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원에선 하루가 단순해진다. 서너 시간마다 유축. 하루 세 번 식사와 간식 먹기. 오후 1시 반과 6시 반부턴 각각 1시간 반씩 모자동실 시간이다. 나는 연두를 껴안고, 어루만지고, 수유도 하다가 잔다.
어쩌다 보니 나는 거의 반평생 '시간이 아깝다'라는 감각을 느끼며 살아왔다. 공부하고, 운동하고, 일하고, 돈을 벌어야만 시간이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시간을 보내면서도 불편하지 않은 게 신기하다. 오히려 마음이 뿌듯함으로 충만하다.
지금 나는 연두를 위해 덩어리째 시간을 쏟아붓고 있다. 내 한계인 줄 알았던 선을 넘어 사랑이 뻗어나가고 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옛날처럼 나 자신만을 위해 모든 시간을 쓸 순 없겠지만, 연두의 조그마한 눈코입을 보면 '건강하고 행복한 아이로 기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뭐가 있겠어?' 싶어 진다.
그래도 몸은 노곤하다. 유축하고 하루 두세 번 젖을 물리는 것만으로도 지쳐서, 노트북으로 글을 쓰겠다는 계획은 틀어지고 저녁 9시쯤에 뉴스를 보다가 곯아떨어졌다. 조리원에서 아기를 돌봐주는데도 나는 계속 잠이 오고 곯아떨어진다. 집으로 돌아가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누우면 잠이 온다. 책 한 권 편히 읽을 짬이 없다. 숨 막히는 젖몸살이 다시 올까 봐 그 와중에 자다가도 일어나서 유축한다. 조리원 원장은 내게 모유량이 필요 이상으로 많다며 이렇게 권했다. "유축을 줄이세요. 지금부턴 아기에게 직접 물리세요. 가슴이 너무 아프거나 밤에 자기 전에만 유축하세요." 하루에 두세 번 물리는 것도 노곤한데, 매번 물리라고? 엄두가 안 났다. 그러면서도 '나는 또 어떻게든 끙끙거리며 하겠지...'라고 생각했다.
2주 만에 전화영어를 해보려고 했다. 마침 전화영어를 하는 4시 10분에 딱 맞춰 4시 8분에 수유콜이 왔다. 그래서 나는 "I gave a birth last week. Now it's feeding time."이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모유를 먹이면 연두는 몇 번 빨다가 멈춘 채로 잠시 있는다. 얼굴이 울그락푸르락 해지면서 우아앙 운다. 귀를 만져주거나 "쉬이이" 말하면 잠깐 울음을 멈추지만, 그래도 금방 다시 운다. 젖병은 쉽고 젖 먹는 일은 힘들다는 걸 아는 듯하다. 나는 아기 입에 젖을 물리고 가슴을 손으로 눌러서 아기를 조금 도와본다. 힘껏 빨다가 지쳤는지 아기는 잠든다. 다시 배고프면 칭얼거리는 소리와 함께 일어난다. 신생아실로 보내, 유축해 둔 모유로 보충한다. 배부르고 기저귀도 새것으로 갈면 아기는 편안한 얼굴이 된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오'하며 오므리면 그 모습이 귀여워 사진도 찍어놓는다. 기분이 좋으면 남편 눈처럼 동그란 눈이 되고 순한 얼굴이 된다.
남편은 매일 저녁 퇴근하고 산후조리원에 면회 온다. 피곤할 텐데도 와줘서 고맙다. 도착한 남편은 유리창 너머로 1분 정도 아기 얼굴을 볼 수 있다. 나는 그때마다 행복에 겨운 남편의 얼굴을 본다. 아까는 남편이 말했다. "밤 11시 50분이 얼마나 아쉬운 시간인지 몰라." 산후조리원의 아기 침대 머리맡에 설치된 웹캠은 밤 12시면 꺼지기 때문이다. 남편은 11시 59분까지 웹캠으로 아기 얼굴을 본다고 했다.
출산 전 남편과 갔던 마지막 겨울 여행이 떠오른다. 우리는 파주 헤이리 마을에서 이틀을 보냈다. 쁘띠프랑스 마을로 향하는 언덕길을 올라 임진강을 보면서 "저기가 북한이라고?"라며 놀라던 남편. 언제 또 그렇게 단둘이 오붓하게 한적한 길을 걸어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연애 6년 반, 결혼 2년 동안 단둘이 재밌게 보냈다. 이젠 조금 더 바쁘고 졸려질 텐데, 언제 또 둘이 여행해 볼 수 있으려나. 그래도 아까 남편이 한 말이 생각났다.
"너무 행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