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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라니 Sep 07. 2021

평양의 평양냉면 이야기

100년 전 평양냉면과 비교하기


오늘은 비가 옵니다. 날이 축축하니 술이 생각이 납니다. 퇴근을 하고 한잔 하고 싶은데, 무엇이 좋을까 고민합니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거나하게 마실 사람도, 시간도 허락지 못합니다. 그래도 술잔까지는 빼앗아가지는 않으니 참 다행입니다.


빠르게 음주의 욕구를 해결할 수 있는 건 혼술입니다. 일사천리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혼술을 하게 될 때에는 자연스레 메뉴의 선택지도 줄어듭니다. 불편한 것이 아니라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줄어들어 좋습니다. 그렇게 될 때 저는 높은 확률로 평양냉면을 고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은 평양냉면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평양냉면에 대해서 깊이 알지는 못해도, 서울의 웬만한 평냉집은 다 가본 것 같습니다. 소위 평양냉면 4대 천왕도 다 가보았고, 북한 식당에서도 직접 냉면을 먹어보았으니 오늘 이렇게 냉면에 관한 글을 적을 만한 지식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평양냉면에 대해서 말이 많습니다. 양념(다대기의 순화 표현)을 쳐야 한다, 밍숭밍숭한 고유의 맛으로 먹는 것이다 등등 나름의 기호가 정석으로 내세우는 희한한 음식입니다. 음식의 지역적 희소성이 나타나며, 마치 '예송논쟁'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평양냉면을 어떻게 먹든 자기가 맛있으면 됩니다. 다만 옛날에는 평양냉면을 어떻게 먹었을지 궁금하게 되어, 자료를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관련 기사가 많았습니다.


평양의 명물 냉면 값 올라 - 동아일보(1935.1.25 기사 발췌)


100년 전 평양냉면은 지금보다 더 높은 위상을 가졌습니다. 오죽했으면 위의 기사처럼 평양의 냉면 값이 올랐다고 일간지에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참고로 기사에서는 13전으로 내린 평양냉면 값이 다시 15 전이되었다고 적혀있습니다. 그 가치가 어느 정도인가 하면, 1원이 지금의 12,300원 정도의 가치였다고 합니다.(1원=100전) 당시 덕수궁 어른 입장료가 10전이었고, 개성 설렁탕은 10전(1937년)이었다고 합니다. 저렴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당시 5전에서 20전으로 하루를 사는 이들이 많았을 만큼 넉넉지 않은 시대임을 고려해야 합니다.


평양에 있다가 남쪽으로 내려온 '부산안면옥'의 냉면


지금 서울의 평냉 4대천왕처럼, 당시 평양에서도 명물냉면집이라고 하는 냉면집이 있었습니다. 당시 평양에는 대성면옥, 수면옥, 조선면옥, 형제먄옥, 안면옥 등이 이름을 떨친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 중에서 안면옥은 남한으로 내려와 현재 부산안면옥이라는 이름으로 대구에 있습니다.



평양인상 (9) 요리비판 평양냉면 - 동아일보 (1926.8.21 기사 발췌) 


1926년 기사에는 평양냉면에 대한 이야기가 소상히 적혀있습니다. 들어가는 재료나, 사람들의 인식, 먹는 방식 등등이 나타나 있는 것이죠.


냉면이란 어디것, 어디것 합니다마는
평양냉면같이 고명한 것이 없습니다.

실로 말뿐이 아니라, 유명하도록 되었습니다.
이곳 냉면은 첫째 국수가 좋고,
둘째 고기가 많고, 세째 양념을 잘합니다...

서울서는 제 아무리 잘 만드는 국수라도 
밀가루를 섞습니다마는
이곳에서는 순전한 메밀로만 만들며
 
고기를 쇠고기 돼지고기등을
서울보다 갑절식이나 넣는 모양인데,
평양육(平壤肉)이란 얼마나 맛있는 것이라는 것은
형도 익히 아시는 바이라 누누이 말하지 않겠습니다...



백년이 다 되어가는 이 기사에서 나오는 평냉의 특징은 분명합니다. 메밀로만 국수를 만들고, 고기를 많이 넣는 식입니다. 다만 지금에는 없는 차이점이라면 평양육이 맛있기에 냉면이 맛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당시에는 평양의 고기를 알아주는 모양새였던 것으로 추측을 해봅니다.


또한 이 기사는 국물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덧붙입니다. 


이곳의 냉면은 여름이 체철이 아니랍니다.
원래는 겨울이 제철이랍니다.

 여름에는 고기국물에다가 국수를 마는터이나
 겨울에는 동치미 국에다가 말은다고 합니다.
 고기국물이라도 서울냉면 국물이란
맹물에 간장을 끼트린 것 같아서 한모금도 마실맛이 없건마는
 이곳 냉면국물이란 고기 삶어낸 국물을
그대로 차게해서 붓는 것이라 훌륭합니다...

그래도 이곳 사람들은
여름 냉면 국은 먹을맛이 업다고하며
겨울국은 참말 맛이 있느니라고 합니다!



국물의 이야기만 보면, 얼추 서울에 현존하는 평양냉면과 모습이 비슷해보입니다. 고기 삶어낸 국물의 맛은 지금도 육향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동감하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래옥의 그윽한 육향이 담긴 냉면이 생각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주목해야 할 부분은 동치미입니다. 우리가 익히 들었던 말인 "냉면은 겨울에 먹어야 제맛이지"의 본 듯은 김장으로 담근 동치미 국물로 맛을 낸 냉면을 먹을 수 있는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여름에는 특유의 시원한 동치미의 맛을 느낄 수 없기 때문에, 평양 사람들은 차선책으로 고기 육수를 택했던 것입니다.


동치미 국물로 낸 남포면옥


백석 시인도 국수라는 시에서 동치미 냉면의 맛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로 시작하고, '겨울밤 쩡하니 닉은 동티미국'이라 하며 칭찬을 이어갔습니다. 이제는 냉장기술이 잘 되었기에, 언제든 식당에서 먹을 수 있겠으나, 당시에는 진정 계절의 음식이었기에 반갑다고 표현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에서 위와 같은 동치미 냉면 맛을 찾으신다면, 을지로에 있는 남포면옥 정도가 괜찮을 듯싶습니다. 기존의 슴슴함과는 다른 새로운 맛을 경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소주와 고춧가루가 잘 어울리는 을지면옥의 냉면


"랭면에는 더운 소주를 마시고 먹기도 하며, 고초가루를 자연만히 쳐서 입이 얼얼해야 랭면을 먹은 것 같은데..." - (1931년 12월 06일 동아일보 기사)


아마도 100년전 기록으로 남은 평양냉면과 가장 비슷한 냉면은 위의 사진 속 냉면과 가장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시원하면서 칼칼한 뒷맛이 소주와 궁합이 잘 맞습니다. 선주후면이라는 말이 괜히 생긴게 아닌 것 같습니다. 


기록을 살펴보니, 과거 평양냉면은 하나의 정석만을 고집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계절에 맞게, 자신의 구미에 맞게 즐기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쓰다 보니 위의 기사 문구처럼 냉면 한 사발에 소주 한잔 마시고 싶습니다. 한 잔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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