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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라니 Jul 14. 2021

라면광고에 굳이 손흥민이 나온 이유

라면 광고톺아보기


저는 광고를 흡인(吸人)이라고 배웠습니다. 카피로 컨셉으로 사람을 흡입할 정도로, 몰입시키라는 것이었죠. 스토리를 충실하게 만듭니다. 공감을 살리고, 감동 코드를 집어넣어 몰입을 시킵니다. 과거의 광고는 그래서 감동적인 코드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시대가 변했습니다. 뻔한 감동은 오히려 식상함을 불러일으킵니다. 많은 광고도 시대의 흐름에 맞게 변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광고도 있습니다. 시대의 변화에 느린 광고, 라면 광고입니다.






국내 라면 광고의 특징은 타겟을 많이 의식합니다. 대신 라면은 어떤 광고를 해도, 논란만 없다면 어느 정도 팔립니다. 라면 소비량 세계 1위, 안정적인 소비층을 가진 시장이기에, 자리만 좁 잡혔다면 과한 도전을 하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과감한 크리에이티브를 실행하는 것보다 안정적인 인지를 하는 데에 주력합니다.


라면은 역시 신라면이지 (농심, 2020)


작년 신라면 광고에는 손흥민이 나왔습니다. 예전에는 박지성과 차두리도 나왔었고, 이외에도 하정우나 송강호도 신라면에 나왔었죠. 신라면은 매해 당대의 누구나 아는 스포츠스타나 영화배우를 기용합니다. 이는 TV에 의한 구매 의사결정의 영향이 큰 세대인 장년층을 의식한 광고인 것입니다. 이들이 가진 유명세와 호감을 브랜드에 동화시키기 위함입니다.


맛깔나게 땡긴다. (농심, 2021)


국내 라면 광고의 절대적인 클리셰는 이처럼 빅모델이 해당 제품을 맛있게 먹는 모습이 꼭 나옵니다. 유재석도 백종원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근데 이게 단지 식욕을 자극하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브랜드와 친하지 않은 소비자까지 포용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전략이기 때문입니다.


특정 브랜드 광고에 유명인이 출연하여 이를 먹고 있을 때에, 대중들은 어떻게 반응할까요? 광고라고 건너뛰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전에 사람들은 이게 어떤 브랜드인지 판단을 내리게 됩니다.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말입니다. 



균형이론의 설명


 이것을 균형이론(Balance Theory)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재밌는 점은 이 판단 과정에서 브랜드에 관한 정보들은 한 방향으로 균형을 맞추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광고에 나온 브랜드가 생소하거나, 맛이 없다는 정보가 있었어도 '호감형 광고모델'이 나온다면 뇌리에서는 호감과 비호감의 생각의 균형을 맞추려고 합니다. 


모델이 맛있게 해당 라면을 먹는 모습은 설득의 작업이고, 이는 자연스럽게 유명인의 호감에 따라 브랜드에도 호감이 생기게 되는 것이죠.


전국에「라면 쇼크」「공업용 우지」사용, 온 국민 개탄, 식품 살인 - 조선일보 1면 (1989.11.05)


사실 유명인의 라면 광고는 오래전부터 해왔지만, 1989년 있었던 '우지파동'은 이런 유명인 기용을 더욱 공고하게 만듭니다. 라면에 들어가는 우지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인식이 생긴 것입니다. 이 때문에 라면 회사들은 장년층에게 이런 인식을 해명하려 부단히 노력합니다. 


가족처럼 진한 라면 (오뚜기, 1997)


맛에 대한 어필보다 기존에 계속하던 가족에 대한 어필을 이어갑니다. 엄마나 아빠를 연상시키는 중년층 유명 배우를 모델은 계속 쓰게 됩니다. 라면을 살지 말지 결정하는 것은 엄마나 아빠니까요. 80년대 말부터, 90년대 후반까지의 라면 광고는 이처럼 가족 코드가 많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한동안 라면 광고가 비슷해 보이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마냥 유명인에 기대는 광고에서 이제 조금씩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유명인이 주는 기대효과가 큰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시대는 광고를 팔게 만드는 것이 모델이 아니라 크리에이티브에 무게가 기울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 닛신사의 인기 제품인 돈베이 우동 광고입니다. 보통의 라면 광고와는 다르게 먹는 씬이 2-3초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이 광고는 빠른 전개로 몰입감이 있습니다. 흑백의 색조와 사극톤으로 보는 맛은 덤이죠.


그러다 급조한 것 같은 결말이 나옵니다. 결말은 돈베 컵누들. 사극으로 길게 빌드업해놓고, 결말은 돈베입니다. 허무한 것 같지만, 오히려 그 허무함이 더 강한 인상이 남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광고 내내 돈베상이라고 외치면서 브랜드 인지를 시도하였기에 충실히 역할을 수행한 광고라고 생각됩니다.


어떻게 보면 '저세상급 크리에이티브'일 정도이지만, 배울 점이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라면은 수요도 많은 제품입니다. 그래서 TV광고 또한 과감한 시도를 하지 않아도 중간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TV에서 이런 공격적인 시도를 한 것에 큰 의미가 있다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제품의 스펙이나 모델에 기대지 않고, 오직 크리에이티브로 승부한 것을 높게 사고 싶습니다. 그것이 어쩌면 광고가 가야 할 길이 아닐까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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