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이 잔뜩 찌푸린 날 더욱 좋았던 가파도
하루에 5~6번 정도 왕복하는 가파도여객선은 적어도 하루 전 예약이 필수다. 전날 가파도와 운진항 왕복 승선권을 예매해둔 우리는 당일 10시 20분까지 도착해서 티켓팅을 해야 했다. 시간을 준수하지 못하면 티켓이 취소된다는 무시무시한 메시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는 우리는 전날 버스노선과 시간을 체크해 두었다. 아침 겸 점심은 맛도 좋고 영양도 챙기는 김밥으로 정했다. 제주도의 유명한 3대 김밥 중 다정이네를 선택한 우리는 8시 오픈이라는 정보를 입수하고 일찍 숙소를 나섰다. 미리 가서 주문을 하고 커피를 한잔 한 후 김밥을 찾아서 버스를 탈 계획이었다. 역시 8시 도착에도 대기팀이 있었다. 김밥은 25분 후에 찾으러오라고 하셨다. 우리는 8시 40분 버스를 타야 하므로 시간이 남아 주문을 해놓고 인근 스타벅스에서 제주 스페셜 메뉴 비자림라떼를 마시기로 했는데 이런.... 오픈이 8시 30분 버스시간과 가까워 포기했다. 아쉬운 대로 일찍 오픈한 파리바게트에서 준비해 간 텀블러에 커피를 한잔씩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요즘 매장 내에서는 일회용을 사용하지 못하므로 일반컵에 음료를 받아 마시다가 나가는 길에 음료가 남으면 다시 일회용컵에 옮겨 담아주는데, 일회용컵 안 쓰는 게 목표이긴 하나 이런 식으로는 일회용도 사용하고 세척하는 데 있어 사용되는 세제도 낭비인 것 같다. 세제로인한 환경도 생각을 해야 할 것 같다는 개인적인 생각을 하면서, 텀블러를 사용하면 매장에 있어도 되고 가져나가기도 편하다는 의견이다.
시간이 되어 김밥을 찾으러 갔다. 이번에는 다정이네김밥 2줄, 제육김밥 1줄, 무말랭이김밥 1줄 푸짐하게 4줄의 김밥을 준비했다. 이유인즉, 지난 영실코스 산행 시 김밥 두 줄을 샀다가 친구에게 원망을 들은 기억이 있어 이번엔 네 줄을 준비했다. 그나마 자두며 다른 간식거리가 있어 배를 곯진 않았었다.
8시 40분 201번 버스 승차 두정거장 뒤 내린 자리에서 202번 승차 여기부터는 52개의 정거장을 가야 하므로, 하염없이 창밖 구경을 했더랬다. 202번 버스에 타기 전 정류장에서 만난 아저씨가 버스를 기다리던 중 친구에게 핸드폰 인터넷 사용이 잘 안 된다며 물어보셨는데 친구가 친절하게 가르쳐드려서 인지 승차 후에도 우리 옆자리로 오셔서 가는 내내 질문을 하셨다.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등등 사소한 질문이 오가던 중 아저씨는 산방산을 가셔야 하는 데 원하는 정류장이 안 나오자 기사 아저씨게 여쭤보고는 급하게 내리시길래 기분이 싸해진 친구가 버스 노선을 보더니 우리가 내려야 하는 정거장도 노선표에 없다는 게 아닌가....;; 두둥!
순간 당황해서 기사 아저씨께 여쭤보니 이 버스는 그 정류장을 거쳐가지 않는다고 하셨고, 당황한 우리는 도착지를 말씀드리고 어떻게 가야 하는지 경로를 묻자, 하모3리에서 하차한 후 기사님은 오른쪽으로 꺾어서 세워 줄 건데 우리는 뒤로 돌아가서 오던 방향 직진으로 10분만 걸어가면 운진항이라고 알려주셨다. 다행히 가는 방향이 크게 어긋나지 않아 안도했다. 내려주신 곳에서 10분만 걸어가면 운진항이라고 하셨지만, 네이버 검색상으론 걸어서 26분 거리였다. 후후 아저씨는 뛰듯이 걸어가서 도착하는 시간을 알려주셨나 보다.
승선표를 찾아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안내만 그러할 뿐 조금 더 기다려주시겠지 생각하며 걸어가고 있는데 가는 방향에 버스정류장이 보였다. 다행히 운진항으로 가는 버스가 있기는 한 데, 운행 시간을 몰라 택시를 타야 하나 망설이는 찰나에 검은 벤 한대가 와서 섰다. 그리고는....(따라라란 따란 따란... 갑자기 인생극장 시그널이 들리는)
"선착장 가는 거죠?" 기사님이 물었다
우린 우리가 관광객 티가나서 바가지 씌우려는 택시인 줄 알고 일반 택시도 아니고 가까운 거리에 벤이 웬 말인가 싶어 안 탄다고 했다
"선착장 가는 거 아니에요? 타세요!"
"맞는데 괜찮아요!"
"얼른 타시라니까요. 선착장 가는 거예요"
"괜찮아요. 가세요"
"얼른 타세요"
"됐다니까요"
계속 호객하는 거라 생각한 우리가 손사래를 치자 기사 아저씨는 약간 욱하는 기분을 누르는 말투로
"마을버스니까 타라고요!!"
그제야 한편에 '마을순환 761-1'이라고 쓰인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어?! 아... 네!!"
순간 당황했던 우린 재빨리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바가지 씌우려고 호객하는 택시 아저씨로 착각했던 게 들킨 것 같아, 죄송하고 뻘쭘했다.
그 정도면 그냥 가셨을 법도 한데 안 탄다는 우리를 끝끝내 설득시켜 태우신 아저씨게 감사드리며, 죄송한 마음에 버스처럼 안 생겨서 몰랐다고 하자 지역주민들은 다 알고 탄다며 퉁명스럽게 말씀하셨다. 이런 츤데레 같은 사람... 이렇게 우린 관광객 티를 철철 흘리고 다녔더랬다.
덕분에 시간에 맞춰 선착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딱 10시 20분 도착, 매표하시는 분께서 10시 반 배가 있는데 타겠냐고 물어오셨고, 우린 흔쾌히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나오는 배는 기존에 예약했던 대로 1시 반 배편으로 해주셨다. 가파도는 작은 섬이라 주민이 아닌 관광객은 들어가면 정해진 시간내에 나와야 한다. 왕복권에서 들어가는 뱃시간을 선택하면 나오는 배는 자동으로 두 시간 후의 배편이 선택된다. 임의로 변경은 불가능하다. 일찍 서두른 덕에 30분의 시간 여유를 더 갖게 된 우리는 가파도 내에서도 여유롭게 둘러보고 김밥 타임도 가질 수 있었다. 가파도는 한 시간이면 다 돌아볼 수 있는 크기라서 급하게 서두르지 않아도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
자전거를 타도 좋지만, 걸어도 한 시간이면 충분하기 때문에 천천히 즐겨보시길 권장한다. 나름 한산한 곳에 김밥 타임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있으니 잘 둘러보시길!
날이 흐려 햇빛은 없었지만 안개도 먼지도 없어 시야가 트인 좋은 날씨였다. 가파도는 나무가 우거진 숲지대가 없다. 오히려 땡볕이었다면 걸어 다니기 힘들었을 듯하다. 날이 흐려준 덕분에 수월하게 돌아볼 수 있었다. 여기저기 피어있는 들꽃이 청보리 시즌을 맞춰오지 못한 섭섭함을 달래주었다. 멀리는 이번 여행에서 오며 가며 눈에 자주 띄던 산방산이 여지없이 가파도에서도 보였다.
2시간 단위로 사람들이 들고 나서인지 한산한 가파도를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었다. 드넓은 평지의 섬! 마을 안쪽으로 들어서면 돌담길과 가파도 전망대가 나온다. 전망대에 도착하면 이름 모를 꽃들과 익살스러운 하르방들이 반겨준다. 풍경 감상은 요기까지.
이제부터 먹도락! 이 부근에 전에 언급했던 김밥 존이 있다. 이곳에서 늦은 아침 겸 점심으로 김밥을 먹었다. 포일을 풀어헤치자 제육을 어찌나 꾹꾹 눌러 담아 싸주셨는지 제육김밥에 양념이 넘쳤다. 보기는 그래도 맛은 역시 3대 김밥, 다정이네김밥은 고소한 달걀이 듬뿍 들어있어 짭짤한 제육 하나, 다정이 김밥 하나 이렇게 왔다 갔다 먹으면 짭짤 고소를 왔다 갔다 하며 맛있게 먹을 수 있다. 고개들 들면 꽃과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곳에서 뭔들 맛이 없을까.
마을을 가로질러 돌담길을 걸어 나와 목이 말랐던 우리는 청보리 미숫가루를 한잔씩 마시기로 했다. 가파도는 청보리지!! 카페에 들어서 아저씨게 주문을 하고 텀블러를 내밀었다. 아저씨는 이렇게 다들 텀블러를 가지고 다녀야 하는데 말이지라고 하시며, 아까 섬에 들어갈 때 우릴 봤다고 들고 가던 텀블러를 기억한다고 하셨다. 제 텀블러가 눈에 좀 잘 띄는 편이라. 파시는 미숫가루 한잔의 적량이 있지만 텀블러 크기만큼 섭섭지 않게 미숫가루를 듬뿍 넣어서 타 주셨다며 친구의 텀블러는 크기가 커서 미숫가루가 많이 들어갔다고 강조하셨다. 정말 고소하고 맛있었다. 텀블러를 내밀 때 죄송하시만 뜨거운 물로 한 번만 세척을 부탁드린다고 하니 흔쾌히 설거지를 하셔서 음료를 담아주셨던 아저씨 감사합니다.^^ 뱃시간이 조금 남아서 카페에 앉아 바닷바람을 맞으며 시원한 청보리 미숫가루 한 모금 마시니 완전 기분 째짐.
이렇게 세시간여의 가파도 여행이 종료되었다. 가파도를 나가는 길엔 꼭 청보리 맥주도 구입해서 드셔 보시길. 가파도 이외엔 제주도 어느 시내에도 팔지 않는 가파도 청보리 맥주, 쌉싸름함이 과하지 않고 뒷맛이 엄청 깔끔하다. 그러나 너무 비쌈, 캔맥주 500ml에 8000원!! 후덜... 그래도 한번 마셔보면 또 생각나는 맛이다. 전국이 무리라면 제주도 시내에라도 팔았으면 좋겠다 싶은 갠 적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