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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는언니 Jul 07. 2016

14. 온더로드

나는 항상 길 위에 있다


타패 거리에 있는 숙소에 도착하니 주인 아주머니가 웃으며 맞이해 주신다. 체크인을 하려면 시간이 남았기에 정원의 작은 테이블에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아주머니는 태국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미얀마에서 왔다며 낯선 이방인을 붙들고 고향 이야기를 불쑥 꺼내신다. 여행자들은 타향살이를 좀 더 이해해 줄 거라고 생각한 걸까. 짧든 길든 우린 모두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이니. 그녀가 미얀마에서 이곳까지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자초지종은 알 수 없었다. 그 여정이 쉽지만은 않았으리라 겨우 추측할 뿐이었다. 고향이 많이 그립겠어요. 저도 미얀마에 가보고 싶어요. 바간이 그렇게 아름답다면서요?

아름다운 곳이지. 여기엔 늘 미얀마가 있어. 그녀는자신의 왼쪽 가슴에 손을 얹으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이제는 이곳이 좋아. 강이 흐르고, 공기도 좋고, 바간처럼 사원도 많고, 주말마다 큰 시장도 서고. 전에 잠깐 방콕에 살았는데 너무 복잡해서 치앙마이로 왔어. 여기가 딱 좋아. 이제 다른 데는 안 가려고.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녀의 눈동자에서 반짝거리는 무언가를 본듯도 같았다. 치앙마이에 머무는 동안 나는 꽤 평온했다. 아주머니가 가보라고 일러주었던 강가와 사원들을 느릿느릿 산책하며 둘러 보기도 하고, 주말에는 썬데이 마켓에서 친구들에게 줄 선물을 고르고, 시장에 들러 쏨땀과 찰밥과 국수를 사먹고, 태국 요리도 배우고, 이곳에서 만난 여행자들과 어울려 맥주 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치앙마이를 떠나는 날 카페에 앉아 흘러가는 것들을 바라보았다. 사원으로 향하는 승려들, 오토바이 뒤에 아이를 태우고 달리는 엄마, 쏨땀을 파는 리역카, 손님을 실어 나르는 썽테우, 문짝만한 배낭을 메고 걸어가는 여행자들. 어디에서도 사람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나도 치앙마이가 좋아졌다. 여기서 한번 즘 생활인으로 살아보고 싶어졌다. 적응할만하니까 떠나야 하는구나...

 

여행은 늘 그렇다. 어디에 가면 싸고 맛있는 한끼를 먹을 수 있는지 알게 되고, 지도가 없어도 더 이상 길을 잃지 않을 만큼 모든 골목에 익숙해지고, 커피 한잔 시켜놓고 느긋하게 책 읽을만한 단골 카페가 생기고, 어디서 왔냐는 질문 대신 눈 인사를 나눌 사람들을 알게 되고, 계산할 때마다 한국 돈으로 환산하지 않아도 대충 얼마인지 감이 올 때 즈음이 되면, 아쉽게도 이제는 떠나야 할 시간이 점점 다가오는 것이다.


한때는 여행과 생활의 경계선이 뚜렷했다. 생활은 반복적이며 지겹고 벗어나고 싶은 것. 여행은 새롭고 다이내믹하며 즐거운 그 무엇. 나는 목마른 사람처럼 여행을 갈망했다. 그러다 조금씩 알게 되었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여행의 나날들이 그런 것처럼.

 

이제 여행과 생활은 그저 서로 조금 다른 하루로 하나가 되려 하고 있었다. 경계선이 희미해진 그 자리에 꽃을 심고 싶다. 모든 하루 하루에 촉촉하게 물을 뿌려주고 싶다. 어딘가로 간다고 해서 꼭 떠나는 것도 아니고 여기에 있는다고해서 반드시 머물러 있는 것도 아니니. 매 순간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바탕으로 선택한 길을 가면 되는거니까. 


나는 항상 길 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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