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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울음뱅이 Jan 15. 2019

2019 아시안컵 키르기스스탄전을 보고

욕 먹기 딱 좋은 경기

아시안컵 조별리그 2차전 키르기스스탄전을 앞두고 예상한 선발 명단은 다음과 같았다.

1선 황의조
2선 황희찬/황인범/이청용
3선 정우영/주세종
4선 홍철/김영권/김민재/이용
골키퍼 김승규

두 명이 틀렸다. 주세종 대신 구자철. 벤투 감독은 구자철을 한 번 더 믿고 황인범을 3선에 배치했다. 필리핀전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 이청용이 부상당한 이재성 대신 나왔고, 부진했던 김진수의 자리는 홍철이 대신했다. 황인범이 주세종보다 공격적인 만큼, 나의 예상 라인업보다 더 공격적인 배치다. 대량 득점이 필요한 키르기스스탄을 상대로 나쁜 선택은 아니라고 봤다.

하지만 뚜껑을 열자 경기력은 필리핀 전보다 더 나빴다. 어이없는 패스 미스는 오히려 더 많았고, 패스 선택이 나빠 터치하자마자 뺏기는 순간이 연거푸 나왔다. 축구 내적으로는 물론이고, 축구 외적으로도 동기부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산만한 모습이었다. 기성용의 공백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김민재의 헤딩골이 없었다면 더 흔들렸을 것이다.

후반전은 경기력이 나아졌으나, 골 결정력이 모자라 90분이 끝날 때까지 경기를 마무리 짓지 못하고 오히려 끌려다니는 모양새였다. 결과적으로 이겼지만, 욕 먹기 딱 좋은 경기였다. 2승을 했지만 월드컵 멕시코전을 마친 후처럼 선수단 분위기는 가라앉고, 여론은 악화되었다. 선수들은 물론이고 벤투 감독에 대한 신뢰도 흔들리고 있다. 16강 진출을 앞두고도 중국전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기지 못하면 조 2위가 되어 16강 이후 대진이 꼬인다. 사실 대진보다도 중요한 건 팀 분위기일 텐데, 중국전을 이기지 못해 조 2위가 되면 팀 분위기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진다. 반드시 이겨야 한다.
부상당한 기성용에 이어 이용 역시 경고누적으로 중국전에 나올 수 없다. 이재성은 불투명하다. 두 경기 모두 풀타임 출전한 선수들의 체력도 걱정된다. 후반에 나와 흐름을 바꿔야 할 벤치 멤버들도 딱히 없다. 김진수는 부진했고, 지동원의 폼은 황의조에 한참 못 미치고, 이승우는 갑자기 뽑혀왔다. 여러모로 힘든 상황이다. 벤투 감독이 취임 후 맞은 첫 번째 위기다. 손흥민의 합류는 불행 중 다행이다. 경기를 뛰든 안 뛰든 분위기 쇄신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하지만 무리하게 선발 출전하지 않기를 바란다. 무리했다가 손흥민이 토너먼트 경기에 최상의 컨디션을 출전할 수 없다면, 중국을 이기지 못해 대진이 꼬이는 것보다 더 큰 마이너스다.

아래는 선수들에 대한 인상평이다.

김승규는 수비수들과의 호흡에 문제가 있어 보였다. 나올지 말지, 걷어낼지 패스할지 판단이 늦다. 선방 능력은 괜찮았지만 발밑은 불안불안하다.
김영권과 김민재는 필리핀전보다 더 나빴다. 특히 김영권은 두어 차례 치명적인 실수로 위기를 자초했다. 김민재 역시 패스를 여유있게 받지 못하고 조급해 보였다. 둘 다 상대의 공격은 효과적으로 막아냈지만 팀을 안정적으로 이끌지는 못했다. 김민재의 골이 부담을 털어줬으면 한다.
홍철은 김진수보다 크게 나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크로스는 위협적이었지만 그외 오프더볼 움직임, 빌드업 측면에서 팀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한 차례 슈팅은 날카로웠으나 더 나은 위치의 동료에게 연결하는 편이 더 확률을 높일 수 있었다. 왼쪽에 누굴 세울지 벤투 감독은 ‘결코 행복하지 않은 고민’에 빠질 것 같다.
이용은 늘 그랬듯 성실하고 무난했다. 이청용이 오른쪽 미드필더로 출전한 덕분인지 필리핀전에 비해 공 줄 곳이 많아 보였다. 몇 차례 좋은 전진 패스를 박스 안으로 넣었다. 공격진의 컨트롤이 좋았다면 어시스트로도 연결될 수 있었다. 그러나 경고 누적으로 3차전에 뛰지 못하게 되었다. 딱히 위험한 상황도 아니었는데. 역시 노련하지 못했다.

정우영은 기성용의 빈자리를 느끼게 했다. 키르기스스탄 정도의 압박에 당황하고 패스 미스를 한다면 국가대표 주전 미드필더 자리를 맡길 수 없다. 판단이 늦고, 그 늦은 판단 때문에 공을 뺏기거나 막힌 곳으로 패스를 했다. 정우영은 활동량과 수비력으로 승부하는 편이 나을 것 같은데. 언제부턴가 모든 중앙 미드필더가 기성용처럼 플레이하려 한다는 게 현재 대표팀 중원의 문제다. 박종우, 정우영, 한국영 등등..    
황인범은 이번 경기의 베스트 플레이어라고 생각한다. 역시 몇 차례 실수가 있었지만 항상 고개를 돌리며 공 줄 곳을 미리 봐뒀고 그 덕분에 패스 나가는 과정이 훨씬 매끄러웠다. 주세종 투입 후 2선에 배치되자 더 좋았다. 황인범으로서는 딱히 눈에 띄는 경쟁자가 없는 상황에서 이번 대회가 대표팀에 자리잡을 수 있는 기회다.

구자철은 원래 패스를 잘하는 선수였는데 왜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쉬운 패스는 번번히 끊겼고, 공을 잡으면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이 자주 나왔다. 전반전 초반에는 키르기스스탄의 2선, 3선이 우리 수비진과 3선을 압박하면서 구자철에게 공간이 많이 났는데 패스 미스를 범하면서 분위기를 갖고 오지 못했다. 두세 번의 중거리 슈팅은 좋았으나, 그게 전부였다.
이청용은 공격이나 수비나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았지만 결정적인 두 번의 실수를 저질렀다. 상대 골대 바로 앞에서 유효슈팅을 못 했고, 우리 골대 바로 앞에서 안일한 패스로 위기를 맞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영향력 또한 떨어졌다. 사실 선발 측면 미드필더로 뛰기에는 아쉬운 점이 있지만 다른 대안이 딱히 보이지 않는다.
황희찬은 패스 미스를 너무 많이 했다. 텅 빈 골대 안으로 공을 차 넣지 못한 장면 역시 패스 미스를 자주 하는 그의 평소 버릇과 관련이 있는 듯 보인다. 황희찬은 대표팀에 있으면 좋은 캐릭터라고 본다. 하지만 그가 주전의 한 자리를 차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게 아쉽다. 손흥민, 이재성(대회 이후에는 부상 복귀할 권창훈까지) 등이 돌아오고 황희찬은 조커 역할을 맡는 게 최선이다.

황의조는 불운했다. 두 번 중에 한 번은 들어갔으면 팀에게나 그에게나 좋았을 것이다. 공격진 중 유일하게 제몫을 충실히 했다. 아시안게임에서 그가 득점왕이 될 수 있었던 건 기회를 놓쳤다가도 그 경기에서 골을 넣음으로써 안 좋은 기억을 떨쳐버렸기 때문이다. 불운이 슬럼프로 이어지지 않길 바란다.

주세종은 2선으로 올라간 황인범 대신 정우영 옆에 섰다. 전반적으로 무난했으나 짧은 시간 동안 패스미스를 두어 번 범하는 등 안정적이지 못했다. 좀처럼 선발 명단에 들지 못하는 지금 상황에서 이런 모습으로는 벤투 감독의 신뢰를 얻기 힘들다. 기성용이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고, 정우영이 부진한 상황에서 그의 분발이 필요하다.
지동원은 평가할 만큼 충분히 경기에 관여하지 못했다. 시간이 짧기도 했지만, 분위기를 확 바꿔야 할 벤치 멤버로서 아쉽다.
 
중국전 희망 라인업은 다음과 같다.

1선 황의조
2선 지동원/황인범/이청용
3선 정우영/주세종
4선 홍철/김영권/김민재/김문환
골키퍼 김승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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