다.

그런데 희한하게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외출복을 사는관심이 집중된다.

줄지어  옷들의 어깨부옇게 먼지가 쌓일 만큼 더디게 외출을 하는데 말이다.

이제는 고이 모셔놓는 옷이 아니라 나와 살림을 함께 할 옷을 고르고 싶어진다.


은 내게 거처이자 다채로운 작업 공간이라는 생각을 한다.

잘 다려진 셔츠, 실키한 블라우스, 세련된 핏의 와이드 팬츠, 정제된 쉐입의 외투는 필요치 않다.

다소 후줄근해 보일지 몰라도 유려하게 튀어나온 바지의 무릎선, 수채화의 뿌리기 기법처럼 반찬 국물이 여기저기 튄 티셔츠가 내게는 자연스럽고 익숙하다.


내게 살림은,

집안 곳곳에 미치는 나의 마음과 손길로 ‘나를 표현하며 자신을 알아가는 근사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그 작업을 하는 내내 내가 좋아하는 취향의 옷을 입고 나만의 루틴으로 움직인다.

나라는 사람이 특별해지는 순간 내가 걸친 옷의 화려함은 그다지 중요치 않다.

자연스럽고 편안한 것이 가장 특별하고 예쁜, 그런 옷을 걸치고 나는 오늘도 살림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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