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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라니 Oct 17. 2021

기억의 관성

일상 에세이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 최영미, <선운사에서>





내가 제대하고 복학했을 때, 한 교수님의 부음을 들었다. 내가 복수전공을 하던 광고홍보학의 교수님이었다. 보통 타과 학생은 이름을 잘 기억 못하는 교수님도 많은데, 그 교수님은 그렇지 않았다. 내 이름 석 자를 기억하시고는, 수업마다 내 이름을 호명하며 질문을 던지셨던 분이셨다.


내가 군에 있을 때, 돌아가셨는데, 2년이 지나서야 동료교수님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동료교수님은 그 분과 막역한 사이였다. 번갈아가며 학과의 중차대한 일을 감당하셨는데, 매일 밥을 먹고, 이야기를 하는 사이셨다. 

두 분은 직장 동료였고, 일상의 친구였고, 막역한 전우였다.


"보고 싶지 않으세요?"라는 질문에

"아직도 꿈에 나와"라는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기억의 관성은 함께했던 시간과 정비례한다. 그리고 그 관성은 꿈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누군가가 나오는 꿈이라는 게 결국은 같이 있는 시간의 양과 지금 공백의 괴리가 합쳐져 만들어낸다는 것을 그렇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시간에 상응하는 기억을 이고 산다는 일은 매우 힘들다는 것도 잘 알게 되었다.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다는 시구는 그런 진리를 잘 담아낸 말 같았다.


그냥 옆에 있으면서, 매일 같이 밥을 먹고, 이야기를 하던 사이가 얼마나 큰 자리인지 빈 자리가 되고나서야 실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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