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연두가 된 이유
등장인물
나 : 서른 여섯, 엄마는 처음
균이 : '나'와 6년 연애하고 결혼한 지 3년 째. 역시 아빠는 처음
연두 : 앞니가 나기 시작한 토실토실 아기
연두 이야기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색은 연두색이다. 꽃들을 뒷받침해주는 색깔, 딱히 특성이랄 게 없는 느낌... 연두색은 내겐 딱 그 정도였다. 살면서 연두색에 관해 깊이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반면에 나는 밝고 쨍쨍하고 따끈한 색깔들을 좋아했다. 주황색, 오렌지색, 노을색, 빨간색... 그렇게 화려한 색들 말이다.
연두가 태어날 무렵은 봄이었다. 아이를 연두로 부르기로 마음먹고 둘러본 세상은 연두색 천지였다. 부레옥잠, 물에 떠다니는 푸른 잎사귀, 개울 산책로에서 슴슴한 얼굴로 얼기설기 자유분방하게 자라있는 초록초록한 풀들. 이제 연두색은 내게도 특별한 색이 됐다.
"그래, 연두라고 부르자." 결정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루시드 폴의 노래 '연두'였다. 이 노래를 들으면 연두색이 다르게 보인다. 이제 내게 연두색은 '튀려고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고 당당한 색깔'처럼 느껴진다. 우리 아이에게 화려하게 살지 않아도 된다고, 돋보이려고 무리하고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루시드폴 <연두>
연두색 꽃처럼 살고 싶다고 했을 때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지
'노을처럼 빨간 보름달처럼 노란 꽃으로 살아야 한다'고
세상이라는 숲에서
내 모습이 잘 보이진 않겠지만
난 연두색으로 피고 질 거야
수많은 나무 잎사귀와 다르지 않은 얼굴로
그렇게 그렇게
연두색 꽃처럼 살고 싶다고 했을 때
부모님은 고개를 저었지
'루비처럼 빨간 진주처럼
하얀 꽃으로 살아야 한다'고
세상이라는 숲에서 내 모습이
잘 보이진 않겠지만
난 연두색으로 피고 질 거야
수많은 나무 잎사귀와 다르지 않은 얼굴로
그렇게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