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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라니 Sep 12. 2022

직장인은 적성에 맞지 않아.

소진(消盡)되는 것들에 대하여.


소진이라는 단어를 많이 들어봤을 거야. 사람 이름 같기도 하지만, 한자로 보면 좀 뜻이 세게 들려.

사라질 소에, 다할 진. 소멸할 때에 쓰는 소에, 기진맥진하다에 진이야.

근데 여기서 다할 진은 보통 '끝'을 의미해.

결국 소진은 무언가를 사라질 정도로 다한다는 뜻인 거야.


소진은 영어의 번아웃(Burn out)과 뜻이 통하지 않을까 싶어.

애당초 사전에서도 번아웃을 뭔가 불타다 꺼진 상태라고 정의 내렸어.

다 타고 아무것도 없어져버린 상태도 소진과 같은 상태일 테니까 말이야.


회사에서도 소진되어 닳아 없어질 때까지 일을 하는 경우가 많이 보게 돼.

200시간 근무하는 이, 갑질당하는 이, 따돌림당하는 이, 박봉을 박봉이라고 못하는 이...

그럼에도 신체적, 정신적으로의 체력으로서의 소진을 강요받고,

정작 소진될 때쯤이면, 충전이 아니라 대체되어 폐기되는 수순을 너무 많이 보았어.


이렇게 사람이 닳고 사라지는 광경을 보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직장인이라는 게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건 내가 이 광경에 이골이 나서, 질려버린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 위에 소진되는 것을 별 것도 아닌 일을 버티지 못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이들의 생각에 넌더리가 난 것일 수도 있어.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살아남는 것이 직장이니, 나는 직장인이 적성에 맞지 않는 것일 수도 있지.





많은 사람들이 번아웃되는 것을 가볍게 생각하는 것 같아.

마치 나에게 극심한 피로가 찾아온 것이고, 며칠 좀 쉬면 낫는 게 번아웃인 것으로 여기는 거지.

실은 그렇지 않아. 나무에 생긴 옹이처럼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는 것 같다고 표현하는 게 적확할 것 같아.


어느 드라마에서 주연을 돕는 인물이 암을 진단받은 장면이 나오는데, 많은 생각이 들었어.

너무 과격한 설정이 아닌가 싶으면서도, 저렇게 일해대는데 몸이 버티기 힘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그랬어. 



"00씨가 자기관리를 잘못해서 그런거지. 안그래."

라고 당연하다는 듯이 내뱉은 어느 상사의 말이 아직도 무섭게 기억해.



불행하게도 사회가 개인에게 번아웃을 강요하는 사회야. 

경쟁과 성장이라는 가면으로, 도태와 탈락이라는 단어로 개인을 협박하는 것이지.

그래놓고 번아웃 이후부터는 온전히 개인의 책임으로 만들어. 


결국 스스로를 더 단단히 지킬 수밖에 없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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