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흐린 날에도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됐다
어제, 기나긴 이동중지 명령이 드디어 해제가 되었다. 지역 별 위험도에 따라 해제되는 항목들에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1킬로 이내로 제한되던 이동 반경이 100킬로 까지 확장되고 매번 사유서를 작성해야 했던 번거로움이 사라졌다. 파리의 경우에는 공원들과 자르댕, 박물관과 미술관 그리고 극장과 스타디움은 여전히 폐쇄가 되지만 일부 상점들의 영업들이 재개되고 센느 강의 뚝길이 개방된다. 에펠탑을 품고 있는 마르스 광장과 앵발리드 앞 광장 또한 개방이 된다.
지난 주말에는 마치 곧 있을 이동중지의 해제를 반대하기라도 하는 듯 장마 같은 비가 내렸다. 이동중지가 해제되는 첫날인 어제는 감히 밖으로 나설 마음을 못 가질 만큼 매서운 바람이 불었다. 그래서인지 너그러운 월요일의 거리는 이동중지가 이어지던 날들의 딱딱한 낮들보다 더욱 차갑게 내려앉아 있었다.
토요일 저녁에는 몇 시간에 걸쳐 번개가 내리쳤다. 천둥소리도 없이 하늘만 계속 번쩍거리는 게 마치 알프레도가 이어 붙어준 흑백의 키스 필름들 같았다. 반복되고 또 반복되어도 자꾸만 눈을 못 떼게끔 매혹적인 찰나의 파괴적인 번쩍임. 고백을 해야 하거나 후회를 해야 하거나 다짐을 해야 할 것만 같은 섬뜩한 광경이 여러 시간 동안 지치지도 않고 이어졌다. 그리고 파리는 하늘도 낮아 책상 앞에 앉아 있어도 조금 멀리 침대 머리에 등을 기대고 앉아도 잘 갈아 놓은 칼들이 내 눈까지 넘쳐와 나를 자꾸 찔러댔다.
너무 멀어서 소리가 들리지 않던 번쩍임들이 바람에 흘러 우리의 집 위까지 왔다. 그러자 무성 필름들은 드디어 소리를 가지게 되었다. 샤워 같은 비와 함께 망치 같은 소리가 비처럼 내려왔다. 이젠 번쩍임들은 온통 소리에 오염되어 오래된 책 속의 두려운 상징 같은 게 되어 버렸다. 그쯤 커튼을 내려 창을 가렸다.
먼지 안개와 빌딩 숲에 갇혀 원치 않게 잊어야 했던 번개, 무지개, 일출, 구름의 그라데이션들을 머나먼 이곳에서 낯선 전염병 때문에 방 안에 갇힌 후에야 보게 되었다는 게 참으로 우습다. 나의 지난 2달은 무척이나 일정했다. 그 지겨운 일상에서 오직 다른 것은 영화와 글들, 그리고 하늘과 그녀의 말 뿐이었다. (난 그 소중한 차이들이 내 삶 그 어떤 비참한 곳에서도 함께 해주길 바란다.)
오늘은 거짓말처럼 바람도 잦아들고 눈이 멀 것 같은 햇빛이 우리의 기상을 재촉하고 있었다. 날씨를 핑계로 미루기만 했던 수업을 웬일로 아침 일찍부터 녹화를 했다. 그리고 간단한 아침을 먹은 후 이동중지가 되기 전날 가곤 거의 2달을 못 갔던 까르푸에 산책을 겸해 장을 보러 가기로 했다. 창문을 열어 바깥공기를 가늠하고 두 달 전에 비해 한층 가벼운 옷차림에 그때에는 없었던 마스크를 나눠 끼고 어색한 겨울 장갑을 낀 채 먼지가 굳은 트후띠네트를 꺼내 길을 나섰다.
바깥은 초여름의 상쾌함이 흘러넘쳤다. 여전히 길 위의 위험도는 결정적이게 떨어지진 않았고 이동중지가 해제되었다고 해도 크게 달라진 것도 없다 하지만 나갈 수 없는다 마음과 얼마든지 나갈 수 있다는 마음에는 큰 차이가 있어 근육이 빠져 신음하는 다리와는 달리 가슴은 후련했고 가벼웠다. 2달 동안 공사를 진행하기가 여의치 않았는지 공사장들은 별다른 얼굴을 만들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거리의 잡초들과 닫힌 공원 안의 길어진 잔디들이 오직 사람만이 멈춰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꽃들로 장식됐던 트램의 선로에는 지나치는 트램의 바퀴가 걸릴 것처럼 풀들이 길게 자라 있었고 선로가를 꾸몄던 꽃들도 어느새 사람의 손은 다 씻어내고 넘치게 자라 선로 밖 도로로 흘러내려 있었다. 까르푸 근처에서 우리에게 봄을 가장 먼저 알려주던 벚꽃 나무는 이미 한여름의 짙은 잎색을 하고 있어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마트에는 마스크를 낀 사람들이 분주히 장을 보고 있었다. 빵은 더 이상 사지 말자고 다짐을 했지만 지난 두 달 동안 먹지 못했던 까르푸 빵 오 쇼콜라를 보자마자 다짐은 잊고 슥 하고 집어 버렸다. 과제들을 집어 오느라 잠시 멀어졌다가 야채를 사는 곳에서 다시 만난 엠마의 샤리오 안에도 빵 오 쇼콜라가 들어 있었다. 우리는 웃었다.
“오빠 생각이 나서 넣었지.”
기분이 좋아 하나를 다시 진열장에 가져다 놓는 일도 수고롭지 않았다.
엠마가 생일 선물도 못 사주었다며 새빨간 페라리 F1 미니카도 사주었다. 그러려고 시나리오에 써 둔 것은 아니었다며 나는 쑥스럽게 웃었다. 정신없는 계산을 치르고 두 대의 트호띠네트에 가득 장바구니를 나눠 싣고서 우리는 지난 3월, 인종차별을 당했던 가게 앞을 당당히 지나 집으로 돌아왔다.
그간 문을 닫았던 세차장에는 매일같이 긴 줄이 지어있다. 모양이 같은 차가 줄을 만들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짧은 차, 긴 차, 낮은 차, 높은 차, 낡은 차. 뚜껑이 열린 차를 타고 뚜껑을 연 채로 앉아 세차 순서를 기다리던 중년의 아저씨, 아빠가 세차를 하는 동안 그 앞에서 K팝스런 춤을 추던 여자 아이, 할머니의 지시에 닦은 바퀴를 다시 닦던 할아버지, 아버지의 조언에 삐친 듯 대꾸도 없이 창을 닦던 나이 꽤나 먹은 아들, 몇 번이고 차문을 열고 내려 순서를 확인하던 성격이 급한 남자, 원하는 세차 자리를 위해 뒤에 차들을 먼저 안으로 들여보내던 남자를 보았다.
매일 보는 세차장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이유를 가지고 온다. 그들의 머리 위로 빨간색 깃발이 날마다 조금 다른 템포로 흔들리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많은 것을 잃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어렵게 산 시간들. 그 시간들로 사려고 했던 어떠한 경험들. 우리는 예상치도 못한 이유들, 파업과 전염병 덕분에 지난 겨울부터 늘 집에만 갇혀 있었다. 아까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억울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고작 몇 걸음 짜리 방 안에서도 잘 지냈다. 일어나면 커피를 내렸고 나란히 책상에 앉아 머리를 맞대고 낯선 말들을 외웠고 같은 창을 보며 각자의 일도 꾸몄다. 늘 바빴고 늘 지쳐 잠이 들었다.
자랑할 것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흐린 날에도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됐다. 이곳의 날씨가 앞으로 어떻게 바뀌든 우리는 우리의 삶을 이미 검증받았다.
모두가 고생했다. 아직은 끝도 아니지만.
날이 좋은 날은 선물일 것이다. 날이 나쁜 날도 그리 나쁘진 않을 것이다.
지겨움이 지겹지 않은 사람이 된다면 사랑할 수 있다.
밥을 지겨워하지 않는 사람은 삶을 살 수 있다. 그리고 하늘의 색이 지겹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절대로 그는 얼지 않을 거라 믿는다.
W 레오.
2020.05.12