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 01
글 하나 올리는 게 쉽지 않은 삶이네요 ^^
그래도 계속 올려볼까 합니다.
2010년 6월 29일 화요일 [갓, 데뷔]
자대에 배치받았다. 아직 확실히 어느 소대가 될지 확실치 않지만 그래도 배치받았다. 가는 날이 장날인지 오늘 체육대회 날이다. 어제 생활관을 잠깐 경험한 느낌은 이제 그야말로 100%의 남성 사회에 진입했다는 것이다. 마음 맞는 누군가 있길. 그리고 내가 멋있는 사람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오늘 꿈에는 밖에 나갔다가 선임한테 시간을 재촉당하는 꿈을 꿨다. 아는 사람들을 만나 좀 더 놀고 싶었던 꿈이었는데. * 새벽 5시 50분에 깨었다. 어쩐지 긴장된다. 이 글을 쓰기도 눈치 보인다. 형용사, 부사, 많은 비유들을 쓰고 싶은데 신문처럼 쓰게 된다. 긴장감을 주는 ‘사실’들이 가득하다.
* 하계 기상시간 06시.
2010년 7월 2일 금요일 [종교인과 예술인의 차이]
여기 와서 읽은 책 중에 ‘종교인’이란 단어를 봤는데 어쩐지 그 단어가 나의 어떤 면을 표현하는 듯했다. 뭔가 종교적인 사람들과 예술적인 사람들끼리는 통하는 구석이 있다. 그들은 강압적으로 하게 되는 걸 싫어한다. 단, 종교인들은 강압적이지 않는 한 알아서 금욕적이다. 예술가적인 이들은 강압적이면서도 금욕적인 게 싫은 거고. 군대의 ‘강압적’이고 ‘금욕적’인 측면에 대해 두 유형은 다르게 반응하고 또 같게 반응한다. 내 안의 ‘종교인’과 ‘예술인’이 서로 웃었다가, ‘어 알고 보니, 다르네.’ 하며 헤어지기를 반복한다. 내 안의 ‘군인’이 쟤네들 왜 저래, 하면서 그들을 바라본다.
2010년 7월 3일 토요일 [전화 풍경]
1. * 콜렉트콜을 건다. 쌀쌀해 보이는 상대의 목소리가 긴장된다.
2. ‘무서운’ 선임이 부모님과의 전화에서는 ‘다정하고 신뢰감 있는’ 아들의 모습을 보인다. 두 가지 모습처럼 보이지만 하나의 부분이 다른 측면으로 보이는 것 같다.
2010년 7월 4일 일요일 [엇갈리는 두 친구]
* 천주교 미사를 드리러 와 봤다. 교회 건물을 천주교 쪽에서 빌려 쓰는 듯하다. 미사를 드리기 전에는 예수가 없는 십자가가 걸려 있었다가, 미사 준비와 함께 예수가 매달린 십자가가 걸린다. 하나의 뿌리를 가지고 나뉜 두 종교의 역사처럼. 하나의 건물을 공유하고서는 서로의 상징물을 치운다. 그 와중에도 최후의 만찬을 새긴 장식물 속에서 예수님은 변함없이 앉아계신다. 많이 닮고 조금 다르지만 결정적인 면에서 어긋난 두 친구가 서로를 날카롭게 의식하며 지나쳐 간다.
2010년 7월 4일 일요일 [뜨거운 형제들을 보는 뜨거운 군인들]
일밤 「뜨거운 형제」들을 본다. 나이를 통한 상하 계급. 남성들의 모임. 그 속에서 나오는 건 군대식 개그다. 탐구해 볼만하다. 생활관의 군인들이 재밌게 보는 눈빛이 느껴진다.
2010년 7월 5일 월요일 [미안, 성진아]
또 다른 사람 물건을 내 것인 줄 알고 챙기는 버릇이 나왔다. 전투모를 찾느라 곤란을 겪은 성진이에게 미안하다.
2010년 7월 8일 목요일 [주종목 변경]
육체 생활이 주가 되는 삶은 정말, 처음이다. 아마, 아주 어릴 때도 움직이기 보다는 앉아있는 것을 더 좋아하거나, 냉정히 말하자면 그게 편한 아이였을 것이다. 살면서 이런 생활리듬을 처음 겪고, 게다가 썩 잘하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다 보니 정신적으로 힘들다.
2010년 7월 9일 금요일 [공부가 젤 좋았어요]
시간이 빠듯하다. 이제야 왜 저녁에 사람들이 야식을 하는 지 알겠다. 곱게 살긴 곱게 살았나 보다. 어릴 때도,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어린 나도, 노동이 주가 되고 여가가 적은 삶이 잘 이해가 안 갔다. 아니지, 학교를 잘 다닌 걸 생각해보면, 좀 더 정확히는 ‘노동’이 주고, ‘공부’가 부가적인 삶이 잘 감이 안 잡혔다. 그냥 공부를 많이 하고 싶었다. 어른들은 공부를 하고 싶어도, 바빠서 공부를 못한다. 정말 밥 먹는 것 빼고는 간식 먹기도 쉽지 않은 날들이니까. 아, 그냥 생각을 바꿀까. 일도 공부라면, 내가 좋아하는 공부라면, 어, 그러면 괜찮네. 그렇다면 좀 바빠도, 배가 고파서 야식을 하게 돼도. 흑. 어둡게 쓰려고 했는데.
2010년 7월 10일 토요일 [여동생을 지켜라]
예쁜 여동생이 있는 성진이 주위를 선임들이 배회한다. 내가 봐도 예쁘고 매력적이다. 선을 넘는 이야기는 오가지 않지만, 처음에는 여동생에 관련된 대화를 하다가, 여자 친구 이야기로 넘어가서, 야동 얘기로 주제가 바뀌기도 하니, 야한 얘기의 시발점에 자신의 여동생이 있다는 게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닐 게다. 아마 성진이는, 어디까지 웃어줘야 할까, 고민하고 있을 것 같다.
2010년 7월 10일 토요일 [첫 외박 - 어머니의 낮잠]
- 쎄라토. PM 03 :29
외박으로 춘천을 간다. 차 뒷좌석에서 어머니가 잠을 주무신다. 아들을 보니, 좀 긴장감이 풀리셨나 보다. 어머니의 멍한 낮잠을 보고 있자니 세상의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일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 입을 헤 벌리고 주무시는 어머니가 정겹고 조금 안쓰럽다. 나도 눈을 좀 붙여야겠다.
2010년 7월 11일 일요일 [첫 외박 - 왜 이리 잘해주세요]
-찜질방. AM 08:47
춘천 롯데마트에서, 아줌마에서 할머니로 가고 계신 두 분을 만났다. 어머니가 싸오신 음식으로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 우리 뒤편에 앉아 계시던 두 분은, 내가 군생활을 하고 있다는 걸 알자, ‘강원도 좋아요.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얘기해주셨다. 친절한 말들. 시원한 밤공기. 대형마트 앞의 정결함이 함께 어울려 자리 잡은 시간 속에서 생각해 보니, 어제 만난 춘천의 사람들은 하나 같이 친절했다. 이등병 모자를 달고 있어서, 측은하고 응원하고픈 마음에 더 그랬는지 몰라도 명동 찾아가는 길, 사우나 찾아가는 길, 서점 직원 분들 모두 잘해주셨다. 왜 이렇게 다들 하나 같이 내게 잘해주지 싶었는데, 그냥 고마운 행동들 하나하나 받아먹었다. 정말 유별나게 다른 사람들의 친절이 넘치는 날이었다.
2010년 7월 11일 일요일 [둘째 날-언제나 그랬듯이]
약사 동준이한테 전화를 했다. 부모님이 걱정하실 듯해서, 부모님 모르시게 필요한 약들을 동준이에게 말했다. 그냥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동준이가 여전히 글을 쓰고 있냐고 물었다. 쓰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군대 가서 변하지 않을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다. 왠지 기분이 좋았다. 나의 어떤 부분은 여전한 가 보다. 그런 얘기를 듣곤 하니까. 말 잘하고 재치 있는 모습, 보이고 싶을 때, 그런 순간 뭔가 날 속이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어떤 사람들은 내 행동이 아니라 내 본질 중의 어떤 부분을 보는 것 같다.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게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이왕이면 변치 않는 모습으로, 그 사람들의 신뢰를 헤치고 싶지 않다. * 나의 하얀 시계는 까맣게 타 버린 팔에 걸려있다. 동준이에게 * 무좀약도 넣어달라고 해야겠다. 하하.
* 당시 하얀 전자시계를 차고 있었다. 흔히들 끼고 다니는 군인들이 쓸법한 군용 시계를 끼고 싶지 않아서였고, 전역할 때 까지 이 시계를 지킨다고 생각했었다. 이 시계는 결국 부러졌고, 나는 군인으로서, 군인들이 쓸법한 군용 시계를 차고 다녔다.
* 내가 발 관리를 잘못한 이유로 전역 후에도 무좀이 있었다. 2012년 4월 27일이 되니 그래도 많이 없어져다.
2010년 7월 13일 화요일 [乙은 만회하려 한다]
행군을 하다 ‘촤르륵’ 미끄러졌다. 탄지게 프레임이 머리를 꽝 친 것 같긴 한데, 그래도 멀쩡한 척하려고 ‘괜찮습니다.’라고 했다. 진짜 괜찮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쁘진 않았다. 형. 무리하는 거 아니에요, 하는 얘기들이 들리지만 그래도, 그래도. 오늘 포다리도 잘 못 설치했으니, 이거라도. 신병교육대에서도 행군은 잘 했으니. 그래도, 그래도-.
2010년 7월 13일 화요일 [너흰 왜 노니?]
예능 프로그램, 「얼짱시대 3」를 봄 선임의 한마디.
“우리는 행군하고 왔는데, 저것들이.”
3D 노동자들 특유의 멘트가 반복되어 들린다.
2010년 7월 13일 화요일 [눈물증폭기]
김장철 병장님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어찌하다 보니 연애 이야기가 나왔다.
헤어지자 말해 놓고 울었던 순간.
헤어지고 나서 나도 참 많이 울어댔지. 눈물 흘리고 싶어서 양파로 눈을 비볐다는 이야기에 그만, 그가 정겹게 느껴졌다. 이왕이면 잘 지내고, 더 그를 ‘알고 싶다.’
2010년 7월 14일 수요일 [* 자살한다는 흔한 말]
겨냥대가 잘 박히는 가 싶었더니, * 포수 역할에서 막혔다. 수평수포를 ‘학학’거리면서 처음에 고정시키는데, 잘 되지 않았다.
불침번 때는 환복 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 늦게 나갔고, 팔에 쥐가 나서 잠을 잘 자지 못했다.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이 또 머릿속에 가득 찼다. 오늘 아침 주특기 교육을 나가러 가는 길에, 나보다 9개월가량 선임이 자살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 나만 그런 건 아니군, 하고 견디려 하지만 생각보단, 생각보단, 쉽지 않다.
* 하나의 박격포를 운용하기 위해서 몇 명의 역할이 필요하다. 야구의 포수와 같은 뜻은 아니지만 포 운용을 전반적으로 관리하는 역할.
* 이런 거다. 진짜 자살하겠다, 가 아니라, 자살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생겨나는 걸 바라보는 거다.
2010년 7월 16일 금요일 [써니의 효과]
차수현 이병님에게 * 써니 사진을 받았다. 관물대에 붙여 두었는데, 아무런 표정 없던 관물대가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밝은 기운을 주는 느낌이다. 역시 써니는 짱인가. 이것은 참인 명제로다, 재확인한다. 써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좋다. 그러고 보니 밖에서와 달리 써니 좋아하는 이들을 너무 쉽게 본다. 써니가 인기가 높아져서 그런 건지, 아님 내가 만나는 사람들 맥이 같은 건지.
*모두가 아는 그 써니.
2010년 7월 16일 금요일 [좀 더 야한 얘기 컴 온]
차수현 이병님이 입담이 너무 좋아서 막 웃었다. 속사포 야한 얘기, 얼마나 기다렸던가. 밖에서 연예계 관련 일을 했다고 하는데 군대 안에서 느끼는 외로움이 쉽지만은 않으리라.
2010년 7월 18일 일요일 [닫힌 곳]
1. 입소 이후 2 달이다. 왜 이렇게 군대에서는 쉽게 이야기가 돌까, 하고 궁금해했었는데, 「똑똑한 놈은 웃으면서 간다」란 책을 읽다가 아주 간단히 답을 얻었다.
‘군대는 폐쇄적인 공간이다.’
사회에서라면 어떤 집단에서 생긴 일이 그저 밖으로 흘려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희석될 수도 있다. 외부로부터 흘러들어오는 이야기도 많으니까. 그런데 이곳에선 외부에서 유입되는 이야깃거리가 별로 없다. 보급품처럼 이야기 소재도 ‘안’에서 공급되고 ‘안’에서 계속 머문다. 그러다 보니 한 사람의 잘못은 희석되기 보단 점점 진해져 간다. 사방이 둑으로 막힌 강물에 떨어진 잉크 한 방울은 시간이 흘러도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폐쇄적’이란 말의 의미를 이제야 알겠다.
2. 마음가짐이란 것도 ‘폐쇄적’이 되면 별 것 아닌 일들이 마음의 수면에서 부유하고 있게 된다. 둑을 허물어서 새로운 물이 유입되게 해야겠다. ‘개방적’이란 말의 뜻도 좀 알겠다.
2010년 7월 18일 일요일 [PX의 노예]
PX에서 다들 정말 많이 사 먹는다. 다들 돈이 어디서 나오는 건지 잘 모르겠다. 월급으로는 각이 안 나오는 것 같은데, 집에서 따로 돈을 타는 건지 궁금하다. 분위기라는 게 중요해서 나도 어느 정도 사 먹긴 해야겠다만, 그래도 과자 사 먹는 데 돈 쓰는 게 좀 아깝다. 나이 많은 게 이럴 때 티가 난다. 돈 잘 모은 뒤, 밖에 나가서 DVD 플레이어라든지, 옷 같은 것을 사고 싶은데.
2010년 [긴장해서, 이기적인]
* FTX가 오늘 새벽이었다. 지난번에 느꼈던 긴장감 보다는 덜 했지만 여전히 ‘얼타고’ ‘멍 때리고’ 실수했다. 특히 어젯밤부터는 거의 공황 상태였는데, 시간은 없고 준비는 안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식은땀이 났다. 잠도 계속 설쳤다. 불침번 근무까지 겹쳐서 선임보다 늦게 환복 해서는 안 된다는 긴장감 때문에 몇 번이고 잠이 깼다. 그런데, 오늘 FTX는 생각보다 싱거웠다. 검사도 엄격하지 않은 날이었다. 굳이 그렇게까지 긴장할 필요가 없었다. 쓸데없는 긴장감에 쫓겨 내 일만 하느라 청소시간, 생활관 청소를 ‘안’ 했다. 점수가 많이 깎인 어제였다.
* FTX : field training exercise의 준말이다. 야외 기동에 대비한 훈련으로, 윙, 하는 사이렌 소리와 함께 다들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영화 「우주전쟁」에서 트라이포드의 ‘위잉’하는 소리가 연상된다.
2010년 7월 19일 월요일 [내게 시간을 주오]
피곤한 날. 불침번 때 행여 늦게 일어날까 너무 신경 쓰고 잠을 계속 설쳐서인지 하루 종일 피곤했다. 중간중간 얼마나 자고 싶었는지. 주말의 여유와 다른 날이 오자 금방 우울해지고 긴장감에 당황해한다. 좀 더 주말이 많았으면 좋겠다. 시간이 많았으면 좋겠다.
2010년 7월 20일 화요일 [이 남자, 멋있잖아.]
야간 훈련 중에 김종범 일병님이 *포다리를 들고 올라가다 미끄러지셨다. ‘미끄러지니까 정신이 번쩍 들고 좋네.’ 내가 예전 행군 때 미끄러지고 벌떡 일어서서 느꼈던 그 감정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팔꿈치에 피가 살짝 났는데, 피가 나서 시원하다 했다. 그 말도 멋있었다.
*포다리 : 81mm 박격포에서 가장 들기 싫은 장비를 꼽으라면 난 포다리를 들겠다. 무게는 18kg. 고민할 것 없이 욕으로 무게를 외웠던 기억이 난다. 들어보면 바로 욕 나온다.
2010년 7월 21일 수요일 [내게 공간을 주오]
관물대 하나를 두 명이서 같이 쓴다. 나나 성진이나 둘 다 정리가 잘 안 되는 사람들이다 보니 물건이 이리저리 섞이고, 좀 짜증이 난다. 관물대 여는 면에 써니, 설리 사진을 붙여 놓았는데, 관물대를 ‘내 것’처럼 만들었다는 것이 좀 마음에 걸린다. 성진이는 별 생각 없는 것 같긴 하다만. 내 관물대가 생겨서 내가 무언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성진이한테 미안하다. 한 편 짜증 나고. 둘이서 같은 공간을 쓰는 사실이. 이기적이다, 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2010년 7월 26일 월요일 [열심히 하지 말고, 잘 하라니까]
“열심히 하는 건 보여, 근데 성과가 안 나와.”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