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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라니 Sep 26. 2022

IMF 시대의 광고이야기

국난, 단군 이래의 최대 불황.

뉴스를 틀면 저 단어는 꼭 나왔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 사태였죠.

기업은 화의 아니면 부도였고, 어른들은 버티거나 아니면 잘리거나 극명한 갈림길에 놓여야만 했습니다.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광고도 그 대세를 따라가게 됩니다. 대기업들은 캠페인성 브랜드 광고를 통하여 국난을 극복하고자 하는 시대정신을 이야기했고, 소비재 광고들은 어려워진 대중의 주머니 사정에 맞는 광고를 꾸리게 됩니다.




#1


"할 수 있다는 믿음. 삼성" (삼성, 1998)


삼성은 손기정 옹의 일화를 바탕으로 광고를 구성하였습니다. 일제강점기, 식민지 치하라는 조국의 불운한 현실 속에서도 마라톤 1등을 기록한 일화는 당시에도 지금에도 누구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빗대어 외환 위기라는 어려운 현실을 이겨내보자라는 메시지였습니다.


누구나 알고 있다는 메시지는 뻔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누구에게나 다 전달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더욱이 무언가를 팔려고 하는 게 아닌 기업 PR을 위한 것이기에, 가급적 많은 이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그 목적입니다.


 "한국경제를 확신합니다"(현대증권, 1999)


삼성 광고처럼 현대증권도 IMF를 의식한 광고를 집행했습니다. 그런데 주장이 다소 강합니다. 한국 경제가 일본 기업 시총 하나만도 못해서야 되겠냐면서, 'BUY KOREA' 즉 우리 주식에 투자로 유도합니다. 지금에서야 보면 너무 억지 비교인 것 같지만, 당시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하면 납득될 수밖에 없는 광고인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 경제의 희망이 되겠습니다."(현대중공업, 2008)


IMF는 아니지만 IMF 10년 뒤에 찾아온 금융위기에서, 현대는 PR광고를 냈습니다. 자사의 명예회장이자, 한국 경제에 있어서 입지전적인 정주영 회장의 일화를 내세웠습니다. 특정 스토리를 가진 인물이 광고에 나오는 건 힘이 셉니다. 15초 출연에 말 몇 마디 하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드라마와 메시지가 결합되어 명료하게 전달될 수 있으니 말이죠. 그래서 PR광고는 브금도 좀 웅장하거나, 장엄하게 만들려고 노력한 흔적들이 많습니다.



위의 광고들처럼 이겨낼 것이다. 희망과 확신에 대한 이야기를 광고에서 많이 볼 수 있었던 시대였습니다. 불황임에도 구태여 PR 광고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기업 전략에 따라 취지가 다르겠으나, 제 생각에는 어려운 시기에도 건재함을 과시하고자 하는 것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향후에 직간접적으로 대중들에게 산하의 제품을 구매하고, 투자를 유도할 수 있는 데에 밑거름이 되는 것이죠.


이런 심리 때문에 어느 광고 서적에서는 '광고 투자가 많을수록 기업(사정) 이 어려울 수 있다'는 말도 있기도 합니다.



#2


IMF는 대중들의 삶이 어려운 시대였습니다. 구조조정으로 실직자들이 늘어나고, 재직자들 또한 '작고 소중한' 봉급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인지 광고는 위협적인 현실을 부각하고 경제성과 효율성에 대한 키워드를 집중적으로 부각시킵니다.


"린번, 현대만의 기술입니다." (현대차, 1998)


린번 엔진은 연료의 사용량을 줄여서, 소위 기름을 덜 먹는 차가 됩니다. 대신 기름을 덜 소모하는 만큼, 주행거리는 늘어나도 출력은 떨어지게 됩니다. 애당초 시장 상황을 고려해 만든 제품이지만, 광고에서는 기능보다는 현실에 더 주안점을 둡니다. 경제 위기와 기름값 인상이라는 뉴스 멘트들을 위협소구로 잡고, 여기에 해결책으로 제품을 끼어놓으니 아귀가 맞습니다.


정상적인 시기라면 "싸구려"라는 딱지를 맞을 수 있겠으나, 역시 IMF라는 시기라는 특수성 때문에 속편 광고까지 제작되었습니다.


튼튼하기에 고객이 찾는 은행이 있습니다. (한미은행, 1999)


IMF는 은행 광고까지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90년대 은행 광고는 대개 믿음직하거나 풍요로운 일상을 보여주는 광고가 전반적이었습니다. 한미은행 광고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편안한 일상에서 나오는 말들은 팍팍한 현실임을 깨닫게 합니다. 현실을 말하면서 더 공격적으로 은행 어필을 하는 것이죠.


이렇게 위협소구를 비주얼이 아닌 멘트를 통해서 하는 경우가 많았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구태여 위기라고 보이지 않아도, 위기인 걸 다 체감하고 있는 시기였으니까요. 대신 위기라는 키워드 소구가 흔해서, 브랜드의 차별점이 좀 떨어진다는 점도 없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2의 건국 (공보실, 1998)


IMF처럼 지금 경기도 녹록지 않은 시기인 것 같습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의 광고는 아무도 위기라고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죠. 이전 글인 금연 광고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위협소구가 더 이상 먹히지 않는 시대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각자의 잘난 점, 장점만을 부각해도 승산이 있는 시대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왠지는 모르겠는데, 가끔은 위의 광고들처럼 90년대의 광고가 그립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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