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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라니 May 20. 2023

다시 보는 도도새의 이야기


도도새가 멸종한 것을 두고, 게으름의 결과라고 보는 시각이 많아. 원래 도도새는 날 수 있는 동물인데, 살고 있던 섬의 안락함으로 날 필요성을 못 느끼면서 날개가 퇴화되었다는 거지. 결국 날지 못해서 개척자였던  인간에 의해 멸종되었기 때문이래.


그런데 도도새의 입장에서 보면 나태는 누명에 가까워. 

도도새는 태어나길 인도양의 외딴섬에서만 있는 동물이야. 가장 가까운 대륙은 아프리카인데, 2000km 정도 떨어져 있고, 그나마 가까운 큰 섬인 마다가스카르도 약 1,200km의 망망대해를 건너야 해.


도도새 형상과 서식지였던 모리셔스 (사진 : 네이버 지식백과)


갈매기처럼 날렵한 몸집도 아니고, 칠면조만 한 체구인 도도새로써는 최소 1,200km의 바다의 거센 바람을 극복하기엔 태생적으로 무리인거지. 아마 날다가 얼마못가 해풍에 휩쓸려 바다로 추락할 수밖에 없는 형국인 것이지. 태어나길 바다 한가운데 외딴섬에 태어났으니, 환경에 맞게 진화를 택한 거야. 날개를 쓰지 않고 지상에 있는 열매를 먹는 것이 생존과 번식을 위한 적합한 선택이었지. 도도새 말고도 뉴질랜드의 키위새와 호주의 에뮤도 마찬가지로 생존을 위해 날개의 퇴화를 택한 사례야.


그런 도도새 앞에서 15세기 인간의 등장은 유례없는 천재지변이고, (가설이지만) 운석 앞의 공룡들과도 같은 상황이었을 거야. 무차별적으로 학살로 인한 도도새의 멸종은 나태의 말로라기보다는, 비명횡사라는 표현이 훨씬 적확해보여. 그럼에도 날개가 없어 인간에게 용이하게 죽었다는 논리는 교묘하게 인간의 잔혹성을 감추고, 훈시와 계도를 위해 임의로 편집한 이론이지 않을까 싶어. 


도도새의 시각에서 보니, 이런 '횡액'을 두고 게을러서 그랬다는 생각은 이치에 맞지 않는 소리였을 거야. 근데도 우린 가끔 이런 우를 범해. 사정들을 깊이 있게 보지 않거나, 보이는 대로 생각하는 것 말이지. 복잡하고 장황하고 지루하면 읽지 않으려고 외면하려는 게 본능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 효율의 시대라고 하니까 다 볼 수 있냐고 하면 달리 할 말이 없지만, 그럼에도 최소한의 생각의 끈은 놓지 말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저 눈에 보이는 대로 사실을 재단하지 않아야겠다는 말이지.




(p.s : 도도새의 이야기가 생각나게 된 건, 일을 하다가 우연히 작년 수해로 반지하에서 목숨을 잃은 사건이 떠올리면서였어. 댓글 중 혹자는 왜 그렇게 비가 많이 오는데 빨리 피하지 못했냐고 도리어 질책하는 시선이 잔인했고, 고통스럽게 다가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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