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700미터의 높이에 있는 이곳은 찬바람 덕분에 눈이 내리면 잘 녹지 않는 곳이다. 한번 눈이 쌓이면 그대로 있기 때문에 이곳엔 유명한 스키장이 모여있다. 겨울이 되면 달리 할 것이 없어 스키를 타는 것이 좋은데 요즘은 스키부츠를 신는 것도 힘들고 불편하다. 또 넘어져서 뼈라도 골절되면 다시 붙을 때까지 많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주변 지인들도 이제는 스키를 멀리하는 나이가 됐다. 체력적인 문제도 있지만 만에 하나 다치기라도 하면 뒷감당이 힘들기 때문에 포기를 한다. 스키를 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햇볕 좋은 이른 아침에 리프트를 타고 산꼭대기에 올라갈 때 상쾌함과 깨끗하게 정리된 눈길을 미끄러져 내려올 때 그 맛은 말할 수 없이 좋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이런저런 문제로 많은 것들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러니 나이 들어 산다는 건 제한적인 삶이 되길 마련이다. 그건 다소 우울한 삶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쩌랴? 우리 선배가 그랬고 우리가 그렇고 또 우리 후배들도 그렇게 살 것인데.
하지만 무슨 일에 예외가 있듯이 우리 삶에도 예외가 있기 마련이다. 평소에 자신을 잘 관리하면 나이와 상관없이 더 젊게 사용할 수 있다. 스키장에 가보면 80대 간혹이지만 90대에도 스키를 타시는 분들을 보게 된다.
보기에는불안한 마음이지만 신기 힘든 스키부츠를 신으시고 스키장에서 젊은이들과 어울리려는 생각만이라도 존경스럽다. 나도 늘 스키부츠를 신을 때마다 내년이면 그만 탈까 하다가도 이런 선배분들을 보면 부지런히 체력관리 잘해서 몇 년은 더 타야겠구나 생각해 본다.
우리가 마음속에서 미리 포기하는 것과 아직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만용은 아니지만 도전하는 건 의미 있고 아름다운 일이다. 이건 나이 든 사람뿐 아니라 아니라 젊은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집안형편 때문에 많은 걸 포기하는 젊은이들도 있고 학벌이나 외모나 여러 가지 사항으로 미리 포기하고 사는 사람들도 참 많다.
한번 실패했는데 또 실패하면 어쩌나 하고 겁먹고 미리 포기하는 사람도 있고, 자기 자신을 비하하거나 못 믿어서 포기하는 사람도 많다. 안타까운 일이다. 특히 젊은 사람들에겐 더욱 안타깝다.
적어도 그들에게 내일이란 기회가 있는데ᆢ
십 년 전만 해도 난 스키는 타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몇 번의 수술을 받고서 친구의 권유로 바람 쐬는 기분으로 스키장에 놀러 왔다가 스키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브레이크를 잡을지도 회전을 할지도 모르고 다리에 힘이 없어 스키를 신고 오래 서 있는 것도 힘들어했다. 스키를 가리켜 주던 친구가 몆 시간을 나와 씨름하더니 스키는 포기하라고 하고 가버렸다. 그때 자존심 상한 건 말할 것도 없고 나 자신에게 얼마나 실망을 했는지 모른다. 다른 친구가 오십이 넘어 무슨 스키를 배우냐고 다른 운동이나 하자면서 위로를 했지만 그날 저녁 내내 우울했다.
다음날 친구들은 스키를 타러 모두 나가고 방에서 혼자 우두커니 있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스키장으로 갔다. 스키도구를 빌리고 초등학생들이 배우는 기초코스로 가서 그 아이들이 배우는 것을 곁눈질로 배우면서 하루종일 스키와 혼자 씨름했다. 점심때가 지나고 오후가 돼서야 초보자코스를 조심스럽게 타고 내려올 수가 있었다.
그렇게 스키는 내게 다가왔고 서로 길들여지면서 십 년이 지난 지금은 상급자코스도 무난히 탈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많이 넘어지기도 했지만 그 덕분에 스키에 대한 두려움도 적어졌다. 스키는 스피드 운동이라 늘 조심해야 하고 서툰 다른 사람이 와서 부딪칠 수도 있어서 주변사람도 봐가며 타야 한다. 아직은 스피드를 내지는 못 한다. 스피드를 안 내도 천천히 안전하게 탈 수 있는 것 만이라도 감사할 일이다.
친구 말대로 겨울이면 할 수 있고 기다려지는 운동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겨울이면 움츠리지 않고 밖에서 운동할 수 있게 되었으니 내 삶도 그만큼 폭 넓어진 건 아닐까?
이것 역시 도전했으니 얻어진 것이다.
십 년 전 포기 했으면 여전히 스키장 밖에서 스키 타고 내려오는 이들을 부럽게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세상엔 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 그러나 해 보지 않고 포기하다면 얻을 수 있는 기회조차 잃게 된다. 도전한다는 건 아름다운 일이지만 내 삶도 넓혀가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